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다. 한국은 세계 최강 독일을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꺾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몇 수 아래인 말레이시아에 패했다.
20일 동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F조 예선 최종 두 경기에선 모두 이변이 벌어졌다. 아시아에서 FIFA 랭킹이 가장 높은32위인 이란은 미얀마(138위)에 0대2로 졌다. 같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70위)는 북한(108위)에 0대3으로 발목을 잡혔다. 23세 이하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란 점을 감안해도 의외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란과 사우디는 나란히 1승1무였다. 하지만 '한국 변수'가 발생했다. 지난 17일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패하며 E조 2위가 유력해진 것이다. 대진표상 F조 1위와 E조 2위가 맞붙는 상황(16강전)에서, 이란과 사우디는 F조 1위를 피하려 주전을 대거 뺐다. 조 2위를 차지하면 약체인 방글라데시(B조 2위)를 16강 상대로 맞이한다는 이점도 있었다.
이란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움직임이 무뎠다. 경기 초반부터 자기 수비 진영에서 볼을 돌리기 바빴다. 0-0 균형은 후반 11분 깨졌다. 미얀마의 아웅 르윈모가 이란 페널티박스에서 공을 잡아 왼발 슈팅을 날렸다. 빗맞은 공이 구석으로 이란의 오른쪽 골대로 천천히 굴러갔지만, 골키퍼와 수비는 그냥 지켜만 봤다. 미얀마는 후반 23분 추가 골을 넣었다.
이란은 경기 막판 '침대 축구'를 펼쳤다. 보통 앞서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지만, 오히려 두 골을 내준 이란이 넘어지기 바빴다. 후반 추가 시간에는 이란 아마드반드 아마드레자가 미얀마 선수를 걷어차고는 자신이 그라운드에 나뒹굴기도 했다. 이란은 더 실점하지는 않았다. 만약 미얀마에게 한 골을 더 내주면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디도 경기 내내 단 1개의 유효 슈팅에 그치며 북한에 맥없이 무너졌다.
경기 후 F조 네 팀은 모두 '1승1무1패'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희비가 엇갈렸다. 미얀마에 패한 이란은 골 득실에서 앞서 조 1위로 16강에 직행해 한국과 맞붙게 됐다. 사실상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탈락 위기에 놓였던 북한이 조 2위로 최대 수혜자가 돼 16강에서 방글라데시를 만난다. 내심 조2위를 노렸던 사우디는 이란도 패하며 조 3위로 내려앉았지만 승점(4) 덕분에 16강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