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97번의 사계절..아흔일곱 살 산골 할머니의 일기

김효엽 2018. 8. 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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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강원도 산골에 사는 아흔일곱 살 할머니가 수십 년간 써온 일기를 책으로 냈습니다.

할머니가 느낀 자연의 섭리, 어머니의 마음, 참 예쁘게 담겨있는데요.

김효엽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 리포트 ▶

곱게 굽은 등 뒤로 호미가 달랑거립니다.

오늘(19일)은 비 오기 전에 무씨를 뿌려야 합니다.

7살에 처음 밭일을 했으니 이제 90년 된 호미질.

[이옥남/97세] "그게 귀찮아서야 하우? 재미있지, 재미있어요, 이게."

풀 뽑고, 고구마순 다듬고, 할머니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표현대로 겨울 개구리처럼 방안에 가만 누워 있어야 하는 겨울을 가장 싫어합니다.

"나뭇잎도 피고 풀도 솟아오르고 하니까 봄이 좋아요. 가을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마음이 안 좋아. 사람도 늙으면 저렇지 그런 생각 들어서…"

딸이라고 안 가르쳐서 아궁이 잿가루 위에 부지깽이로 가나다라 쓰며 홀로 글자를 익힌 할머니.

도라지 판 돈으로 첫 공책을 산 30여 년 전 어느 날, 할머니의 일기가 시작됐습니다.

[이옥남/97세] "시집가서 고생스러우면 (친정에) 편지한다고 못 배우게 하더라고… 그래서 아버지 몰래 배웠지. 왜 그렇게 글씨가 쓰고 싶던지."

새소리와 바람 냄새, 농사가 가르쳐준 자연의 섭리, 남에게 짐 되지 않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삶의 지혜가 빼뚤빼뚤한 글씨를 타고 공책을 채웠습니다.

치매 검사한다며 불쑥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 보건소 직원에게 어디 사는지, 지금 몇 년인지 보란 듯이 또박또박 대답해준 날, 할머니 일기장엔 이렇게 한 마디 적혔습니다.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자식들이 오면 반갑고 떠나면 쓸쓸한 엄마의 마음은 100년을 살아도 도무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뭔지 늘 봐도 늘 보고 싶고 늘 궁금하다"

[탁동철/외손자] "뭘 가르치는 책은 아니죠. 그런데 마음을 건드리죠. 조금도 꾸미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말을 하는 거죠."

이런 글도 책으로 낼 거리가 되냐고 연신 묻는 할머니, 오늘 밤 일기엔 어떤 이야기가 적힐지 궁금해집니다.

MBC뉴스 깁효엽입니다.

김효엽 기자 (hyupkim@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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