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07) 군대는 독립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학교다 - 주간경향
(107) 군대는 독립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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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은 기숙사 생활과 같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가정과 부모의 품을 떠나 생소하고 성격과 습관이 다른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유사하다. 이 과정을 통해 가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사회생활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거의 모든 남자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20대에 군대에 가야 한다. 요즘 군생활이 복무기간이 짧고, 또 부모 세대가 경험한 군대에 비교하면 시설이나 처우 면에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당사자는 물론 부모의 마음에도 이만저만 염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년에 처음으로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밤잠을 설치며 우울증을 앓는 부모, 특히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

한 육군부대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모포를 개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한 육군부대 생활관에서 병사들이 모포를 개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많은 부모들이 군생활은 아무 의미도 보람도 없는 그야말로 허송세월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시기에 2년여의 공백을 가진다는 것이 무가치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군생활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동안의 군생활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이기도 하다. 군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이득을 찾기 위해서는 군생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늦다. 보통 서구의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이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차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경험을 쌓는다. 대학에 입학을 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고향과 부모 품을 떠나 다른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 방을 세 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 생활

심리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이들은 한마디로 의존적이다.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교사에게 의존적이다. 청소년들은 부모와 교사를 대신해 친구와 한 몸이 된다. 즉,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제일 의존해왔던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대상은 부모이다. 심리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물리적으로 부모와 분리되어 생활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지금까지 모든 것을 부모가 알아서 해주는 안전한 삶에서 벗어나 홀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마치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가 비바람을 이겨내며 광야에서 살아남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 과정은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다. 안정감 대신 생각만 해도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1000명 가까운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의 사감장을 2년간 지낸 적이 있다. 학교 주위에 있는 자취방이나 하숙집보다 시설도 좋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려는 지원자가 많았다. 선발된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정한 규칙에 저촉되지 않는 한 최소한 1년 동안 함께 생활을 한다. 한 방에는 2학년 학생인 ‘방장(房長)’이 1명, 그리고 1학년 학생인 소위 ‘방졸(房卒)’이 2명 함께 생활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입사(入舍) 초기에는 한 방에서 3명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적응을 못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1학기가 끝난 후 자진해서 기숙사를 나간다. 하지만 1학년을 마칠 즈음에는 학생들의 행동이 입사 초기하고는 많이 달라져 있다. 처음에는 조직생활에 낯설어 하던 학생들이 오히려 기숙사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방원(房員)’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물론이고, 식사 및 취침 시간의 준수와 같은 단체생활의 규칙에도 자발적으로 협조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1학년 학생들이 2학년 때도 계속 기숙사 생활을 하기 원하는 것을 보면 1년 동안의 단체생활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위에서 기숙사 생활을 예로 든 것이 군생활의 긍정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학생들은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입에 안 맞는 기숙사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한 방에서 세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모자라 2학년 학생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가며 생활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생소하고 불편하다. 더군다나 밤 늦은 시간까지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어도 옆에서 자는 동료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공동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단체생활이 주는 좋은 점을 조금씩 파악하게 되고, 후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어간다. 1학년 학생은 같은 방을 쓰는 2학년 선배에게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받기도 하며, 수강 신청을 할 때 과목 선정을 하는 요령을 배우기도 한다. 이성교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고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선배에게 배우기도 한다. 동시에 2학년 학생은 후배 2명과 생활을 하면서 윗사람으로서의 처신을 배워 나간다. 제법 의젓한 태도로 후배들에게 기숙사 생활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자상하게 돌보아주는 믿음직한 선배로 커나간다.

물론 군생활은 기숙사 생활과 같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가정과 부모의 품을 떠나 생소하고 성격과 습관이 다른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유사하다. 이 과정을 통해 가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사회생활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 이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비록 싫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는 책임감을 키우며, 위아래 관계를 원활히 하는 사회생활의 기술을 습득하는 점에서는 기숙사와 군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가정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군대는 독립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학교이다.

유난히 사감장실로 자녀의 안부를 물으며 전화를 자주 하던 어머니가 있었다. 아무리 자녀가 잘 지낸다고 사실을 알려주어도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감장실로 그 학생을 불러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어보면서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씩 웃으면서 쾌활하게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백 배나 좋아요!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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