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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처 못찾아 5대 은행에 몰린 돈 470조원 `사상최대`

정주원 기자
입력 : 
2018-08-15 17:39:37
수정 : 
2018-08-15 21: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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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예금도 563조로 껑충…올해 상반기만 36조 늘어
주식·부동산 변동성 확대에 안전한 은행으로 자금 몰려…이를 겨냥한 신상품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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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주요 은행에 몰리는 대기성 자금이 크게 늘고 있다. 연이자율 0.1% 수준에 불과한 수시입출금식 예금이나 만기 1년 미만의 정기예금에 자금이 몰리는 것이다. 경기 사이클 변동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과 은행의 유동성·수익성 관리가 맞물린 결과다. 15일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이들 5대 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총 469조382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MMDA(은행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 예금) 등 요구불예금 잔액을 모두 합한 수치다. 요구불예금은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지 돈을 빼고 넣을 수 있는 예금으로, 현금과 유사한 유동성을 갖는다. 각 은행의 개인 보통예금과 기업 자유예금이 대표적이다. MMDA 역시 보통예금과 유사한 기능의 단기 금융상품이다.

5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매월 증가와 감소를 오가긴 했지만 큰 틀에서는 증가세다. 2015년 말 385조6889억원을 기록한 뒤 2016년 말 426조원, 2017년 말 460조원으로 조금씩 규모가 늘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분기 말에는 기업의 재무비율 관리나 정부 재정집행 등 영향으로 액수가 크게 줄거나 늘 수 있다"면서도 "최근 수년간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말기 잔액은 증가해왔다"고 설명했다.

정기예금 또한 올해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5대 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563조7163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6조2069억원 증가했다. 이는 하나은행이 외환은행과 합병해 현 체제로 정비된 2015년 이후 반기별 증가액 기준으론 최대 폭이다.

저금리 기조였던 2016년과 2017년엔 상하반기를 통틀어 1년간 각각 15조8652억원, 22조1664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기예금 중에서도 회전이 빠른 단기예금이 증가하는 모양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시중 자금흐름 주요 특징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의 만기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2016년 말에는 전년 70조5000억원 대비 14% 이상 감소한 60조2000억원에 그쳤는데,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 5월 79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정기예금의 만기별 비중은 6개월 미만 12%, 6개월 이상~1년 미만이 22%로 전년 대비 각각 0.8%포인트, 0.6%포인트 증가했다.

이처럼 단기 대기자금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든 높은 수익률의 상품을 찾아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동자금을 선호하는 만큼 수시입출금식 또는 단기 정기예금에 쏠림 현상이 나타났을 수 있다.

아울러 최근 불안한 재테크 시장 분위기도 여유자금이 은행 수시입출식 예금이나 정기예금으로 몰리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터키 리라화 폭락 등 신흥국 통화 불안으로 한국의 증권시장이 약세를 보이자 불안감을 느낀 금융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은행 예금상품은 원금 손실 우려가 적고 계좌당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금분석팀장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주식 등 투자형 상품에 몰려 있던 자금이 시장에서 은행 금고로 대피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2~3년간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부동산을 통한 추가 시세차익을 거두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은행 단기 상품을 찾기도 한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관망하면서 당분간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려는 수요도 있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엔 기업들이 경기 불안과 금리 인상에 대비해 미리 자금을 조달해두려 회사채 4조6000억원을 순발행했다. 앞서 2016~2017년 경기개선 흐름에 맞춰 회사채 상환 경향을 보인 것과 정반대다. 김 팀장은 "올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고도 투자에 나섰다는 얘기는 뜸하다"며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탁해 쌓아놓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영향도 있다. 올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최저 한도가 기존 90%에서 95%로 상향 조정되는 등 은행들이 강화된 유동성 관련 지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금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은행 입장에선 수시입출금식이나 단기 예금이 늘면 고객에 대한 이자지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적은 조달 비용으로 예대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예금을 유치하려는 은행의 주력 상품은 일반 보통예금 통장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방식의 '단기 고금리'를 표방한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의 'KB우대저축통장(MMDA)'은 신규 때 최소 500만원 이상으로 가입하면, 예치 금액에 따라 0.1~0.8% 금리를 제공한다. KEB하나은행은 인터넷뱅킹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1원만 맡겨도 연 0.5% 우대이율을 주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SC제일은행 '내지갑통장'은 급여이체 실적, 자동이체 실적 등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하면 50만원 초과~200만원 이하 금액에 연 2.8% 금리를 적용해주는 식이다.

정기예금과 자유입출금식 예금 기능을 결합한 상품도 있다. Sh수협은행의 'Sh내가만든통장'과 SC제일은행의 'SC제일 마이줌통장'은 기본적으로 입출금이 자유로운데, 고객이 예치금액을 설정해두고 해당 잔액을 유지하면 연 1.5~1.6%의 금리를 제공한다. 예치금이 설정 잔액에 미치지 못하면 0.1%의 기본 금리를 주지만, 그 이상을 유지하면 1% 이상의 높은 금리를 보장해준다.

공동구매 형식으로 1년 미만의 단기 정기예금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이날 판매 마감된 우리은행의 'iTouch 우리예금(156차)'은 300억원 이상 모집 시 가입자에게 1년 만기 기준 연 최대 2.2% 금리를 제공한다. 3개월은 1.3%, 6개월은 1.6%를 주는데, 회차마다 매진되는 인기 상품이다. SC제일은행은 900억원 이상 모집될 경우 6개월 2.0%, 12개월 2.3% 금리를 적용하는 'e-그린세이브예금' 공동구매 12차 판매를 이달 20일까지 2000억원 한도로 진행 중이다.

제휴처와 손잡고 이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금상품을 내놓은 곳도 있다.

신한은행은 100만원을 한 달간 예치하면 엑스골프(XGOLF) 기프트회원 10개월권을 주는 '엑스골프 정기예금'을 모바일뱅킹 쏠(SOL)에서 판매 중이다. 엑스골프는 77만명의 국내 회원을 확보한 국내 최대 골프 부킹회사다. 기프트회원으로 등록하면 전국 300여 골프장에서 주중 일 1회,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1회씩 무료 부킹이 가능하다. 결제금액의 최대 0.47% 또는 2만엑스포인트를 제공하는 혜택도 준다.

이 밖에 입출금통장과 연결해 여유 자금을 한 달간 두면 정기예금 수준의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쏠편한 저금통' 서비스도 운영해 단기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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