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횡단보도 막는 얌체 차량에 뿔난 보행자들 '다리 녹겠네'

정주영 2018. 8. 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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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열기 맞아야 하는 보행자 배려 못 하나.."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나요?"

[오마이뉴스 정주영 기자]

"이 횡단보도를 정말 건너라고요?"

용산역 부근의 정류장에 내린 김아무개(52)씨는 화들짝 놀랐다. 지난 8월 14일, 최고 온도 37도를 기록하는 날 오후 5시경, 김씨를 비롯한 십여 명의 보행자들은 곤경에 처한 모습이었다.

보행자들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를 퇴근 시간대의 차량들이 막아버린 것이다. 5초 정도 시민들이 머뭇거리다 한 시민이 횡단보도 위의 차량 부대를 뚫기 시작하자, 십여 명의 보행자들이 뒤따라갔다.
 횡단보도를 가린 차량들
ⓒ 정주영
도로교통법 제27조에 의해 범칙금 6만 원, 벌점 10점의 처분을 받아야 되는 차량들이지만, 횡단보도를 막은 차주들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파란불을 기다리면서 보행자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날 횡단보도를 막고 있던 차량 중에는 외교관의 차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과 같이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보니, 차량 사이를 지나면서 차량의 매연가스 열기가 얼굴까지 올라오며 순식간에 땀에 뒤범벅 상태가 되었다. 체감적으로 최고온도 37도보다 훨씬 높은 열기였다. 그러나 정작 차안의 사람들은 이러한 보행자들의 불편함에는 무신경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얌체 차량들은 숙대입구역, 노들역 등 주변의 버스 전용 차로 횡단보도에서도 동시간대에 쉽게 발견되었다.

폭염으로 피부염을 앓고있다는 김씨는 매연의 열기가 다리에 닿는 순간 통증이 심해 주저앉을 뻔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누군 차 안 타고 싶어서 이렇게 끓는 아스팔트 위를 걷나요? 이 차량들 다 찍어서 고발해야 돼요.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죠?"

정지선 지키기, 그렇게 힘들까?

차를 몰면 정지선을 지키기 힘든 걸까?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자 그 답을 해줄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햇빛에 맞춰서 차들이 일부러 정지선 뒤로 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시원한 차안에서도 폭염의 햇빛을 피하고 싶으면서, 정작 왜 아스팔트 열기를 그대로 맞아야 하는 보행자들은 배려하지 못하는 걸까?

김씨와 같은 방향으로 따라 걷자, 보행자들 또한 그늘이 있는 끝자락에서 십여 미터 앞 횡단보도 방향으로 한 발자국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폭염에 횡단보도 십여미터 앞 그늘로 물러선 시민들
ⓒ 정주영
사회 초년생인 윤아무개(31)씨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정지선을 안 지키는 차들로 말도 못하게 불편했다. 내년에는 차를 살 계획인데, 저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운전은 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제 27조가 잘 지켜지는 순간

퇴근 시간이 지나고 밤 늦은 시간이 되자 갑자기 차량들이 정지선을 잘 지키기 시작했다. 파란 불이 끝날 때까지 어떤 차들도 먼저 예측 주행을 하지 않았고, 보행자들은 그제서야 위협감 없이 여유있게 횡단 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정지선을 잘 지키는 차량들
ⓒ 정주영
갑자기 왜 모든 차량들이 도로교통법 제 27조를 이렇게 잘 지키게 된 걸까? 심야시간 단속을 위해 건너편에 경찰차 한 대가 이들을 주시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정지선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정지선을 잘 지키는 차량들 건너편으로 경찰차가 주시하고 있다.
ⓒ 정주영
이 현장에 좀 더 있어 봤다. 30분 정도 지켜 보자, 경찰차는 다른 곳으로 순찰을 위해 사라졌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굉음을 울리는 오토바이 세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요란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예측 주행은 경찰차가 사라진 순간 시작되었고, 보행자들은 보행자 신호임에도 불안해 하며 건너기 시작했다.

해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수는 6000건 이상이다. 도로교통공사에서 밝힌 보행중 사망 어린이 수는 5년간 214명으로, 1년 평균 40여 명의 어린이들이 길을 건너다 사망하는 것이다.

노인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노인 보행자 교통 사고는 10명중 7명 이상이 도로 횡단중 발생한다. 법규 위반 사항을 보면 차량 운전자의 안전운전 불이행이 68.4%로, 어르신들의 보호의무 위반 20.6%에 비해 확연하게 높았다. 전체 보행자 사망 사고의 절반 가량이 노인 사망자로 확인되었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은 '생명선'이자 '양심선'으로 불린다. 더 많은 경찰이 더 많이 감시를 해야 하는걸까?

이 지점에 너무 예민하다는 시각들도 있다. 2013년도에 횡단보도 정지선 단속이 시행되는 첫 날, 5천여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단속하자 하루 만에 1622대의 차량이 정지선 위반으로 단속에 걸리기도 했다.

실제로 횡단보도 정지선을 위반해 범칙금을 내봤다던 운전사 윤아무개(53)씨는 "파란 신호등에 진입했다가 신호가 바뀌면서 횡단보도에 걸쳐지는 상태도 종종 있다"며 "보행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보행자 김아무개씨는 "횡단 보도 부근에서는 빨간불이 예상될 때 앞 차간 거리를 살짝 띄워서 운전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정지선은 지킬 수 있다"며 "배려의 차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남민준 법무법인 다한 변호사는 "도로교통법 제27조로 법률이 강제하는 것보다 운전자들의 선진화된 의식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며 "이런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위협하는 행위가 다른 행위(특히 적색신호시 직진, 음주운전, 과속)와 결합하게 되면 그 위험성은 산술적인 더하기가 아니라 곱으로 커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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