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1세대 도시의 눈물.. 中企 가동률 50%도 안 된다

구미=이송원 기자 2018. 8. 1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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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창원·울산 産團 첨단화 실패.. 기업 빠져나가며 지역경제 타격

지난 10일 경북 구미 제1국가산업단지. 도로변 공장 외벽, 뒷길 전신주 등에는 '현재 위치 공장 급매물' '공장 임대·매매'라고 쓰인 현수막과 스티커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구미 공단에서 20여 년 일했다는 김모(49)씨는 "2~3년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공장이 많다"며 "공장은 안 되고, 땅 매매하려는 부동산 업체만 몰린다"고 했다.

매매 현수막 내걸린 구미 산업단지 - 지난 10일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1단지에 공장 매매·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구미 국가산단에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정도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송원 기자

1973년 가동을 시작한 구미 산단은 삼성전자·LG전자 등이 입주하며 '전자 산업의 메카'로 불렸다. 1977년 LG전자의 국내 최초 컬러TV 가 나온 곳도 구미 산단이었다. 그러나 2003년 LG전자 디스플레이, 2010년 삼성전자 휴대전화 생산라인이 수도권과 해외로 이전하면서 활기는 꺾이기 시작했다. 생산 실적은 2011년 61조7934억원에서 2015년 30조4318억원으로 4년 새 거의 반 토막 났다.

구미·창원·울산 등 제조 산업단지들이 시들고 있다. 전남 여수, 서울 구로와 함께 '1세대 산업단지'로 불리며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곳들이다. 장치산업인 석유화학의 여수, IT 업종으로 변신에 성공한 구로와 달리, 전자·기계·조선 중심인 구미·창원·울산은 첨단화에 실패했다.

1세대 제조 산업단지의 쇠락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기계 중심의 창원은 중국 수요로 2010년대 초까지 활기를 보였다. 하지만 주변 거제의 조선업 몰락 등과 맞물려 불황을 맞았다. 중소기업 공장 가동률은 2015년 76.6%에서 최근엔 69.7%로 하락했다. 호황기에 짓기 시작했던 아파트는 현재 고스란히 빈집으로 남아 있다. 현재 창원의 미분양 아파트는 6874가구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구미 산단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77.8%에서 43.6%까지 떨어졌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대기업이 떠나면서 산업단지의 해체가 더 빨라지고, 결국 인구 유출 등으로 도시 자체가 공동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경남 창원 대원동 국가산업단지. 한 중소기업 공장 앞 경비실 창틀에 뽀얀 먼지가 보였다. 공장 안 자판기 전원은 꺼져 있었다. 이 업체는 작년 부도가 났다. 공장 건물과 부지는 경매에 넘어갔다. 감정평가 가격은 48억원이 넘었지만 2차례의 유찰 끝에 지난 7월 31억원에 간신히 낙찰됐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내가 받아 놓은 공장 매물만 20여 건인데, 사겠다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인적 끊어진 창원 산업단지 - 지난 14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국가산업단지의 한 대형 공장엔 인적이 드물었다. 이 공장은 가동 중이지만, 직원 10여명만 일하고 있다고 한다. 3년 전 매물로 나왔지만 지금까지 팔리지 않고 있다. /김동환 기자

대기업 이탈과 함께 내리막

대기업 D사는 3년 전 창원산단에 있는 공장 부지를 2000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창원에 2곳, 베트남에 1곳의 생산 공장을 가지고 플랜트 및 기계·장비를 만든다. 회사 관계자는 "창원 공장 하나를 매각하기로 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2~3년 전만 해도 평당 600만원이었던 창원 산업단지 땅값은 최근엔 400만원을 밑돈다. 창원 신촌동 금속가공업체 이모(52) 대표는 "대기업 하나가 나가면, 협력업체 수십 곳이 흔들린다"고 했다.

구미는 대기업 이전의 쓴맛을 이미 봤다. 구미는 지난 6월 삼성전자가 네트워크 사업부를 수원사업장으로 옮긴다고 발표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구미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가지고 있던 LG는 2003년 7세대 LCD(액정 화면) 생산 라인을 파주에 지었다. 인천 공항·항만을 통한 수출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 라인을 구미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 들어(1~5월) 구미산단 생산은 16조4310억원으로 2012년 같은 기간(30조9919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근로자는 2015년 말 10만2000여 명에서 현재 9만5000여 명으로 줄었다. 2년 반 만에 근로자 7000여 명이 빠져나갔다.

텅 빈 상가… 사람도 빠져나가

산업 단지의 불황은 주변 지역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구미국가산업3단지의 배후 상업·주거 지역인 인동동(仁同洞) 대로변. 삼성전자 2사업장 후문에서 인동 상권을 잇는 '삼성육교' 앞 지상 9층 건물은 1층과 3층 점포가 비어 있었다. 바로 옆 2층이 통째로 비어 있는 건물도 있었다. 권리금 없는 상가 매물이 쌓인다. 현재 구미산단 상가 공실률은 38.6%로 전국 평균(10.7%)의 4배 가깝다.

조선·자동차 중심의 울산산단 상황도 다르지 않다. 15일 저녁 울산 삼산동에는 '임대' 표시가 붙어 있는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4층짜리 신축 상가 건물은 지어진 지 1년이 지났지만 1~3층이 모두 세입자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경기 침체는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 인구는 2015년 120만640명이었지만, 지난달엔 117만9411명까지 줄었다. 31개월 연속 감소다.

고용 구조도 변하고 있다. 창원에선 제조업 근로자는 줄고 서비스업 근로자는 증가세다. 2015년 1분기 11만7524명이었던 제조업 근로자 수는 4년 만에 11만883명까지 줄었다. 제조업 일자리가 7000여 개 감소한 것이다. 반면 서비스업 종사자는 같은 기간 11만1243명에서 12만1222명으로 늘었다. 창원시 관계자는 "제조업체에서 밀려나온 근로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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