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점심' 먹고, 새벽 4시에 '주문' 넣습니다
"새벽 4시에 전화로 미국주식 주문하는 70대 자산가도 있어"
"주식하다 돈 날렸다" 술 취한 '진상' 고객도 상대해야
“매일 밤 뉴욕으로 출근합니다. 제 ‘쏘울’은요.” 본인의 '출근길'을 이렇게 설명한 한국투자증권 해외투자영업부 강상훈 대리는 3주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매일 밤 9시에 출근한다.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는 일명 '나이트' 근무. 강 대리는 “'퇴근'하는 오전 7시에 여의도역을 가면 수백 명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고 있다”며 “내려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강 대리가 '밤샘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해외 주식 투자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다른 해외시장이 다양한 데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미국 뉴욕 시장은 한국인 대다수가 잘 때인 오후 10시 30분에 개장한다.
이 때문에 강 대리가 속해 있는 해외투자 담당 부서는 3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낮 근무는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저녁 근무는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나이트 근무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한투증권 2층의 해외투자영업부는 24시간 ‘온 에어(on-air)’다.
국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투자신탁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주로 미리 해외상품을 ‘예약 주문’ 걸어 놓고 퇴근한다. 이 예약된 주문들을 처리하는 게 해외투자부서의 나이트 근무자들이다. 예약 주문이 제대로 들어갈 수 있는지, 주문이 들어가서 제대로 처리됐는지 등을 체크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강 대리와 같은 부서에서 해외선물과 파생상품을 담당하는 이대룡 차장은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시간대별로 나눠서 주문해 달라거나 ‘1분에 한 번씩 몇 분 동안 주문을 내달라’는 등 요구 조건이 매우 다양해서 나이트 근무 때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며 “잘못 주문을 냈다가는 큰 손해도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개인투자자들도 미국 주식 직접투자 등 해외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새벽 시간에 걸려오는 개인 투자자 전화도 꽤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외화증권 결제금액은 572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하반기(467억9000만달러) 대비 22.4% 늘었다. 이중 외화주식 결제금액은 179억5000만달러로 같은 기간 34.0% 증가했다. 특히 미국주식 결제금액은 지난해 하반기(77억2000만달러) 대비 50.5% 증가한 116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강 대리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 미국 우량주에 100억원 정도를 투자한 70대의 고객이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이 마감하기 한 시간 전인 새벽 4시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체결하곤 한다”며 “해외 주식에 대해 비전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 전화를 주시면 저희도 신이 나서 최대한 도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차장이 말한 ‘각오’에는 감정 노동까지 포함돼 있다. 나이트 근무를 하다 보면 술에 취해 전화해 “해외투자 망해서 돈 다 날려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의 푸념도 들어야 하고, 있지도 않은 ‘내부 정보’를 캐내려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가는 ‘진상’ 고객들도 상대해야 한다.
이 차장은 “해외투자 쪽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하고서는 ‘증권사 직원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하시면 답답하다”며 “가능한 한 친절하게 응대해드리려고 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강 대리도 “특히 주식의 경우 오래 전화를 하면 무슨 내부 정보라도 나올까 싶어 전화를 끊지 않는 고객들이 있는데 바쁜 시간대에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장과 강 대리는 해외시장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반갑다고 밝혔다. 강 대리는 “다양한 기업은 물론 국가별로도 자산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은 물론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도 좋은 선택지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도 미리 ‘예약 주문’을 해 놓을 수 있는 만큼, 직장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 대리는 “온라인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주식 시스템에 접속하면 예약주문이 가능하다”며 “원화를 입금하면 달러로 쉽게 환전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환전해 놓고 원하는 가격에 예약 주문을 걸어 놓으면 아침에 일어나 체결된 주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우량주는 물론 ETF나 중·소형주도 인기를 끄는 추세다. 강 대리는 “보수적 투자자라면 ETF를 추천하고,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원하는 분이라면 개별주식 혹은 레버리지 ETF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며 “미국주식 우량주 또는 지수 추종 ETF로 장기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특히 해외파생상품은 레버리지가 큰 상품이어서 시장이 조금만 변동해도 원금까지 날릴 수 있어, 그저 단기 투자 등을 통해 용돈을 벌고자 하는 고객들에겐 권유하지 않고 있다”며 “해외파생상품에 투자하고자 하는 개인투자자의 경우 헤지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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