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태극기? 글쎄요" 주택가서 사라지는 태극기

김유아 2018. 8. 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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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주택가에 태극기 단 두 개가 걸려있다./사진=김유아 기자

"어릴 땐 태극기를 꼭 달았는데 요즘은 글쎄요, 집에 태극기도 없어요."
73번째 광복절을 맞은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주택가에서는 태극기 단 두 개만이 걸려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김모씨(51)는 "분가한 후 태극기를 산 적이 없다. 억지로 국기를 게양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과거 국경일 등 '국기 다는 날'이면 전국을 형형색색 수놓았던 태극기가 최근 들어 사라지고 있다. 국경절인 이날 찾은 서울과 수도권 내 주택가들엔 광복절이란 점이 무색할 정도로 태극기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태극기 게양대조차 없는 건물도 많아
15일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에는 태극기가 단 한 곳에도 걸리지 않았다./사진=최용준 기자

이날 오전 본지가 서울·수도권 내 아파트 단지 등을 다니며 세어 본 태극기 수는 전날 서울 광화문 등지에서 시위단체의 손에 들려 펄럭이던 그것보다도 적었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입구에 마련된 국기 게양대에는 태극기가 높이 걸려있었다. 광복절 73주년을 맞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기린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 보니 650가구 중 60가구 만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영등포구 한 아파트는 540가구 중 19가구만이 태극기를 걸어뒀다. 인근 군인아파트는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1개 동에 20가구로 이뤄진 군인아파트에서는 절반에 조금 덜 미치는 7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했다.

수도권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기 의왕시 한 200가구 아파트에서는 단 5가구만이, 인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는 30가구 중 불과 3가구만이 태극기를 달았다. 화성시 능동 등지에서도 아예 태극기가 걸려있지 않은 주택가가 목격됐다.

인천 한 아파트 입주민 김모씨는 "광복절 등 국가기념일이면 태극기를 게양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면서도 "그런데 일단 집에 태극기가 없다. 그래서 실천으로 잘 옮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강남구 한 아파트 주민 박모씨(40·여)는 "구청이 최근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국기 게양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 역효과가 난거 같다"고 털어놨다.

또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원룸 등 다세대주택에는 아예 국기봉이 설치되지 않았다.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건축물에 철근 콘크리트 등으로 난간을 설치하는 경우 각 가구마다 1개소 이상 국기 게양대를 마련해야 하나, 난간이 없는 다세대주택 등은 이 같은 규정에서 제외된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신길역 인근 원룸촌에서 태극기를 걸어놓은 가구를 찾기 어려웠다.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한 다세대주택 건물에 끈으로 고정된 태극기가 걸려있다./사진=김유아 기자

게양대가 없어도 굳은 의지로 태극기를 내건 시민도 있다. 영등포구 신길동 한 다세대주택 3층에는 흰끈으로 단단히 묶인 태극기가 홀로 외롭게 펄럭이고 있었다. 이 집에서 살고 있는 김규식씨(50)가 이른 아침부터 달아놓은 태극기다. 3년 전 그의 막내딸이 학교에서 '태극기 달기' 숙제를 받아온 후부터 매년 이같이 태극기를 달아왔다.

김씨는 "나도 어릴 때부터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태극기 게양은 자랑도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며 "다만 국기봉이 없어 아쉽다. 국기봉이라도 있어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걸지 않겠나"고 했다.

■젊은층 중심으로 온라인 게양도
이 같이 태극기가 주택단지에서 자취를 감춘 데에는 국가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희대 송재룡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과 6.25전쟁 이후 건국과 반공에 대해 교육받은 세대들은 태극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후 세대인 현재 20~40대는 그렇지 않다"며 "태극기 게양을 촌스럽고 구시대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사실 전세계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강대 전상진 사회학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지 않다 보니 태극기 게양이 자연스레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이라며 또 "최근 일부 집회 등으로 인해 태극기에 거부감을 느낀 시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교수는 "요즘 국경일도 휴일로 인식되고 휴가와 겹치다 보니 국기 게양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트위터에는 광복절을 기념해 태극기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트위터 갈무리

거리에서 사라진 태극기들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날 카카오톡이나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젊은층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태극기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심현아씨(24·여)는 "태극기는 사실 정말 예쁜 국기다. 거리에 많이 달렸으면 좋겠지만 요즘엔 태극기를 사는 사람도 없고 게양대마저 없다"며 "아쉬운 마음에 온라인에 직접 태극기 사진을 올렸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태극기 프로젝트' 등을 펼쳐온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요즘은 거리에만 국기를 다는 시대가 아니다. 온라인에 해시태그(#)와 함께 태극기 사진을 올리는 젊은층이 많다"며 "거리에 태극기 게양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다 함께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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