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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베아트리체에게 느낀 ‘사랑’이 신곡 저술 배경

  • 입력 : 2018.08.20 09:27:07
  • 최종수정 : 2018.08.20 16:08:35
‘단테와 베아트리체’, 영국 화가 헨리 홀리데이(1839~1927년), 유화, 203×203㎝.

‘단테와 베아트리체’, 영국 화가 헨리 홀리데이(1839~1927년), 유화, 203×203㎝.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동물이었던 인간을 신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킨 원칙이 있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이것을 경험했다. 이것 없이는 어떤 인간도 태어날 수 없고 자랄 수도 없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경험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기원을 추적하려면 까마득한 옛날, 약 3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지구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켜 점점 추워졌다. 동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유인원 중 소수가 자신의 생활 터전인 밀림의 나무에서 들판으로 내려와 새로운 식용 식물과 근채류를 자신의 먹을거리로 수용했다. 이 유인원은 생존을 위해 혁신했다. 나무 위 생존에 용이한 네발 사용에서 두 발 사용으로의 급격한 전환이다. 나무에서 내려온 유인원들은 키가 80㎝, 몸무게 30㎏ 정도로 표범이나 사자의 점심거리였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자 과거의 자신을 만들어준 네발로 걷는 사족보행을 과감히 버리고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을 시작했다. 이들은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학명 ‘호모’를 장착한 ‘호모 에렉투스’, 즉 ‘직립원인’이 됐다.

호모 에렉투스는 머리를 하늘로 높이 쳐들고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짐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방을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이 있는 식물이나 근채류를 구별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짐승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특별한 능력인 ‘관찰’을 배양했다.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관찰 대상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머리의 정면으로 서서히 그 위치를 옮겼다. 자신이 관찰할 대상 안으로 들어가 대상처럼 사고하는 ‘거울신경계’가 뇌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수 호모 에렉투스는 들판에 널려 있는 돌을 돌로만 보지 않고, 사냥한 가축을 잘 다듬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봤다. 혁신이란 주위 물건이나 사람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만들기 위해 그 안에 숨겨진 디자인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돌을 다듬어 ‘스위스 나이프’로 만들었다. 약 250만년 전부터 에티오피아와 케냐에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손도끼와 그것을 긴 막대기에 장착할 창을 대규모로 제작하는 공장이 있었다. 당시 첨단무기 산업이었다.

이족보행 동물은 사족보행 동물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사슴이나 영양은 100m를 6~7초 안에 완주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들을 도저히 사냥할 수 없었다. 이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거리 달리기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래 달리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의 털을 제거했다. 거의 100만년에 걸친 지루한 진화 과정이었다. 다른 동물이나 가축은 온몸에 털이 나 있어 20분 이상 달리지 못한다. 체내 온도가 2~3도 이상 올라가면 생명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몸에서 털을 제거한 호모 에렉투스는 2시간 이상 달려 헐떡이며 누워 있는 동물을 사냥했다. 오늘날 케냐 칼라하리 원주민들의 사냥 방식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또한 들판에 떨어진 번개가 만드는 불을 무서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이 불을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하늘의 선물로 여겼다. 불을 채집해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전환했다. 거주지에 불을 켜놔 다른 짐승이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사냥한 동물을 불에 구워 먹기 시작했다. 생고기를 소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긴 내장이 3분의 1로 짧아졌다. 호모 에렉투스는 이전에 소화시킬 때 필요했던 에너지를 뇌로 보냈다. 이들의 뇌 크기는 600㏄에서 1200㏄로 커졌다.

인류 조상의 기술적이며 신체적인 혁신이 오히려 인류 생존의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인류는 이 걸림돌을 인류만의 생존 전략으로 만들었다. 인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이족보행으로 자궁은 점점 좁아졌다. 설상가상 뇌 크기는 다른 동물보다 커져,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녀들은 태아의 뇌가 더 크기 전에 좁은 자궁 통로로 태아를 통과시켜야 했다. 그래서 미성숙한 상태로 아이를 낳았다. 방금 태어난 아이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돌봄이 없다면 금방 죽는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1년 동안 생존에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어머니 몸에는 털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어머니의 몸을 잡을 수도 없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른다. 갓난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헌신적인 사랑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시켜준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인류 문명과 문화의 핵심은 어머니의 행동이 상징하는 ‘사랑’이다. 교육이란 모든 인간 안에 숨어 있는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는 이타적인 마음에 대한 자극이나 훈련’이다. 고대 히브리어로 ‘레헴(rehem)’이란 단어가 있다. ‘어머니의 자궁’이란 의미와 함께 ‘사랑’이란 의미가 들어 있는 단어다. 불교에서는 이 가치를 ‘자비’라고 부른다. ‘자비’는 타인을 내 몸처럼 사랑할 뿐 아니라 타인이 행복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려는 수고다. 상대방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는 마음이고 상대방이 슬프지 않은 환경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런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교육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숨어 있는 ‘사랑’이라는 보물에 대한 지속적인 자극이며, 그 보물을 자신의 삶 안에서 실현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의 마음속에 간직된 사랑에 대한 노래다. 단테는 신곡을 저술하기 5년 전인 1295년, 시와 산문을 혼용해 새로운 장르의 글을 썼다. 그는 소중한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피렌체의 사투리어인 투스카니어로 ‘비타 누오바(Vita Nuova)’, 즉 ‘신생(新生)’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단테가 이 책에서 사용한 언어가 오늘날 이탈리아어의 조상이 됐다. 단테는 자신의 마음속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을 글로 표현했다.

신생은 42개 짧은 곡으로 구성됐다. 단테는 피렌체에 사는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체를 보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자신에게 있는 줄 몰랐던 ‘사랑’이란 감정을 발견했다. 단테가 소녀 베아트리체에게 가졌던 사랑은 그가 신곡에서 보여준 영적인 사랑에 대한 굳건한 발판이 됐다. 특히 신생 24곡에 등장하는 구절은 신곡을 저술하려는 단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Io mi senti` svegliar dentro a lo core. Un spirito amoroso che dormia: E poi vidi venir da lungi Amore. Allegro si, che appena il conoscia.” (신생 24곡 1~4행)

이 구절을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내 심장에서 무엇인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잠자고 있었던 ‘사랑이라는 영혼(spirito amoroso)’입니다. 나는 이제 사랑이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혁명적이다. 이 구절에는 단테가 신곡을 저술하게 된 마음이 담겨져 있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일어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총성인 이 구절은 인간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발견이다. 사랑은 인류 혁신의 모체다.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인 ‘인페르노’ 제1곡에서 천국에 있을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위해 먼저 지옥으로 들어간다. 그는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제2곡에서 지옥을 여행한 위대한 위인 둘을 언급한다. 한 명은 로마를 건설한 아이네이아스고 다른 한 명은 그리스도교를 건설한 바울이다. 단테는 스스로를 아이네이아스·바울과 비교하며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실의에 빠진다. 단테의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에 있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이 역사적인 여행이 가능해졌다고 일러준다. 누가 단테에게 천국으로 가기 위한 지옥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1호 (2018.08.15~08.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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