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원 하위반이 전교 1등이라니.." 강남 엄마들이 술렁댔다

박세미 기자 2018. 8.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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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의 민낯 드러낸 '쌍둥이 자매 1등' 논란

서울 강남구의 명문 사립 A여고에서 불거진 '커닝 의혹'이 학교 담장을 넘어 전국 뉴스가 됐다. 해당 학교 현직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이 지난달 기말고사에서 동시에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한 게 발단이었다.

◇시작은 교내 방송

지난달 중순, 이 학교에 "2학년 쌍둥이 자매가 기말고사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해 성적 우수상을 받는다"는 교내 방송이 나왔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지 않았다. "대체 누구냐"고 술렁거렸다. 1등 자매가 교무부장의 딸이고, 둘 다 대치동 K수학학원에서 '하위권 반'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여기까진 팩트였다.

A여고는 '특목고보다 나은 일반고'로 통한다. 지난해 전국 일반고 중에 서울대를 셋째로 많이 보냈다. 학부모들이 "여긴 벼락치기로 성적이 쑥 오를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고교 교사는 "강남에선 내신 1~20등이 1~2점 차이로 줄 세워질 정도로 최상위권 아이들이 빽빽이 몰려 피 말리는 경쟁을 한다"며 "옆에 앉은 친구가 시험을 못 쳐야 자기 내신 등급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기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나 아주 예민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K수학학원은 대치동에서 '대세'로 소문났다. 학부모들은 "숙제를 월 3회만 안 해와도 강제 퇴원시키는 곳" "숙제가 방대하고, 출결 관리가 빡빡한 곳"이라고 했다. 자매는 여기서 지난해 각각 3레벨과 5레벨 수업을 들었다. 3레벨은 이과 중하위 등급, 5레벨은 문과 맨 아래 등급이다.

학부모들은 이 학원의 레벨 테스트(반 편성 고사) 결과를 기준으로 학교 시험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치동 학원의 상업적인 학업 성적 관리 시스템에 대한 맹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녹아 있다.

◇대치동 술렁이게 한 의혹

곧바로 대치동 학원가에 "K학원 하위반이 A여고 1등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 애들 아버지가 교무부장"이라는 귀엣말이 번졌다. 화가 난 일부 학부모가 지난달 24일 서초강남교육지원청에 'A여고 기말고사에 의혹이 있다'고 민원을 냈다. 교내 방송 나온 지 불과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지원청이 학교 측에 사태 파악을 지시했다. 교무부장이 학교 측에 "전혀 근거 없다"는 소명서를 냈다.

그래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A여고 수석은 서울대 간다→K학원에서 하위권인 아이가 A여고에서 1등 하는 건 불가능하다→따라서 뭔가 있음이 틀림없다"는 3단 논법이었다. 궁지에 몰린 교무부장이 학교 홈페이지에 해명 글을 올렸다.

해명의 골자는 네 가지다. 그는 "딸들이 1학년 1학기 때 각각 121등과 59등을 했지만 2학기 때는 5등과 2등으로 올랐다"고 주장했다. "딸들이 잠을 4시간도 안 잤다" "수학 클리닉에 다녔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업무상 오픈된 교무실에서 정답과 출제 범위 등이 적힌 '이원목적분류표'를 1분 정도 결재를 위해 보았을 뿐"이라고 했다.

주말인 10~11일, 이 지역 엄마들이 강남서초 지역 맘카페에 교무부장의 해명 글을 퍼 나르고 그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11일엔 청와대에 '의혹 규명' 청원도 했다. "자매가 오류 처리된 오답도 똑같이 적었다" "전교 2등과 평균 점수가 7점이나 차이 난다"는 말도 돌았다. 사실 여부에 따라 '인격 살인'이 될 수 있는 말들이다.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사실 여부가 확인 안 된 말들이 도는 사이에, 이 일은 결국 네이버 실검에까지 올랐다. 교육청은 결국 "장학사를 파견해 현장 조사를 벌이고 특별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부정행위 여부를 떠나, 이번 사태 자체가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 정부와 대학은 최근 10여 년간 내신과 학생부를 중심으로 학생을 뽑는 수시 비중을 꾸준히 늘렸다. 옆자리 친구를 이겨야 자기가 좋은 대학에 가는 시스템이 내 자식만 위하고 다른 자식의 성취를 의심하는 '아귀다툼'을 불렀다는 것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자기 자녀가 손해 보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하는 심리에 입시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마녀사냥 하는 듯한 분위기가 안타깝다"며 "만약 잘못이 있으면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지만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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