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병대.. 마린온 탄 아들,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다"
시민조의금 부대에 기부하자고 할 때 누구도 반대 안해"
노승헌(65)씨의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노씨는 해병대 헬기 '마린온' 추락 사고로 순직한 노동환(36) 중령의 아버지다. 14일 기자와 만난 그는 "오전에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한 시간쯤 울었다"고 했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아들 입관식(入棺式) 때 불렀던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듣는다.
지난달 17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마린온 추락 사고로 조종사 김정일(45) 대령, 부조종사 노동환 중령, 김진화(26) 상사, 김세영(21) 중사, 박재우(20) 병장 등 5명이 순직했다. 유족들은 시민이 낸 조의금 5000만원을 해병대에 기부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군(軍)을 먼저 생각한 유족들에 대해 찬사가 쏟아졌다.
유족 중 한 사람인 노씨는 "장례 기간 해병들이 고생했으니 돈을 해병대에 기부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유족이 영결식 전날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했다. 이 사실은 보름이 지난 후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노씨는 "상관과 동료를 잃은 해병대원도 우리 유족처럼 힘들 것"이라며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이지 같은 유족 아니겠느냐"고 했다.
노씨는 아들보다 먼저 해병으로 복무했다. 건국대 2학년이던 1973년 입대해 포항 해병 1사단에서 근무했다. 아들을 해병대로 이끈 것도 노씨였다. 매 한 번 들지 않고 키운 아들을 고3 때 "인내심을 배우라"며 해병대 캠프에 보냈다. 아들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해병대 장교가 됐다. 손자가 태어나자 노씨는 주변에 "3대(代) 해병 가족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노씨는 아들에게 "36개월 의무 복무만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아들은 해병 헬기 조종 장교 1기 모집에 지원해 직업 군인이 됐다. 걱정됐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 노씨는 해병대에 복무하던 1973년 해병항공단이 해체돼 해군으로 흡수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아들이 해병항공단 재창설에 첫 삽을 뜬다고 생각하니 해병 선배로서도 무척 기뻤다"고 했다.
노씨 부자(父子)는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 스키를 즐겼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부자는 함께 산과 바다로 다녔다. 노씨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사고가 나던 지난달 17일 노씨는 친구들과 강원도 고성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했다. 잠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노 중령)이 헬기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많이 다쳤느냐"고 하자 딸은 울면서 "떠났다"고 했다. 30분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노씨는 "사고 열흘 전쯤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하면서 아들이 '비상 대기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마린온 비행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을 땅에 묻었지만 지금도 현관문을 바라보면 아들이 손자들과 함께 들어올 것만 같다. 괴로워서 오늘 아침에도 소주를 몇 잔 마셨다"고 했다.
군이나 나라에 대한 원망이 없지는 않다. 노씨는 "마린온 헬기 사고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라고 했다. 또 "개발 기간은 짧은데 요구 사항은 많고, 민간 테스트 파일럿이 져야 할 위험 부담을 군인들이 졌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사고 3일째가 돼서야 애도를 표하는 등 정부가 마린온 유가족을 홀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장례까지 다 치른 마당에 아비가 서운함을 더 토로해 뭐 하겠습니까. 사고 원인 조사가 철저히 이뤄질 수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지난달 영결식장에서 노씨의 손자이자 노 중령의 두 아들인 현우(4), 현석(3)군은 대형 스크린에 아버지의 사진이 나오자 "아빠다!"라며 좋아해 주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로봇을 잘 조립해주던 아버지가 집에 없어 투정이 늘었다고 한다.
병역법상 순직 군인 자녀 가운데 한 명은 보충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 하지만 노씨는 손자들이 훗날 해병대에 입대하길 바라고 있다. "강요할 수는 없죠. 다만 손자들이 해병대에 가서 아버지의 삶과 희생을 이해하고 도전 정신을 기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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