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새벽 2시에 '점심' 먹고, 새벽 4시에 '주문' 넣습니다

이후연 2018. 8. 1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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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장 시차 맞춰 '밤샘' 근무하는 해외투자 담당자들
"새벽 4시에 전화로 미국주식 주문하는 70대 자산가도 있어"
"주식하다 돈 날렸다" 술 취한 '진상' 고객도 상대해야
지난 10일 밤 10시 30분 서울 여의도의 한국투자증권 2층 해외투자영업부 사무실에서 강상훈 대리(앞쪽)와 이대룡 차장이 미리 예약된 해외주식 및 선물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매일 밤 뉴욕으로 출근합니다. 제 ‘쏘울’은요.” 본인의 '출근길'을 이렇게 설명한 한국투자증권 해외투자영업부 강상훈 대리는 3주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매일 밤 9시에 출근한다.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는 일명 '나이트' 근무. 강 대리는 “'퇴근'하는 오전 7시에 여의도역을 가면 수백 명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고 있다”며 “내려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강 대리가 '밤샘 업무'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해외 주식 투자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다른 해외시장이 다양한 데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미국 뉴욕 시장은 한국인 대다수가 잘 때인 오후 10시 30분에 개장한다.

이 때문에 강 대리가 속해 있는 해외투자 담당 부서는 3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낮 근무는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저녁 근무는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나이트 근무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한투증권 2층의 해외투자영업부는 24시간 ‘온 에어(on-air)’다.

국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투자신탁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주로 미리 해외상품을 ‘예약 주문’ 걸어 놓고 퇴근한다. 이 예약된 주문들을 처리하는 게 해외투자부서의 나이트 근무자들이다. 예약 주문이 제대로 들어갈 수 있는지, 주문이 들어가서 제대로 처리됐는지 등을 체크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강 대리와 같은 부서에서 해외선물과 파생상품을 담당하는 이대룡 차장은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시간대별로 나눠서 주문해 달라거나 ‘1분에 한 번씩 몇 분 동안 주문을 내달라’는 등 요구 조건이 매우 다양해서 나이트 근무 때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며 “잘못 주문을 냈다가는 큰 손해도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개인투자자들도 미국 주식 직접투자 등 해외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새벽 시간에 걸려오는 개인 투자자 전화도 꽤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외화증권 결제금액은 572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하반기(467억9000만달러) 대비 22.4% 늘었다. 이중 외화주식 결제금액은 179억5000만달러로 같은 기간 34.0% 증가했다. 특히 미국주식 결제금액은 지난해 하반기(77억2000만달러) 대비 50.5% 증가한 116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강 대리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 미국 우량주에 100억원 정도를 투자한 70대의 고객이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이 마감하기 한 시간 전인 새벽 4시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체결하곤 한다”며 “해외 주식에 대해 비전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 전화를 주시면 저희도 신이 나서 최대한 도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물론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트 업무 고유의 육체적 피로는 물론 새벽 2시에 해결해야 하는 ‘점심’도 문제다. 야식 업체가 있긴 하지만 족발, 보쌈, 햄버거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강 대리는 “중국집만 배달이 된다고 해도 감사할 것 같다”며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나이트 근무 주가 다가오면 이틀 전부터 미리 낮에 자는 연습을 하는 등 ‘몸만들기’에 돌입한다”며 “체력과 정신 모두가 힘들어지는 만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이 말한 ‘각오’에는 감정 노동까지 포함돼 있다. 나이트 근무를 하다 보면 술에 취해 전화해 “해외투자 망해서 돈 다 날려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의 푸념도 들어야 하고, 있지도 않은 ‘내부 정보’를 캐내려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가는 ‘진상’ 고객들도 상대해야 한다.

이 차장은 “해외투자 쪽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하고서는 ‘증권사 직원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하시면 답답하다”며 “가능한 한 친절하게 응대해드리려고 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강 대리도 “특히 주식의 경우 오래 전화를 하면 무슨 내부 정보라도 나올까 싶어 전화를 끊지 않는 고객들이 있는데 바쁜 시간대에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장과 강 대리는 해외시장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반갑다고 밝혔다. 강 대리는 “다양한 기업은 물론 국가별로도 자산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은 물론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도 좋은 선택지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도 미리 ‘예약 주문’을 해 놓을 수 있는 만큼, 직장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 대리는 “온라인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주식 시스템에 접속하면 예약주문이 가능하다”며 “원화를 입금하면 달러로 쉽게 환전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환전해 놓고 원하는 가격에 예약 주문을 걸어 놓으면 아침에 일어나 체결된 주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우량주는 물론 ETF나 중·소형주도 인기를 끄는 추세다. 강 대리는 “보수적 투자자라면 ETF를 추천하고,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원하는 분이라면 개별주식 혹은 레버리지 ETF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며 “미국주식 우량주 또는 지수 추종 ETF로 장기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특히 해외파생상품은 레버리지가 큰 상품이어서 시장이 조금만 변동해도 원금까지 날릴 수 있어, 그저 단기 투자 등을 통해 용돈을 벌고자 하는 고객들에겐 권유하지 않고 있다”며 “해외파생상품에 투자하고자 하는 개인투자자의 경우 헤지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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