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 대표 팀 사령탑에 오른 파울루 벤투. 16년 전 한일 월드컵에 루이스 피구 등과 함께 포르투갈 대표 팀 일원으로 출전했으나 1승 2패로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벤투가 박지성을 수비하는 장면.
▲ 1970년 한국 축구 국가 대표 1진인 청룡과 동대문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가진 포르투갈 클럽 벤피카. 이 팀에는 뒷날 한국 대표 팀 사령탑에 오르는 움베르투 쿠엘류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득점왕(9골) 에우제비오가 포함돼 있었다. ⓒ한국 축구 100년사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움베르투 쿠엘류에 이어 파울루 벤투가 포르투갈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을 이끌게 됐다.

김판곤 국가 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은 17일 오전 서울 신문로에 있는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벤투 감독 선임 사실을 알렸다.

에우제비오와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우수 선수를 낳은 나라이지만 월드컵 최고 성적이 3위인 포르투갈 출신 축구인이 한국 대표 팀 사령탑에 두 차례나 앉게 되는 과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다.

아무튼 한국은 포르투갈과 다시 한번 더 축구로 인연을 이어 가게 됐다.

#장면 1 핀투, 박지성에게 백 태클 하고 퇴장

한국은 2020년 6월 4일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 월드컵 무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일 월드컵 조별 리그 D조 1차전에 나선 폴란드의 당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은 17위, 한국은 41위로 폴란드의 우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주심의 시작 휘슬이 울리고 나니 24계단의 랭킹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일진일퇴 공방전이 계속됐다. 좀처럼 기울지 않던 경기의 균형이 전반 26분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

폴란드 진영 페널티 라인 부근에서 순간적으로 노 마크 상태에 있던 황선홍은 이을용의 낮은 패스를 왼발 논스톱 하프발리슛으로 연결해 폴란드 골대 오른쪽 귀퉁이에 꽂아 넣었다.

후반 8분에는 유상철이 폴란드 문전 20m 정면에서 통렬한 중거리 슛을 날려 폴란드 골네트 왼쪽 상단을 흔들었다. 6차례 월드컵 출전 15경기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감격적인 승리였다.

꿈만 같은 월드컵 첫 승리를 이뤄 낸 한국의 2차전 상대는 10일 대구 구장에서 맞붙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FIFA 랭킹 5위이자 우승 후보군에 들어 있던 포르투갈을 3-2로 꺾어 기세가 올라 있었다. 경기는 한국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진행됐으나 전반 22분께 불의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미드필더와 공중볼을 다투던 황선홍이 오른쪽 눈 위가 찢어져 치료를 받기 위해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이것이 화근이 됐다. 2분 뒤인 24분 존 오브라이언의 전진 패스를 받은 클린트 메시스가 한국 골문 오른쪽 모서리로 차 넣었다.

선수 숫자 10-11인 가운데 일격을 당한 한국은 39분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힘겨운 경기를 펼치다 후반 33분 이을용의 크로스를 안정환이 헤딩 동점 골로 연결해 패배 직전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1승1무로 D조 선두에 나선 한국은 14일 인천에서 포르투갈과 3차전을 치렀다. 치열했던 공방전은 전반 27분 포르투갈 스트라이커 핀투가 박지성에게 거친 태클을 걸어 퇴장한 데 이어 후반 20분 수비수 베투가 다시 퇴장 명령을 받아 선수 숫자 9-11이 되면서 한국에 유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5분 뒤인 25분 박지성이 이영표의 크로스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 한 다음 곧바로 벼락같은 왼발 슛을 날려 결승점을 뽑았다. 한국은 2승1무(승점 7) 조 1위로 16강에 올랐고 이른바 ‘황금 세대’를 앞세워 야심 차게 나섰던 포르투갈은 1승2패 조 3위로 일찌감치 귀국길에 올랐다.

16년 뒤 한국 대표 팀 사령탑에 오른 벤투는 이 대회 미국과 경기에서만 교체 멤버로 뛰었고 폴란드, 한국과 경기에서는 풀타임으로 활약했다.

# 장면 2 루이스 피구를 비롯한 포르투갈 황금 세대, 남북 단일팀 코리아와 대결

한국과 북한은 1991년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국제축구연맹) U 20 월드컵 전신]에 단일팀 코리아를 구성해 출전했다.

코리아는 남북 18명씩 36명을 먼저 선발해 두 팀으로 나눈 뒤 5월 8일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1차 평가전, 12일 평양에서 2차 평가전을 치러 선수단을 구성했다.

코칭스태프는 감독 안세욱(북) 코치 남대식(남) 트레이너 최만희(남)와 문기남(북)으로 짜였고 선수진은 최익형 박철 강철 노태경 장현호 이임생 조진호 한연철 서동원 이태홍(이상 남측) 김정선 정강성 김정만 최영선 윤철 리창하 최철 조인철(이상 북측) 등 18명으로 꾸렸다.

프로 축구 유공과 평가전을 치르고 장도에 오른 코리아는 조별 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조인철의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어 8강 진출의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아일랜드와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최철의 골로 1-1로 비겼다. 2경기씩을 마친 현재 포르투갈이 2승, 코리아가 1승 1무, 아일랜드가 1무1패, 아르헨티나가 2패였다. 마지막 3차전에서 아일랜드가 아르헨티나와 2-2로 비기고 한국은 포르투갈에 0-1로 졌지만 1승1무1패,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코리아는 준준결승전에서 준우승국 브라질에 1-5로 졌지만 최선을 다해 싸워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8강전에서 멕시코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물리친 뒤 준결승에서 루이 코스타의 결승골로 멕시코를 1-0으로 따돌리고 결승에 올랐다. 1983년 멕시코 대회와 1985년 소련 대회 우승국 브라질과 직전 대회인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챔피언 포르투갈이 겨룬 결승전은 연장전 접전에도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승부차기에서 포르투갈은 1번 키커 호르헤 코스타에 이어 루이스 피구와 파울로 토레스, 루이 코스타가 잇따라 골을 성공해 브라질을 4-2로 물리치고 2연속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17년 서울 대회 현재 이 대회에서 2연속 정상에 오르는 나라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아르헨티나(두 차례) 등 3나라뿐이다.

이 대회에 출전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황금 세대’로 불렸다.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호르헤 코스타, 아벨 사비에르, 카푸초, 비에리라 핀투가 11년 뒤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미국에 2-3, 한국에 0-1로 져 일찌감치 짐을 쌌다.

# 장면 3 50여년 전 청룡-백호와 겨룬 에우제비오 쿠엘류 등 벤피카 멤버들

축구 올드팬과 신세대 팬을 구분하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포르투갈을 내세우는 것이다. 포르투갈 축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에우제비오, 특히 '유세비오'라는 발음으로 기억하는 팬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50대 초반 이상의 올드 팬이다. 루이스 피구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떠올리면 당연히 신세대 팬이다.

에우제비오(Eusebio)를 1960~70년대 언론에서 왜 '유세비오'라고 불렀는지 알 길이 없다. 영어식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에우제비오는 1970년 9월 벤피카 클럽 소속으로 한국을 찾아 당시 한국 축구 대표 팀 1진인 청룡, 2진인 백호와 한 차례씩 평가전을 해 가공할 득점력으로 한국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에우제비오는 백호와 경기에서 30m가 넘는 장거리 프리킥을 엄청난 감아 차기로 성공해 바로 전해인 1969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귄터 네처가 역시 동대문운동장에서 펼친 '바나나킥'의 진수를 국내 팬들에게 다시 한번 선사했다.

벤피카는 백호를 5-0으로 크게 이겼고 청룡과는 에우제비오와 이회택이 한 골씩을 주고받아 1-1로 비겼다. 이때 벤피카 클럽에는 움베르트 쿠엘류 전 한국 대표 팀 감독이 포함돼 있었다.

# 장면 4 포르투갈, 북한에 극적인 역전승

에우제비오 하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떠오르고 뒤이어 북한과 치른 준준결승에서 4골을 몰아 넣었다는 사실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 그만큼 한국의 올드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선수다.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대회 초반 신나는 연승 행진을 벌였다.

올드 트래포드 구장에서 벌어진 3조 첫 경기에서 헝가리를 3-1로 제친 데 이어 2차전에서는 불가리아를 3-0으로 완파했다. 구디슨 파크에서 벌어진 조별 리그 3차전에서 포르투갈은 1958년 스웨덴, 1962년 칠레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브라질을 3-1로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불가리아전에서 대회 첫 골을 기록한 에우제비오는 브라질전에서 추가 골과 마무리 골을 잇따라 터뜨려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헝가리에 1-3으로 져 1패를 안고 있던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져 1승2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에우제비오의 득점 행진은 북한과 치른 준준결승에서 페널티킥 2골을 포함한 4골로 절정에 오른데 이어 잉글랜드와 준결승(웸블리), 소련과 3위 결정전(웸블리)에서 한 골씩 보태며 막을 내렸다.

포르투갈은 에우제비오와 토레스의 연속 골로 소련을 2-1로 제치고 3위를 한 이후 2002년 한일 대회에서 1라운드 탈락할 때까지 한 번도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큰 영광은 없었지만, 아무튼 이때가 포르투갈 축구의 암흑기였다.

잉글랜드 대회 8강전에서 북한에 0-3으로 뒤지다 5-3으로 대역전승한 포르투갈은 한일 대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반도의 또 다른 팀에 결정타를 얻어맞고 귀국 보따리를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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