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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多作이 작업 근력을 키워 전시 통해 성장했다"

전지현 기자
전지현 기자
입력 : 
2018-08-21 17:26:44
수정 : 
2019-01-28 17: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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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 단독 인터뷰
사진설명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47)는 무더위에도 긴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수녀복 같다고 하자 “어떤 사람들은 원불교 신자 같다고 하더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작가는 "식상한 답변을 하면 옐로 카드(경고)를 달라"고 농담을 건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루함을 못 견디는 작가의 작업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난해 9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볼프강 한 미술상'을 안겨준 독일 근대미술협회(GMKM)는 그를 "독특한 사상가"라고 칭하며 "작업은 퍼포먼스 요소로 가득 차 있으며 정지 상태인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이 수상과 연계해 올해 독일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도착 예정 시간(ETA) 1994―2018'도 화제였다. 지난 4월 18일 개막부터 8월 12일 폐막까지 관객 6만5742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1994년 데뷔 이후 24년 작업 세계를 아우르는 대형 설치작품과 사진, 종이 작업, 비디오 에세이, 의인화된 조각 등 120여 점을 펼친 전시였다. 그중에 2008년 붉은색 대형 블라인드 설치작품 '조우의 산맥'은 루트비히 미술관에 소장됐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구조적으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4개월에 걸친 루트비히 미술관 회고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작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독일 작가가 아닌 이방인이라서 내 작품을 어떻게 볼지 걱정했지만 텃세는 없었다. 다행히 2008년부터 다른 전시로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루트비히 미술관장이자 큐레이터인 일마즈 지비오르와 잘 맞았다. 전시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상당히 회자됐고, 진지한 감상평을 긴 이메일로 보내준 지인들도 많았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게 있다면. ▷회고전(survey exhibition)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예를 들어 어느 시기에 작업이 많았는지 도표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객관화하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보는 계기였다. 모든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지 않나.

―작품 1444점을 실은 전작 도록도 발간했는데. ▷시기별로 나의 모든 걸 보여주는 도록이니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징글징글할 정도로 작업량이 많았다. 그래도 작가로서 근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다음 회고전에는 무엇을 더 강조하고 싶나. ▷팔팔한 생존 작가는 회고전을 금기시한다. 왠지 작업 생명이 끊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알게 되는 발판으로 삼았고 한번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물론 작업량이 많아 고생스럽지만 이번 노하우를 발휘해 다른 버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미술관 성격과 위치, 회고전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잘 맞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다. 전시가 연애라면 회고전은 결혼 같다. 일가친지와 지인에게 환영받으면서 지원받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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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트비히 미술관에 설치된 대형 블라인드 작품 '조우의 산맥'(왼쪽)과 '솔 르윗 뒤집기-1078배로 확장, 복제하여 다시 돌려놓은 K123456'.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이번 전시를 하는 데 계기가 된 볼프강 한 미술상은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준 상인가. ▷지난 몇 년간 이 상 후보로 계속 올랐다. 독일 미술관에서 주는 국제적인 상이기 때문에 원로 작가가 수상하는 게 일반적이라 기대를 안 했다. 수상자의 대표작이 미술관에 소장돼 100년 이상 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작가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9월 7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리는 이탈리아 트리엔날레 디 밀라노 개인전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밀라노 패션 브랜드 풀라(Furla)가 국공립 미술관을 돕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내가 두 번째 작가로 선정됐다. 이번 개인전은 총 세 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직사각형 공간에 들어서면 미니멀한 실 작업과 거울 작업이 일종의 도입부를 구성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에 블라인드 설치작인 '성채'(2011년)가 전시된다. 마지막 공간에는 '의상 동차(動車)' 시리즈 신작이 동적인 방을 구성하게 된다.

―새로운 공간에서 전시할 때 가장 고민되는것은.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가 위치한 도시와 사회적 문맥을 이해하고 너무 황당하지 않는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서든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이 되는 전시를 하고 싶다. 양혜규는 다작과 활발한 전시활동으로 알려진 작가가 맞다. 대신 전시 외에는 딴 일은 별로 없다. 공공미술도 지양하는 편이고, 집안도 안녕하시다. 돌아보면 다작하는 만큼 성장했다. 전시 안 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모교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인데 작가 활동에 지장은 없나. ▷교수직은 작가 지망생의 고민과 성장에 귀 기울여 주는 역할인데, 그게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소소한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듣고 마음을 싣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욕심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실망이 섞인 짜증을 종종 낸다. 우리 학교는 교수가 수업 날짜를 정할 수 있어 3주에 3일씩 한 학기에 25일 정도 교직에 할애한다. 내가 의욕이 많아져서 지금보다 학교에 더 자주 가게 되면 학생들이 말라죽을 것이다.(웃음)

■ She is…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양혜규 작가는 1994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해 독일 슈테델슐레로 유학을 떠나 1999년 졸업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단독으로 전시하는 동시에 단체전 '세상 만들기'에도 참가했다. 2010년 뉴욕 뉴뮤지엄, 2012년 카셀 도쿠멘타, 2015년 독일 본 쿤스트페어라인, 2017년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 개인전, 2016년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전시했다.

[전지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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