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막기 위해 美와 대립한 'UN의 양심' 지다

정다슬 입력 2018. 8. 19. 12:23 수정 2018. 8. 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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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아난 전 유엔 총장 80세 나이로 별세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등에 맞서 '반전' 의사 밝혀
퇴임 후에도 미얀마 로힝야족 탄압 막기 위한 행보 이어가
文대통령 "한반도 평화 위한 그의 응원 기억하겠다" 애도
△평생을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바친 코피 아난 전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이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2년 제네바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난 전 총장. [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것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지 없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적법성에 문제가 있으며 유엔 헌장을 위반하는 것이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이 합동으로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유엔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코피 아난 당시 UN 총장은 이같이 호소했다. 그는 “유엔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에 앞서 무장 해제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평화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대국 미국과 맞서 전쟁을 반대한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0세. 스위스에 본부를 둔 ‘코피 아난 재단’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가족과 재단은 매우 슬프게도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린다”면서 “그는 고통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다가가 깊은 연민으로 많은 사람을 어루만졌다”고 밝혔다.

아난 전 총장은 평직원에서 유엔 최고 수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첫 아프리카 출신 UN 총장이기도 하다. 1938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나에서 부족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가나 과학기술대에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미네소타 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난 전 총장은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입성한 뒤 나이로비, 제네바, 카이로, 뉴욕 등의 유엔 기구에서 일선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인사관리와 기획예산 책임자, 감사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1993년 부트로스 갈리 당시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으로 발탁됐다. 이어유엔에 첫발을 들인 지 35년 만인 1997년 1월 직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제7대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 개혁,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확산 방지, 빈곤 퇴치, 아프리카 내전 등 지역 분쟁 중재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2001년 현직 유엔 총장으로서는 처음으로 100주년을 맞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엔 내 인권이사회를 설립한 것 역시 그 였다. 2002년 사무총장 재선에 성공해 2006년 말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물론 이라크 전쟁은 그에게 뼈 아픈 상처를 남겼다. 아난 전 총장은 2006년 퇴임 기자회견에서 재임 중 최악의 사건으로 ‘이라크 전쟁’을 꼽으며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UN의 가장 큰 자금 출자국이자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에 대해 세상은 높이 평가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아난 전 총장은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국제적 혼란의 시기에 유엔 수장을 지냈다면서 “양심과 도덕적 중재자로서 유엔과 자신을 내던졌으며, 특히 유엔평화유지군이 지킬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유엔에 활력을 불어넣은 공로가 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작가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아난 전 총장의 2012년 회고록 ‘인터벤션스’(Interventions·개입)에 대한 비평 글에서 “아난 전 총장은 개인적 매력에 더해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권위가 있다”면서 “아난 전 총장만큼 독재자·군벌 등과 협상 테이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인사는 별로 없으며, 그는 스스로 어두운 세계의 ‘사자’(使者)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난 전 총장은 퇴임 후에도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탄압을 막기 위한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평화의 정진을 위해 힘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외교관’으로 불리는 만큼 한국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아난 전 총장은 1998년 제4회 서울평화상을 받았고,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아난 전 총장의 뒤를 이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 전 총장이 이끌던 ‘엘더스’는 지난 4월 청와대에 서한을 보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는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친구를 잃었다. 분쟁이 있는 곳에 코피 아난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응원을 특별히 기억하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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