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패전 후 日 여성들, 소련군 성접대 내몰렸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만주에 남아 있던 일본‘만몽개척단’의 어린 여성들이 소련군 성접대에 내몰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만몽개척단은 일본 정부가 1936년부터 국책으로 만주 개척 정책을 추진할 때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이다.
이달 10일 기후시민회관에서 열린 증언집회에 나선 사토 하루에(93ㆍ종전 당시 20세)는 “당시 간부들이 ‘남편이 군대에 간 부인들에게 부탁할 수 없으니 당신들이 희생해줘야 겠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구로가와 마을의 만몽개척단은 41년 이후 600여명이 중국의 지린성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런 식으로 중국에 간 일본인들이 전체적으로 27만명에 이르렀지만 패전 당시 일본의 관동군 주력이 먼저 철수함에 따라 이들의 대피 등이 문제가 됐다. 실제로 일본 정부의 귀국 지원이 늦어지면서 현지 주민과 옛 소련군에 의해 폭행과 약탈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구로가와 개척단 역시 패전후 일본군에 의해 내팽겨쳐져 현지주민들의 폭행이나 약탈에 시달렸고 인근의 다른 개척단 주민들이 집단 자결했다.
당시 17세였던 한 피해여성(90)은 처음엔 술자리 접대인 줄 알고 나갔다가 이불이 많이 깔린 칸막이도 없는 방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폭행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도망치려다 잡혀 삽자루로 얻어맞았다고 한다. 그가 베껴쓴 간부들의 메모중엔 “여자들을 바치고 수백의 목숨을 지킨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이 피해 여성은 자신을 성접대로 내몬 어른들을 용서하지 못해 일본으로 귀국한 뒤 고향인 구로가와를 딱 2번만 찾았다.
당시 21세던 야스에 요시코(2016년 91세로 사망)은 2013년 강연에서 “성접대에 가게 된 여성들을 울었고, 마을의 노인들이 ‘어차피 일본은 안되니 함게 죽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개척단 부단장이 ‘개척단을 지킬지, 자멸할지는 너희에 달렸다. 너희는 힘이 있다’고 설득했다”고 증언했다. 성접대에 몰린 여성들 중 최고참이었던 요시코는 자신을 접고 친구와 “시집을 못가게 되면 함께 인형가게를 하면서 살자”고 얘기 나눈뒤 성접대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개척단은 46년 9월 귀국했다. 최종적으로 약 400명이 돌아왔다. 스즈무라는 “돌아온 건 요시코 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즈무라는 아이를 갖지 못한 요시코에게 자신의 차남을 양자로 보냈다.
증언에 따르면 접대를 강요받은 여성 중 4명이 성병과 발진 티푸스 등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귀국 후 장기 입원한 사람도 있었고, 성접대 소문이 퍼지면서 독신으로 지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피해 여성 대부분은 구로가와 마을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