[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한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08-2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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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턴 힐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에든버러성으로 이동한다. 칼턴 힐 아래 있는 홀리루드궁전(Holyrood Palace)은 창 너머로 외관만 구경했다. 이곳은 16세기 이래로 스코틀랜드의 왕과 여왕이 살던 궁전으로, 지금은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왕실의 공식 거처다. 엘리자베스2세는 매년 여름이 시작되면 1주일 동안 이곳에 머문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궁전은 1671년부터 1678년 사이에 남북 70m, 동서 70m 크기로 지어졌다. 다만 북서쪽에 있는 탑은 제임스 윌리엄 브루스(James V. Sir William Bruce)경이 16세기 왕정복고의 주인공 찰스2세를 위해 지은 것이다. 

서쪽에 있는 주출입구는 북서쪽과 남동쪽의 탑을 연결하는 2층 건물에 있다. 출입구에는 커다란 두 개의 로만 도리아식 기둥이 서있다. 스코틀랜드 왕실의 문장이 새겨있고, 팔각형의 둥근 지붕과 시계판이 걸려있다. 탑에는 원추형의 종모양의 지붕을 덮었고, 세 개의 공으로 장식했다.

홀리루드궁전에서 에든버러성까지의 1.61㎞의 길을 로열마일(Royal mile)거리라고 한다. 영국이 사용하는 거리의 단위 마일이 여기에서 나왔다. 에든버러성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나 보다. 로열마일이 성으로 향하는 차들로 가득 차 있어서 버스가 나가지 못해 결국 내려서 걷기로 했다. 이래저래 많이 걷는 여행이다. 전날 방에 보았던 성 자일스 교회를 밝은 날 다시 보았다. 역시 교회 안을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거리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를 만났다.

에든버러성에 도착해서 보니 8월에 열릴 예정이라는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 준비가 한창이었다. 1950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에서는 영국 육군과 영연방국가 및 다른 나라의 의장대와 예술공연팀이 에든버러성에 모여 공연을 한다. 

개막공연은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퀼트를 입은 수백 명의 경기병이 백파이프와 북을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벌인다. 매년 20만 명이 관람하는데, 금년에는 8,800개 좌석을 에든버러성 광장에 만들었다고 한다. 

‘귀영나팔’이라고 번역하는 타투(tattoo)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쓰던 두덴탑투(doe den tap toe)에서 온 것이다. 이는 매일 밤 주점의 주인에게 술통꼭지를 잠그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술을 팔지 않으면 병사들이 제 시간에 병영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투는 마지막 점호를 알리는 신호로, 혹은 군의장대가 저녁여흥으로 하는 행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로열마일 끝에서 좁아진 통로를 건너 성으로 들어간다. 성문 양쪽에는 13세기말부터 14세기 초까지 이어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두 영웅의 동상에 서 있다. 오른쪽은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다. 

1286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알렉산더3세 사후 공석이 된 왕위를 놓고 귀족들 간에 경쟁이 벌어진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점령했다. 이에 월레스는 귀족들을 규합해 잉글랜드군을 패퇴시켰을 뿐 아니라 잉글랜드의 요크 성을 점령하고 에드워드 1세의 조카를 죽여 스코틀랜드의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298년 패전을 계기로 쫓기다가 1305년에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왼쪽은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왕위에 오른 로버트 더 브루스(Robert the Bruce)의 동상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1세부터 3세왕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1328년 독립을 인정받아내며 왕위에 올랐다. 

에든버러성 입구에 서있는 동상은 1929년에 세운 것으로 로버트1세의 동상은 토마스 클래퍼톤(Thomas Clapperton)이 윌리엄 월레스의 동상은 알렉산더 캐릭(Alexander Carrick)이 각각 제작한 것이다. 

성 입구를 지나 올라가다보면 포트쿨리스(Portcullis) 문이 나타난다. 문 안에 있는 아가일 보루(Argyle Battery)에서는 프린세스 스트리트를 굽어볼 수 있다. 서쪽으로는 1시 대포(One O'Clock Gun)가 있는 밀크 마운트 보루까지 볼 수 있다. 

아가일 보루 위쪽으로는 18세기부터 성곽에 배치된 수비대의 병영들과 주지사의 관사가 있다. 주지사 관사를 지나면 푸그문(Foog's Gate)를 지나 에든버러성의 윗부분으로 들어가게 된다. 푸그문(Foog's Gate)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짙은 안개 때문에 안개문 (Foggy Gate)으로도 알려져 있다.

문을 지나 조금 더 나가면, 아주 오래된 모습이 생생한 성 마가렛 교회가 나타난다. 1130년 무렵 데이비드1세가 지어 어머니인 성 마가렛 여왕에게 바친 것이다. 성 마가렛은 말콤3세 왕의 부인이다. 

16세기에는 예배당을 화약창고로 사용하면서 폭발에 대비해 둥근 천정을 만들었다. 그 뒤로 잊혀졌다가 1845년 다니엘 윌슨경에 의해 재발견됐다. 예배당에서는 요즈음도 세례식과 결혼식이 열린다.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마가렛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원들로 구성된 성 마가렛 교회당 길드에서 생화를 준비해 예배당에  바친다. 그리 넓지 않은 예배당 안쪽에 있는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 마가렛 여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성 마가렛 교회를 지나면 몬 멕(Mons Meg)라는 이름의 거대한 대포를 볼 수 있다. 1449년 버건디(Burgundy)공작 필립3세의 주문에 따라 플란더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1457년 제임스2세 왕에게 선물로 전해졌다. 5.9톤에 달하는 대포는 150kg의 탄알을 2마일 밖까지 날릴 수 있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였다.

몬 멕은 에든버러성의 입구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몬 멕의 뒤편에서 크라운 광장(Crown Square)으로 들어갈 수 있다. 팰리스 야드 (Palace Yard)라고도 하는 광장의 동쪽에는 왕궁이 있고, 남쪽에는 대연회장(Great Hall), 서쪽으로는 앤 여왕 빌딩 그리고 북쪽에는 국립 전쟁기념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궁은 15세기 중반 제임스4세 시절 지어 스튜어트왕조의 왕궁으로 사용됐다. 1617년 제임스6세의 방문을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가 이뤄졌다. 1층에는 지금은 왕의 식당이라고 부르는 레이치홀(Laich Hall)과 메리여왕이 태어난 산실(Birth Chamber) 등을 볼 수 있다. 

1층에는 또한 1615년에 스코틀랜드의 명예의 전당으로 지은 둥근 천정의 왕관실이 있다. 이곳에는 스코틀랜드 왕실의 왕관, 홀 그리고 검을 보광하고 있다. 왕홀은 1540년 교황 알렉산더6세가 제임스4세에게 수여한 것인데, 1543년 메리여왕의 대관식에서 처음 사용됐다.

여기에는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도 보관돼 있다. 운명의 돌은 스코틀랜드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강력하고 오래된 상징으로 수백년에 걸쳐 스코틀랜드왕의 대관식을 지켜왔다. 전설에 따르면 야곱이 사다리(Jacob’s Ladder)를 꿈꿀 때 베고 있던 베개라고 전한다.

처음에는 아일랜드로 전해졌다가 스코틀랜드로 옮겨왔다. 1296년 영국의 에드워드 1 세가 가져간 뒤로는 영국왕의 대관식에서 사용되다가 1996년 스코틀랜드가 돌려받아 여기 보관하게 됐다. 다만 영국왕의 대관식이 있을 때만 웨스터민스터 성당으로 옮겨진다. 

29.5m 크기의 대연회장은 제임스4세에 의해 1511년 완공됐다. 스코틀랜드에 남아있는 두 개의 중세 연회장 가운데 하나다. 외들보가 떠받치는 장엄한 목조지붕은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분명하다. 받침돌 위에 올려놓은 거대한 들보는 머리에 조각을 새겼으며,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엉겅퀴 닮은 장식을 새겨 넣었다. 들보의 받침돌은 르네상스적인 분위기가 나는데, 프랑스의 블루아(Blois)에 있는 1515년 무렵의 작품들과 비교된다. 

당시의 스코틀랜드의 예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 장소는 한때 군대가 사용했었다. 크롬웰의 군대가 점령하면서 개조가 시작됐고, 1886년 군대가 물러날 때까지 막사로 쓰였다. 대연회장에는 철갑옷을 비롯해 칼과 방패, 장창, 로카베르 도끼(Lochaber axe) 등 각종 중세시대의 무기는 물론 권총도 전시돼 있다. 

왕궁의 건너편에 있는 앤여왕빌딩은 16세기에는 대연회장에 딸린 부엌이 있었다. 뒤에는 로열 건하우스로 사용했다. 지금의 건물은 1708년 스코틀랜드 육군의  테오도르 듀리(Theodore Dury) 대위가 건설했다. 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1920년부터는 해군과 군사 박물관으로 쓰였다.

크라운 광장의 북쪽에 있는 스코틀랜드 내전 기념관은 1923년 건설되기 시작해 1927년 개관했다. 이 자리는 1366년에 재건한 중세의 성모교회가 있던 자리로 1540년 병기고로 쓰이다 1755년에 철거됐었다. 이 기념관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내전 기간 동안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장소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한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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