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진술 일관됐지만 행동은 달라..안희정 무죄 근거

최동현 기자 2018. 8. 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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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 진술과 다른 행동들에 신빙성 의심
法 "위력 행사 증거 없어"..'미투운동 영향' 전문가 전망 분분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미투 1호 판결'로 일컬어지며 주목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피해자의 진술과 다른 행동들'로 인해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는 피해자측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재판의 핵심쟁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업무상 위력의 인정 여부'였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피해자 스스로가 진술 신빙성을 담보하는 행동을 보이지 못했고, 위력의 행사를 입증할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결국 재판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진술은 일관적인데…진술과 다른 행동 자주 보여

재판부가 첫 번째로 집중한 지점은 피해자 김지은씨(33)의 '진술 신빙성'이었다.

현행 형법과 판례에 따르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유·무죄를 결정짓는 핵심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내밀한 사적영역에서 벌어지기 쉬운 성범죄에서 피해자 증언 외에 물적 증거가 남기 어려운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피해자의 기억에 의존한 '증언'을 핵심 증거로 채택하는 만큼 고도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요구한다.

재판부도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이라며 "(진술에) 다소 모순이나 비합리성이 있더라도 신중히 살펴야 한다"며 고심한 흔적을 내비쳤다.

김씨는 지난 3월5일 최초로 피해를 폭로할 때부터 "안 전 지사는 제 의사를 무시하고 권력을 이용해 성폭행했다"며 "한 번도 이성적인 감정을 품어본 적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 '일관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김씨의 행동은 진술과 다른 점을 보인다는 이유로 '신빙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처음 간음을 당하고 몇 시간 뒤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찾으려 애쓰거나 피해 당일 피고인과 와인바에 갔다"며 "또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는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출신인 노영희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김씨의 진술"이라며 "진술은 일관적이고 모순성이 없어야 하는데 진술과 맞지 않은 행동이 다수 보인 점이 재판부에 신뢰를 주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2018.8.1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재판부, '위력' 있었지만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두 번째 쟁점인 '업무상 위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위력을 갖고는 있었지만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난해 8월 강남의 한 호텔에서 있었던 성관계에 대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하였는데, (피해자는)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반문이나 저항이 없었다"며 위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오히려 피해자 스스로가 피고인의 신체접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을 취했고, 그 전후 피고인 및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보아도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어떠한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 변호사는 "업무상 위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나 안 전 지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런데 김씨의 주장과 달리 안 전 지사가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증언이 다수 나왔고, 무엇보다 업무상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지사였던 안 전 지사가 업무상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엄격히 구분해서 판단해야 하고, 이번 사건에서는 위력의 행사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 전문 변호사인 송혜미 법률사무소 현율 변호사도 "(김씨가) 위력에 제압됐다고 보기에는 심리상태가 그렇게 피폐해졌다고 보지 않은 것 같다"며 "상대방이 느끼지 못할 만큼 (거부) 표현이 없었다면 안 전 지사로서는 합의로 (성관계가) 이뤄진 것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14일 오후 4시쯤 충북 청주지법 정문에서 충북미투시민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했다. © News1 박태성기자

◇"미투운동 악영향 끼칠 것" vs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이번 판결에 대한 평가나 미투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송 변호사는 "이번 무죄 판결은 다른 미투 관련 사건에 굉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나 해고의 가능성 등 '추상적인 위력'에 억압을 당했고, 이를 표현하지 못했던 피해자는 법정에서 '왜 저항하지 못했는지'를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투 운동으로 불거진 권력형 성범죄의 첫 판례"라고 이번 판결을 정의한 송 변호사는 "위력'의 개념을 폭넓게 인정하지 않고 기존 판례 입장대로 해석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반면 노 변호사는 "이번 재판으로 '업무상 위력'을 더욱 좁게 해석한다거나 미투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며 "사건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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