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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이`는 M-65 파커에서 떼어낸 내피

남보람 기자
입력 : 
2018-08-14 15:15:02
수정 : 
2018-08-14 1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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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53] (상편에 이어)

1. 미완의 방한 외투, M-51 파커

M-51 파커의 전성기는 짧았다. 그 이유는 첫째, M-51 파커가 비쌌기 때문이다. 파커의 개발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보온성, 활동성, 경제성을 모두 갖춘 보급용 방한 외투를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재'였다. 위 목표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소재인 '나일론'이 있었지만 전투복, 철모피, 총기끈 등 범용 전투장구류에 우선 사용하도록 돼 있었다(M-51 파커의 전 모델인 M-48이 그 비싼 '실크'를 소재로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일론 사용이 제한되자 개발자들은 면과 울을 섞어 M-51 파커를 만들었는데, 대량 보급하기에는 여전히 비쌌다.

둘째, 일종의 '시험 보급'에 그쳤기 때문이다. M-51 파커는 1951년부터 한반도 파병 장병에게 보급됐고 1953년 전쟁이 끝나자 보급이 거의 중단됐다. 휴전 이후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 일부는 전임자로부터 M-51 파커를 물려받아 입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새로 나온 방한복을 입었다. '전략물자'였던 나일론의 사용 통제가 풀리고 신기술이 적용되면서 M-51 파커보다 따뜻하고 움직이기 좋은 방한 외투가 많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M-65 파커다. M-51의 개량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탈부착 가능한 후드 모자와 방한 내피가 특징이었다(이 방한용 내피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깔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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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 모자와 방한용 내피가 결합된 M-65 파커(좌)와 떼어 낸 방한용 내피, 후드 모자(우) /출처=이베이
2. 영국 모드(Mod)족과 파커

1960년대 M-51, M-65 파커는 돌연 영국인들로부터 큰 각광을 받았다. 그것도 전장이 아닌 런던의 거리에서 말이다. 나중에는 유행을 넘어 영국의 전후 세대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의 일부가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영국에선 '모드(Mod) 문화'라는 것이 유행했다. '모드'는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줄임말인데,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감각적이고 반항적인 활동을 추구했다. 모드 문화의 향유층은 주로 런던 노동계급의 청년이었다. 이들을 일컬어 '모드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모드족은 몸에 딱 붙는 슈트에 베스파(Vespa)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록 음악과 모던 재즈를 들었다. 모두 영국 상류계급이 향유하던 문화(크고 넉넉한 슈트, 고급 세단, 클래식 음악)의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모드족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1960년대 런던에는 물 고인 도로나 진창인 비포장길이 많았다. 그래서 모드족은 슈트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입던 빈티지 파커를 구해 겉에 걸치고 다녔다. 이것이 미 군용 파커가 모드 문화의 일부가 된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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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위에 파커를 입고 베스파를 모는 영국 모드족의 모습 /출처=핀터레스트
그렇다면 모드족은 왜 하필 미군 군복을 입고 다녔던 것일까. 한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영국의 위상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었다. 영국은 제국주의로 약소민족 위에 군림하였으나 막상 전쟁(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신이 속한 세계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은 두 번이나 세계의 요청에 응하여 자유와 민주를 지켜냈다. 전후 런던 노동계급 청년들이 미군 군복을 입고 거리를 누빈 것은 그런 영국에 대한 풍자이자 반성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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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를 입고 1960년대 런던 거리를 누비는 영국 모드족의 모습. 파커의 등에 그려 넣은 심볼은 모드족이 좋아하던 록 밴드 'The Who'의 로고다.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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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결성되어 활동한 영국의 록 밴드 'The Who'의 모습과 로고. 모드족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출처=핀터레스트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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