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조이는 폭염과 오존의 이중고

김태훈 기자 2018. 8. 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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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광화문 인근도로에서 주변 직장인들이 지열이 올라와 이글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폭염은 숨통을 조인다. 단순히 더워서만은 아니다. 햇빛이 강해지고 기온이 오르면 대기 중 오존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겨울부터 봄철까지 한반도를 덮었던 미세먼지는 여름에 접어들며 진정세를 보이지만 곧 이어 폭염·오존특보를 마주해야 한다. 앞으로의 한국 사회는 폭염에 더해 오존 피해 등으로 늘어날 인명 및 신체적 피해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느 계절에도 숨쉬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는 것은 한반도의 어두운 미래다.

최근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서는 높은 기온뿐만이 아니라 오존까지 건강을 위협한다. 폭염 때문에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한 오존 피해는 “지표면 오존과 관련된 초과사망은 현재 대비 4배 증가해, 미세먼지 관련 초과사망이 현재보다 2배 증가하는 것과 비교할 때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오존은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배출가스 등에 함유된 질소산화물, 탄화수소류 등이 강한 자외선이 내리쬘 때 광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만들어진다. 햇빛이 강하고 맑은 여름철 오후 2∼5시 무렵, 특히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더욱 농도가 높아진다. 대기 중 오존 농도가 높아지면 호흡기나 눈을 자극해 기침이 나고 눈이 따끔거리거나 심할 경우 폐기능 저하를 가져온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낸 ‘기후변화 폭염 대응을 위한 중장기적 적응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를 보면 폭염으로 지표면에서 오존 농도가 높아지면 미세먼지보다 더 큰 건강상의 피해를 입힐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폭염으로 기온이 올라가면 광화학반응으로 오존 농도가 높아지는데, 높은 기온으로 도로에서 배출된 대기 중 오염원들이 확산되지 않고 갇혀 있게 돼 그 피해는 더욱 커진다. 연구진은 “높은 오존 농도에서 장시간 노출되면 인체의 호흡기관과 면역기능이 약화되고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에 더해 이와 밀접한 오존 농도 상승 때문에 건강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다.

기상학계에서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린다. 태풍이나 홍수, 산사태와 같이 요란하게 들이닥쳐 인명을 비롯해 막심한 피해를 입히는 재난과는 달리 조용히 다가와 오래 지속될수록 목숨을 잃는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더위만이 아니라 오존과 같은 부수적인 피해까지 더해져 악영향은 더욱 커진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1901년 이래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기상재해는 1994년의 폭염이었다. 당시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자 수는 3384명에 달했다. 올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최고기온 기록은 이미 1994년을 넘어섰다. 폭염은 무엇보다 삶을 위협하는 재해로 다가와 있는 셈이다.

8월 9일 현재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특보가 여전히 해제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올 여름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를 집계하기는 이르다. 올 들어 직접적인 온열질환 사망자로 집계된 인원만 8월 8일 기준 44명에 이른다. 하지만 광범위한 폭염 인명피해 가운데 직접적으로 온열질환 때문에 사망했다고 규명된 사망자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올해의 폭염 인명피해가 1994년의 인명피해 기록을 넘어설 수 있다는 단서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7월 중순부터 전국에서 폭염특보가 발령된 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폭염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평년에 비해 사망자 수가 3188명이나 늘어난 점이 대표적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7월 한 달간 집계된 사망자 수 2만3868명은 2008년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발표한 이래 7월 사망자 수로는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 10년간의 7월 한 달 평균 사망자 수보다 15.4% 늘었다. 최악의 인명피해를 기록한 1994년에도 평균 사망자 수를 넘어선 초과사망자 수를 합산해 인명피해 규모를 통계로 낸 것임을 감안하면 올해의 폭염은 역대 가장 큰 기상재해로 기록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8월 들어서도 계속된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아직 집계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갑작스런 폭염에 대한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1994년과는 달리 올해는 이미 기후변화 때문에 나타날 잦은 폭염의 피해를 경고하는 목소리들도 높았기 때문에 피해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7월 초부터 갑작스런 폭염이 밀어닥친 1994년과는 달리 올해는 장마가 끝나면서 폭염 예보가 발효되어 이에 대비한 국민행동요령도 확산됐다”며 “에어컨 보급률도 80%를 넘어서는 등 개인 차원에서 폭염 대비책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4년 전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폭염에 취약한 노인인구가 당시보다 증가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변화는 적응을 부른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와 더불어 사전에 대응방안이 마련돼 있느냐다. 올해의 경우에서 보듯 폭염이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줄곧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해 대응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미 2014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발표한 미래 폭염 시나리오를 보면 대비 없는 폭염이 미칠 피해규모는 한국 사회 전체를 덮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재난안전연구원은 여름철 33도 이상의 폭염이 한 달 동안 지속될 경우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외에도 세균성 질환이 유행하고 건강 취약계층의 면역력이 저하하는 데 더해 각종 사건·사고 증가로 추가 사망자 수가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경기 성남시 야탑10교 인접 도로가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침하되면서 분당구청이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목숨을 위협하는 폭염의 영향력은 곳곳에 도사리게 된다. 철도가 고온으로 늘어나 변형되면서 KTX 등 고속철도를 비롯한 각종 열차편이 운행에 차질을 빚는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전철 등 대중교통이 곳곳에서 멈춰서면서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도로교통 역시 폭염 피해를 입는 것은 마찬가지다. 폭탄이 터지듯 전국 곳곳의 도로에서 시내버스 등 대형차량의 타이어가 터져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이어진다. 대중교통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 자가용 이용이 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로 신호체계 역시 폭염에 따른 정전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며 교통정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대책 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미래 폭염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이러한 비관적 전망이 전혀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폭염이 지배하는 도시는 폭염 그 자체로 인한 신체적인 악영향에 더해 각종 사고와 도시 시스템 기능 정지 때문에 벌어지는 위협에도 대비해야 할 과제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를 벗어나더라도 폭염의 피해가 덜한 것은 아니다. 폭염이 미치는 건강상의 영향은 지역별로 보면 고령인구가 많고 그늘 없는 야외작업이나 비닐하우스 작업이 불가피한 농촌지역에서 두드러진다. 국립기상과학원과 미국 마이애미대가 공동연구한 ‘한국의 도시에서 기후변화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평가’ 보고서에서도 특히 노인들의 폭염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예측했다. 2030년대가 되면 온열질환 사망자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배 이상 증가해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할 경우 66%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기상과학원 변영화 기후연구과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는 이상 강한 폭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며 “연구결과에 따르면 2030년대 정도가 되면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기온 상승폭이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하는 시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단순히 여름 한 철 동안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만도 아니다. 경제적 문제는 1년 내내 일상의 변화를 부른다. 이미 올해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폭염현상으로 가뭄을 겪고 있는 세계적 밀 산지에서 밀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올해 폭염과 가뭄으로 밀 수확에 큰 차질을 빚어 생산량이 전년 대비 1649만톤 감소할 전망이다. 역시 폭염 피해를 입은 캐나다 등 북미산 밀 역시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 급등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축산과 수산분야 역시 국내외를 넘어 피해를 입으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폭염으로 폐사한 닭과 돼지의 두수가 2주 동안에만 217만마리에 달했다. 바다의 양식장 역시 해수면 온도가 30도에 가깝게 올라가면서 폭염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데 더해 양식어종의 폐사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산 축산물에 의존하려고 해도 막막하다. 유가공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도 폭염과 관련된 산불·들불 피해 범위가 넓어지며 축산사료인 건초 가격이 올라 유제품 등 관련 제품의 가격까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 때문에 생산과 유통, 소비구조 모두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현재진행형이지만 향후의 장기적인 전망을 보면 그리 밝다고는 볼 수 없다. 올 여름의 폭염으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외식·배달업체들이 반짝 특수를 보인 면을 제외하면 휴가철 소비경기도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계절 특수를 노리는 관광산업을 보면 동해안 93개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이 360만명을 겨우 넘겨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줄어드는 등 타격이 컸다. 여름철 판매량이 급등하는 맥주 역시 7월과 8월에 연간 매출의 40% 정도가 집중되던 예년과는 달리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3.5% 감소해 폭염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서 지구 전체에 올해와 같은 이상고온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추세가 강해지면 보다 거시적인 측면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자료를 보면 지구 평균기온이 2도만 올라가도 세계적으로 최소 10억명 이상이 물 부족 사태를 겪게 되고, 1000만명에서 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식량 부족 사태를 겪게 된다고 예측했다. 보다 살기 어려운 지역을 떠나 난민 문제가 심각해지고, 지역마다 생존권을 둘러싼 분쟁도 늘어날 전망이다. 극지방이나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 등 병원성 생명체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질병 위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로 국한해 보면 일상생활은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 베트남 등 여름철 평균기온이 더 높은 국가의 생활상을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일상이 된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단열효과가 낮은 주거형태가 바뀌고 혹서기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거나 집중휴가기간을 배치하는 식의 변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의 결과로 생활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긴 시간 동안의 적응을 거치는 데 비해 예상치 못한 피해는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03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유럽 지역의 폭염 피해 탓에 파리에서만 1만4000명 이상의 막대한 폭염 초과사망자가 나온 사례를 보면 선진국에서도 기후재해 대책은 인명피해 예방을 위주로 한 사전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폭염은 사전 예보체계를 갖출 경우 초과사망을 줄일 여지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폭염연구센터장은 “온열질환 증가와 폭염 발생의 상관성을 보면 기상청의 폭염 예보 시스템을 개선해야 선제적 예방이 가능하다”며 “예보를 단기예보와 중기예보로 나눈 뒤 특보를 12시간 이전에 낼 경우 국민들이 온열질환에 대해 선제 대응할 수 있어 환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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