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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시작부터 끝까지 한 컷의 영상 `갓 오브 워`

이경혁 기자
입력 : 
2018-08-15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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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7] 우리는 지난 세 편의 글에 걸쳐 2018년에 출시된 액션어드벤처 게임 '갓 오브 워'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북유럽 신화라는 새로운 배경은 불필요한 넓이에 집착하는 대신 오밀조밀하게 설계된 공간 안에서 최적화된 동선을 통해 할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로 쓰인 신화는 기존의 신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보기 드문 현대 대중문화의 신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갓 오브 워'의 성취는 게임이 단지 신화 속 영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온 신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좁은 반경을 게임의 중심에 둠으로써 좀 더 남다른 게임의 추진 동력을 만들어내는 사실까지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북유럽 신화는 게임이라는 매체에 얹히면서 또 다른 의미를 발산한다. 단지 북유럽 신화를 특정 외부인의 관점으로 되받아쓴 서사물이 아니라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게임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갓 오브 워'는 이야기의 진행이 이미 완결된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개입해 밀고 나가야 하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컷 없이 이어지는 생략 없는 모험의 이야기

그런 특징 중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지점은 바로 이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거의 한 컷 안의 영상으로 펼쳐진다는 점일 것이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 이상, '갓 오브 워'는 시작부터 끝까지의 게임 진행에서 영상을 거의 한 번도 끊어 이어붙이지 않는다. 주인공 크레토스의 상반신에 걸친 어깨너머 시점에서 카메라는 끝없이 주인공의 행적만을 뒤쫓는다. 간혹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장면을 살펴야 할 때도 카메라는 가급적 크레토스의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며, 부득이하게 시선을 바꿀 때에도 컷과 컷을 이어붙이는 대신 카메라를 천천히 이동시켜 오브젝트를 향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한다.

컷이 없는 영상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다시 말해 시간상의 생략이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의 시간 생략은 호수 중앙의 포털을 이용해 다른 세계로 넘어가거나 대장간 안의 차원문 등을 통해 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 또한 거대한 포털 기계를 돌리면서 발생하는 대화나 차원문 안에서 직접 플레이어가 걸어다니면서 발생하는 이야기 등을 통해 로딩 시간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형태로 구현된다. 컷과 컷이 이어지는 영상이 벌어지는 사건들 중 주요한 포인트들을 모아낸 스펙터클로서 의미라면, '갓 오브 워'의 플레이는 그러한 생략이 없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모험을 보다 플레이어에게 가까운 시공간의 경험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데 일조한다.

사진설명
'갓 오브 워' 는 컷신과 인게임 영상의 구분이 없으며, 카메라는 별도의 컷 없이 모든 장면을 이어가며 영상을 연출한다. 컷 없는 시점이동을 통해 부자의 모험은 생략없는 모험 그 자체가 되면서 좀더 플레이어를 게임 속 현장에 가깝게 위치시킨다.
◆인간의 땅 미드가르드에 살아 있는 인간이 없다는 점

컷 없이 이어지는 '갓 오브 워'의 모험이 적으로 맞이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인데, 주로 보스로 등장하는 에시르 신족 인물들과 망자, 트롤, 어둠의 엘프 등으로 구성된 일반 몹들이다. 앞선 글에서 다룬 대로 '갓 오브 워'는 북유럽 신화의 일반적 관점에 대항하는 시점에서 게임이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전 외의 경우 에시르 신족의 병사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여러모로 이어질 다음 시리즈의 서막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직 라그나로크는 시작되지 않았으며, 그 이전의 세계인 현재의 미드가르드는 이미 지금 그 자체로도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망자들은 죽어 헬하임에 가지 못해 미드가르드에 망자로 남았고, 이는 현재의 세계가 라그나로크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무언가에 의해 비정상적인 상황에 돌입했음을 암시한다. 에시르 신족의 일부 캐릭터들이 보스전 형태로 적의 입장에 서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오딘과 토르로 대표되는 에시르 신족들이 헬하임의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현재의 망자들이 양산되는 문제의 배경임을 암시하는 표식이기도 하다.

동시에 상대하는 적들 중에 인간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요소다. 애초에 '갓 오브 워'에는 신과 망자, 괴물을 제외하면 인간의 등장이 거의 없으며, 서브퀘스트를 주는 인물들도 살아 있는 인간이기보다는 주로 망자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질문이 가능한 지점이다. 신화에서 인간의 땅으로 여겨지던 미드가르드에 오직 죽은 인간만이 넘쳐난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은 자들이 에시르 신족과 함께 주인공 일행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라그나로크라는 신화 속의 대사건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그려질 것이라는 일종의 예고일 수 있다.

◆주무기 '리바이어던 도끼'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

그러한 적들로부터 크레토스가 자신을 지키며 싸워가는 무기인 '리바이어던 도끼'는 여러모로 새롭게 시작되는 시리즈의 상징적인 무기다. 근접 공격으로 적들을 후려치면서 동시에 원거리 투척이 가능한 이 도끼는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던진 뒤에 버튼 액션으로 다시 자동 회수가 가능한 신묘함과 함께 손에 다시 잡힐 때 패드의 진동으로 그려낸 '탁!' 하고 잡히는 느낌으로 인기가 높은데, 되돌아와 손에 잡히는 이 감각은 이 도끼가 정확히 신화 속 토르의 주무기인 '묠니르'의 대항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실제 게임 안에서 무기 제작자의 언급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조되는 묠니르·리바이어던의 대립 구도는 특히 묠니르의 주인인 토르와 신화 속에서 완전한 적대관계인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와의 이벤트를 통해 조금 더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게임 초반부, 미드가르드 호수에 잠겨 있던 요르문간드가 몸을 일으켜 크레토스 일행을 만난 뒤 거대한 뱀은 물에 던진 도끼를 삼킨 후 다시 뱉어내 크레토스에게 주는데, 이때 '에이트'를 도끼에 불어넣었다는 설명이 함께 나온다. 에이트는 요르문간드가 만들어내는 독이면서 동시에 북유럽 신화에서 생명의 기원이기도 한 액체인데, 거대한 뱀이 이를 한 번 삼켜 뱉어낸 도끼의 이름이 '리바이어던', 일명 '레비아탄'으로 불리는 것은 바다괴물로 널리 알려진 레비아탄이 요르문간드와 매우 두터운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북유럽 신화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여러 신화들이 한 세계관 안에 동시에 등장할 수 있음이 티르의 신전에서 어느 정도 암시된 상황에서 레비아탄-리바이어던-요르문간드의 연관성은 후속작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충분히 그 연관성을 생각해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사진설명
크레토스의 주무기로 등장하는 '리바이어던 도끼' 는 그 이름과 게임 속 이벤트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상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물건이기도 하다.
◆겨우 시작일 뿐인 새 시리즈에 거는 기대감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부의 전개로 다음 편에 대한 기대를 한껏 올려놓은 '갓 오브 워'의 모험은 3부작으로 예상되는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의 서막일 뿐으로,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섣부른 추측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1편에서 암시된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북유럽 3부작의 얼개는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시리즈는 북유럽 신화의 전통적 관점에 반대되는 입장에서 라그나로크를 풀어낼 것이고, 그 과정은 단지 북유럽 신화 내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타 지역의 세계관이 함께 움직이는 형태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신화의 전개는 단지 이야기로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격렬한 액션을 겸비한 인터랙티브 무용담에 실리면서 이야기로서의 고전 신화와 가상 경험으로서의 안티 테제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 3부작의 서막만을 올린 게임 시리즈에 거는 기대가 작게 머무르기 어려운 이유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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