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냥’ 트로피 사진···한 줌의 도덕이라도 있는가

김창길 기자
단테 신곡의 삽화, 귀스타브 고레(1832-1883)

단테 신곡의 삽화, 귀스타브 고레(1832-1883)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단테는 지옥에 들어선다. 지옥문 입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릴지어다.”

광장에서 거행된 암살범의 사형식은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1757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시종무관 다미앵에게 내려진 형벌은 능지처참이었다.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감옥의 역사를 추적했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의 서두에서 앙시앙 레짐 시대에 거행됐던 국왕 암살 모의자의 잔혹한 신체형벌 사례를 소개했다. 절대 왕권에 도전했던 다미앵의 사형 판결은 당연했다. 하지만 사법의 집행은 단순히 암살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아홉 단계로 나누어진 단테의 신곡에 묘사되는 지옥도처럼 사형수의 신체는 세부 단위로 나뉘어 다양한 종류의 고통을 맞보며 죽음의 단계로 건너가야 했다. 광장의 사형식은 백성들의 구경거리였다.

구경거리로서의 공포는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백성들의 반역에 대한 경고였다. 절대 왕권이 보여주는 지옥의 맛보기였다. 하지만 맛보기가 언제나 제대로 된 맛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죄인은 고통스러운 고문의 과정에서 자기의 유죄를 자백해야 하는데, 끝까지 결백을 외치는 죄인들도 있었다. 참수의 순간에 ‘자유!’를 외쳤던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윌리엄처럼 반역자가 영웅이 되기도 했다. 너무 끔찍하게 반복되는 형벌의 광경에 신물이 난 일부의 백성들은 뒤돌아서서 왕의 잔인함을 힐난하기도 했다. 구경거리로서의 신체형벌 의식은 앙시앙 레짐 이후로 사라졌다. 사법 형벌의 대상도 신체에서 죄인의 정신으로 이동했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전쟁의 참화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전쟁의 참화

소름 끼치는 구경거리가 공개됐다. 2004년 4월 CBS <60분>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학대 사진을 공개했다.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린 두건을 쓴 이라크인 수감자들, 개처럼 목에 줄을 매고 끌려 다니는 죄수, 으르렁대는 사냥개 앞에서 무릎 끓고 겁에 질려 있는 이라크 남성,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알몸의 사진들…. 다큐멘터리 사진 평론집 <무정한 빛>의 저자 수지 린필드는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건을 기록한다. 그러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 학대 사진은 그 자체가 사건이었다.”

아부그라이브 학대보다 잔혹한 광경의 사진과 그림들은 많았다.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종교화나 전쟁 그림들에는 절단된 사체와 낭자한 핏자국들이 넘쳐났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한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치의 카메라다. 소형 카메라 라이카와 에르마녹스를 발명한 독일은 자기들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스스로 기록했다. 아우슈비츠에는 나치 친위대 소속 공식 사진가가 둘이나 있었다. 그들이 남긴 사진은 수천 장에 달한다. 아우슈비츠를 모면한 유대인 문예비평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절망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

야만은 지속됐다. 베트남전, 중동전쟁 등 야만의 시간은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급기야 아도르노가 말했던 ‘미니마 모랄리라(아도르노의 평론집 제목, ‘한 줌의 도덕’이라는 뜻)’도 남아 있지 않은 야만의 사진이 찍혔다. 끔찍한 것은 사진의 내용이 아니라 사진이 찍힌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의 나치들처럼 미군병사들은 고문이 이뤄지는 감옥의 모습을 스스로 촬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고문을 ‘기념했다’는 것이다.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들고! 아부그라이브 사진들은 지난번 사진공책에 적었던 트로피 사냥 기념사진을 연상케 한다. 사진의 구성은 동일하다. 포획한 사냥감의 자리를 고통 받는 이라크 수감자들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아부그라이브 전쟁 트로피 사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이라크 수감자들 앞에서 미군 병사들이 웃고 있다.

아부그라이브 전쟁 트로피 사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이라크 수감자들 앞에서 미군 병사들이 웃고 있다.

아부그라이브의 고문 기념사진은 트로피 사냥 기념사진뿐만 아니라 종례의 전승 기념사진과 동일한 형식을 보여준다. 전리품 앞에서 찍는 승리한 군인들의 기념사진, 이른바 ‘전쟁 트로피 사진’이다. 군인들이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오래된 전쟁의 관행이었다. 전장에 투입된 카메라는 이 오래된 관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전쟁 트로피 사진은 두 가지를 기념한다. 승전의 순간과 적군에게서 빼앗은 자랑스러운 전리품. 그리고 전쟁 트로피 사진 자체도 하나의 트로피가 돼 승전한 군인들의 수집품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유럽의 참상은 아우슈비츠의 사진들로 회상된다. 아우슈비츠는 백인이 백인에게 가한 학살의 기억 저장소가 됐다. 하지만 동시대에 벌어진 세계대전 중 태평양에서 이뤄진 학살은 제대로 기억되고 있지 않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나치가 저지른 학살의 대상은 민간 유대인이었고, 태평양 전쟁터의 미국 병사들의 상대는 적군의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벌어졌던 잔인했던 트로피 수집 행위는 학살의 모습과 동일하다. 백인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내는 인디언들처럼 태평양의 백인 전사들은 일본군의 해골, 치아 등 신체의 일부를 트로피로 만들어 전쟁의 승리를 기념했다. 다음은 태평양 전쟁에 참여했던 한 병사의 증언이다.

“그는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심한 부상 때문에 팔을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이었죠. 한 해병대원은 그 일본 군인의 금이빨을 탐냈습니다. 그는 이빨을 뽑아내기 위해 칼을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일본군은 발악을 하며 발을 휘저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일본군의 입에서는 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나는 그만두라고 소리쳤죠. 처참한 광경을 계속 쳐다보기 힘들었던 동료 병사가 그 일본군의 머리에 총을 쐈습니다.” (위키디피아, 일본군 주검을 훼손한 미군)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화 <씬 레드라인> 후반부에 나왔던 한 해병대원의 만행은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저질렀던 일본군 사체 트로피 수집 행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야만스런 자국 병사들의 만행을 인지한 미 당국은 그것을 금지시켰지만, 사체 트로피 수집 행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잔혹 행위의 근저에는 나치즘과 마찬가지로 인종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었다. 미군들은 적국의 병사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흔히는 원숭이, 그리고 박쥐, 두더지 등 동물과 같은 존재로 일본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태평양 전쟁 트로피 사진이 아프리카 트로피 사냥 기념사진과 동일할 모습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이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찍힌 미군 병사들의 기념사진(위)과 아프리카 트로피 사냥의 기념사진의 프레임 구성은 동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찍힌 미군 병사들의 기념사진(위)과 아프리카 트로피 사냥의 기념사진의 프레임 구성은 동일하다.

21세기에 찍힌 전쟁 트로피 사진 아브그라이브의 사진도 인종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을까? 동양인을 동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물론 백인들의 우월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인종을 동물적 존재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교양은 미국 병사들고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부그라이브의 잔혹행위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해명했던 것처럼 단지 일부 병사들의 일탈행위였을까? 슬로베니아 지식인 슬라보예 지젝은 미군들의 가혹행위 근저에서 발생하는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충돌을 내다본다.

“미국적 생활양식의 실제를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사진들은 즉시 미국 대중문화의 역겨운 이면을, 요컨대 하나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누군가 거쳐야만 하는 고문과 모욕의 입회 의식을 떠올리게 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슬람 문명에 린치를 가한 미국의 저속한 문화 행태를 비판한다. 감옥의 간수였던 미국 병사들의 고문 행위는 군대의 단위 부대나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입회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신참이 받아야 하는 입회 의례는 극단적이며 잔혹하다. 공개된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처럼 성적 모멸감과 일종의 고문 행위도 포함된다. 여기서 가장 잔혹했던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성적인 모멸감이다. 이슬람 문화는 같은 남자라도 다른 남자 앞에서 벌거벗는 일을 매우 모욕적인 일로 여긴다. 알몸의 이라크 수감자들은 동성애가 연상되는 굴욕적인 자세까지 취하며 사진에 찍혔다. 사진은 이슬람 문명이 미국의 저속한 문화에 굴욕적으로 편입되는 하나의 의례를 기념하고 있다.

고전적인 고문의 형식도 바뀌었다. 이전까지의 고문은 수감자의 신체에 가하는 직접적이고 잔인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아부그라이브 감옥의 고문은 수감자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을 공격한다. 정신적인 모멸감을 주는 것, 이것이 아부그라이브 고문의 목적이다. 뉴욕 대학에서 중동아시아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버나드 헤이켈은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기는 것은 끔찍한 고문입니다.”

아부그라이브에서 이뤄진 미국 병사들의 잔혹했던 고문 행위를 단지 문화적 차원으로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설명은 그것이 모두 잘못된 문화 탓이라며 자칫 고문을 가했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도 든다. 일개 병사들이 어떻게 아랍인들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모멸감을 주는 고문의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감옥에서 고참에 속했던 프레드릭 상병은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포로들의 옷을 벗기거나 속옷만 입혀, 화장실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고 환기구나 창문도 없는 독방 안에, 길게는 사흘 동안 가두라고 첩보부가 직접 지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시모어 M 허시는 자칫 이론이나 말잔치로 끝날 수 있었던 아부그라이브 가혹행위의 진상을 2004년 5월 <뉴요커>를 통해 밝혀냈다. 아부그라이브 고문은 부시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일부 병사들의 일탈행위가 아니었다. 물론 백치처럼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한줌의 도덕’도 남아있지 않은 미군 병사들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교묘했던 잔혹행위를 암묵적으로 지시한 것은 CIA요원 등으로 구성된 군 첩보부였다는 것을 허시는 밝혀냈다. 군 첩보부 요원들은 미군이 원하는 정보를 술술 내뱉을 정도의 효과적인 고문을 감옥을 관리하는 미 헌병대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물론 그 지시는, 첩보영화에서 자주 보듯이 공식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밀문서로 봉인돼 있거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두건을 쓴 이라크인 수감자가 손 끝에 전깃줄이 연결된 채 상자 위에 올라 사진에 찍히고 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두건을 쓴 이라크인 수감자가 손 끝에 전깃줄이 연결된 채 상자 위에 올라 사진에 찍히고 있다.

이라크 수감자들의 고문과 학대로 얼룩졌던 아브그라이브 교도소는 2014년 폐쇄됐다. 이라크에 평화가 찾아온 것일까? 그 반대다. 극도로 불안한 아부그라이브 지역의 치안 때문에 죄수들의 탈주를 막기 위해 폐쇄됐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아브그라이브의 고문 사진들도 미국의 패권을 흔들지는 못했다. 끔찍하고 잔인한 사진에 흥분했던 대중들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고문당한 수감자들에게 보상을 할 것이라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부활을 명령했다.

사진은 계속 고발한다. 하지만, 사진이 현실을 바꾸기에는 힘이 부족한 듯하다. 그래서 <무정한 빛>의 저자 수지 린필드는 주장한다. 타인의 고통을 계속 응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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