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출산율 1.05명 이하인데, 연금 예측은 1.24명 이상 '현실과 간극'

박용하 기자 2018. 8. 1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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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국민연금, 향후 과제는
ㆍ2057년 소진 예측, 현행 9%서 보험료 20.3%P 추가 부담
ㆍ노사정 의견 모아야…“세대별 고통 분담 판단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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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았던 국민연금의 ‘장기재정전망’과 ‘제도개선방향’이 지난 17일 공식 발표됐다. ‘보험료율을 대폭 올린다’거나 ‘보험료를 내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은 “연금 가입자가 호구냐”며 들끓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연금 관련 국민청원만 일주일 사이 2400여건이었다.

제도를 손질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막연한 불신은 제도개혁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2004년 ‘안티 국민연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 부족을 해결하려고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미 고갈돼 연금을 받기 힘들 것”이란 괴담이 퍼져 개혁안은 좌초됐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논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구통계 정확히 짚어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의 이번 발표는 출산율에 대한 통계청 ‘중위’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삼았다.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보이는 평균 출생아 수가 2020년 1.24명, 2030년 1.32명이고 2040년부터 1.38명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출산율이 더 떨어지는 ‘저위’ 시나리오조차 2020년 1.10명, 2040년 이후 1.12명으로 돼 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이미 지난해 1.05명이었고, 올해는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5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과 함께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을 때 이런 관측이 나왔다. 연간 출생아 수는 올해 32만명에 그칠 것이며, 2022년 이전에 20만명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래세대의 연금 부담을 내다보면서 출산율 1.3명대를 상정한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출산율을 1.05명으로 고정해 계산하면 기금이 소진되는 시기는 2057년으로 달라지지 않지만 그때의 노동세대는 노년층 연금을 주기 위해 지금보다 20.3%포인트 오른 29.3%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소득의 5분의 1이 보험료로 더 나가는 것이다. 당장의 여론을 의식해 개혁을 미루기보다는 인구 추이를 면밀히 계산해 재정계획과 보험료율을 책정해야 한다.

■ “구체적인 개혁 논의를”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소모적인 비판보다 구체적인 개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발표된 개선안은 재정전망 계산이 늦게 나온 탓에 효과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태로는 정부도 국민도 어떤 방안이 최선인지 알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소진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실제로 고갈될 가능성은 적다”며 “소진 문제에만 매여 있으면 연금의 본질적 문제인 노후소득 보장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도개선 방향을 만들 때 ‘연금의 지속 가능성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과 ‘가입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최종 자문안이 복수로 제시된 것도 그래서다. 한쪽은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까지 올리고 그 뒤 급여를 줄이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며, 다른 쪽은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고 보험료율을 11%로 올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토론과 합의를 거쳐 두 방안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발표한 방법들을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다시 따져보고, 각 세대가 고통을 어느 정도 분담하는 게 좋을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후보장 되돌아봐야

최종 개혁안을 누가 주도해 만들 것인지도 중요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차장은 “연금개혁은 최종적으로 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국회에서 논의하면 효율적이지만 정치권이 주도하면 연금 가입자들의 이익보다 정치적 이익이 앞서게 되고 정쟁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다양한 주장이 있어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 방식을 정하는 것 자체가 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노후보장 대책 전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적으론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양한 노후보장 수단이 있으나 2016년 기준으로 노인빈곤율은 46.5%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2.5%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보험료 부담 등으로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여전히 많고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제도는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

윤 연구위원은 “국민 대다수가 노후보장 혜택을 누려야 비로소 공적연금을 강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취약계층에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민영’ 칠레, 보장성 떨어져…‘자동조정장치’ 독일, 효과 증명해외는 어떻게 러, 수급연령 늦췄다가 여론 ‘뭇매’…일, 공무원연금과 통합 칠레는 1981년 국가가 주도하는 노후연금을 폐지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연금으로 대체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커서 생긴 만성적인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새로 도입한 민영연금은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봉급의 10%를 6개 민영연금관리회사(AFP) 중 한 곳에 투자하면 이를 운용해 실적에 따라 연금을 지급했다. 이 방식은 도입 초기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연금 지급액도 커지는 효과를 보여 세계은행으로부터 ‘연금개혁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AFP가 부패하며 연금 지급액은 줄어들었고, 투자수익에 따라 달라지는 연금액은 저소득층의 노후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민영연금을 향한 불만은 점점 커져 2016년 총파업이 일어났다. 칠레에선 올해 4월에도 시민 1만여명이 민영연금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칠레 사례에서 보듯 공적연금을 도입한 대다수 국가들은 기금의 소진을 막기 위해 여러 개혁을 시도했다. 칠레처럼 민영연금으로 전환한 곳도 있고, 보험료를 더 내고 급여를 적게 받게끔 제도를 바꾼 곳도 있다. 개혁의 성패는 달랐지만 뒤늦게 연금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에는 교훈이 되고 있다. 최근 연금개혁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러시아다. 러시아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기금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연금을 받는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늘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지난 6월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한달 만인 지난달부터 반발이 거세졌다. 이들은 “연금을 받는 시기를 늦추면 기대수명과 차이가 없어져 국민들이 사실상 혜택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남성의 경우 기대수명이 66세에 불과한데, 개정안대로라면 연금을 실제 받을 수 있는 기간은 1년 안팎이 된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한달 만에 13%포인트가 내려갔다. 연금 역사가 오래된 독일이나 스웨덴은 사회적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합의로 연금 제도를 꾸준히 손질하고 있다. 특히 이 나라들이 도입한 ‘자동조정장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최근 국민연금의 제도개선 방향에 포함되기도 했다. 자동조정장치란 인구구조나 거시경제 변화에 따라 급여 수준이나 지급 시기를 조절해 재정 적자를 줄이는 제도를 뜻한다. 예를 들어 고령화가 심해지고 은퇴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는 연금 수급시기를 자동적으로 올려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일본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연금개혁을 해온 사례다. 일본은 공무원연금을 다른 공적연금과 통합했다. 일본의 공무원연금은 한국처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공적연금과 비교했을 때 급여 격차가 크고 재정안정성은 떨어져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공무원연금 통합을 시도했고, 30여년 만인 2015년에 결실을 거뒀다. 최근 국내에서도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와 일본의 사례가 관심을 모았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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