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성악·발레 등 최고의 클래식 무대의상 만드는 정윤민 디자이너
공연드레스는 무대의 꽃..그들이 빛날때 가장 행복하죠
연주자 사소한 버릇까지 고려해 하나뿐인 드레스 만들어
무용가가 만드는 선에 매료되어 본 사람은 안다. 나풀거리는 의상도 혼연일체가 되어 울고 웃고 춤추고 있음을. 김주원 씨는 "관객이 그렇게 느꼈다면 최고의 무대의상일 것"이라며 "발레리나 입장에서 하나 더 바란다면 입은 듯 안 입은 듯 편안했으면 하는 것인데, 정윤민 씨 옷은 두 가지 모두 만족시켜주는 힘이 있다"고 칭찬했다. 무대의상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성악가의 떨림을 감추며 고고한 소리에 공명하고,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의 깊이와 넓이를 고요히 웅변한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노력에 바치는 '꽃 한 송이'에 비유하면 될까. 때로는 관객과의 기싸움을 압도하는 첫 카운터펀치가 되기도 한다. 어떤 예술가이든 자신을 가장 아름답고 편안하게 해주는 의상을 입었을 때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씨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디자이너다.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무용가, 성악가, 연주자들이 그녀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예술가들의 입소문 덕에 작품 전체 의상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도 줄을 잇는다. 대표작은 작년 5월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린 창작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 정씨는 이 작품에 나오는 의상 수십 벌을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었다. 중간 검토 과정에서 탈락한 의상까지 합치면 100벌이 넘는다. '라 실루엣 드 유제니'라 이름 붙인 신사동 작은 아틀리에에서 두 달 사이에 100여 벌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정씨는 국립발레단의 촉망받는 안무가 강효형 씨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예술가들이 최고가 되기 위해 매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데요. 그 결실을 보여주는 곳이 무대이고, 그분들은 그 순간 최고의 옷을 입을 자격이 있어요. 가장 아름다워 보이도록 디자인하고, 가장 귀한 소재들을 골라 최고 장인들의 기술로 옷을 만들려고 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진심을 담는데, 이런 노력을 알아주실 때 제일 기쁘죠."
작년 11월 열린 파바로티 추모 공연에서 화제를 모은 안젤라 게오르기우의 청자색 드레스도 그렇게 낙점됐다. 공연 전날까지도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정씨는 최선을 다해 의상을 만들었고 옷을 입어본 게오르기우는 정씨의 팬이 됐다.
―무대의상은 일반의상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
▷무대 위에서 하는 동작과 위치 이동, 연주자의 사소한 버릇까지 고려해야 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객석에서 다양한 각도로 보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계산해서 디자인한다. 김주원 씨가 지금 입은 드레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살구색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보리, 핑크 등 일곱 겹으로 색감을 살린 것이다. 최고급 레이스로 디테일을 잡았고, 치마 안감에는 반짝이는 큐빅을 일일이 달아줬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무대에서 날아오를 때마다 빛을 발할 것이다.
발레의상이기 때문에 모든 디자인 요소를 갖추고도 깃털처럼 가벼워야 한다. 힘들긴 하지만, 이런 게 무대의상 디자인의 묘미다.
―클래식 무대의상을 주로 만든다. 공연 장르에 따라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 것 같은데.
▷제가 무용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때는 아름다우면서도 춤출 때 편안한 것이 최우선이다. 머릿속으로 동작들을 수백 번씩 상상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선이 나올 디자인을 고민한다. 발레리나 무용수는 누구나 아름답지만 개인 체형에 따라 장단점이 있으니까,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가리는 옷을 만들려고 한다.
개인의 체형과 성향을 고려한 배려도 중요하다. 성악가들은 복부의 떨림이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하고, 갱년기 증상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땀이 나도 금방 마르는 옷감을 쓰는 식이다. 연주자들은 당연히 모든 손동작이 자유롭도록 하는 게 일 순위다. 피아니스트라면 서 있을 때는 물론 앉아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과 페달을 밟는 동작까지 계산에 넣는다.
▷공연 전날까지도 제 드레스를 입을 줄 몰랐다. 워낙 패셔니스타이기도 하고 취향도 까다롭다고 들어서다. 그녀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 듣고 무대에서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디자인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파바로티와 무대에 섰던 전성기처럼 날씬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씬한 실루엣을 살리면서 몸 전체를 리드미컬하게 감싸서 가리고 싶은 부분을 가려주는 데 중점을 뒀다. 공연을 마친 게오르기우가 인스타그램에 따로 코멘트를 해줄 정도로 마음에 들어했고, 이후에도 계속 연락이 온다. 다른 무대에서도 같은 의상을 입은 모습을 유튜브로 봤을 때는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옷을 입혔다.
▷지금까지 만든 드레스가 수백 벌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정경화 선생님이 첫 번째다. 세계적 거장인 정 선생님께서 초짜 디자이너를 믿고 맡겨 주신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때 저는 드레스를 만든 지 갓 7개월 된 이름 없는 디자이너였다. 아무 인연이 없었는데 제가 만든 옷을 보시고 먼저 연락을 주셨더라. 딱 두 번 뵈었을 때 5년 만의 재기 무대 드레스들과 영상 의상을 맡겨주셨는데, 너무너무 감동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예술가들을 지근거리에서 만나며 함께 '최고의 순간'을 만드는 작업은 영혼이 떨리고 경외감이 드는 일이다. 유니버설발레단 황혜민 씨가 '오네긴'으로 은퇴식을 하던 날은 제가 공연 모습을 본뜬 케이크를 선물했다. 13년간 한 발레단에서 헌신한 황혜민 씨가 전설로 기억됐으면 했다.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국립발레단 '허난설헌'이겠다.
▷아, 그때를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다. 두 달 동안 수십 벌을 만드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공연 끝날 때까지 천국에 있는 듯 황홀했다. 허난설헌의 시와 작품을 통해 내면세계로 들어가고, 그걸 의상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이어서 힘들었지만 제 작업 스타일과 너무 잘 맞았다(허난설헌 안무가 강효형 씨는 "옷감 하나를 봐도 제가 떠올리는 이미지와 비슷한 디자인을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또 한 번 의기투합해 지난 1~3일 칠레에서 'Shape of Panther' 초연을 올렸다. 강씨가 안무가로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에 올랐을 때 칠레 산티아고 발레단에서 의뢰받아 만든 작품이다).
―지난 5월 예술의전당과 작업한 오페라 갈라콘서트 '피가로의 결혼' 의상도 예뻤다. '시공간을 지우고 등장인물들을 현대로 데려온 것 같은 의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피가로의 결혼' 같은 오페라는 캐릭터가 명확하고 관객들이 대부분 스토리를 알고 오기 때문에 그 인물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콘셉트를 찾아야 한다. 알마비바 백작부인은 우아함을 살리면서 남편이 수잔나에게 마음이 가버렸다는 걸 알고 마음 졸이는 캐릭터를 살리고, 백작의 어린 시종 케루비노는 극의 활기를 불어넣는 인물로 경쾌하게 디자인했다. 나이 든 시녀장 마르첼리나도 갈등의 중심에서 큰 감정 변화를 살릴 수 있는 의상을 만들려고 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의상이고, 한순간 아름답게 빛났다면 족하다. 드레스 전문 디자이너로서 어머니가 평생 입고 딸에게 물려주어도 좋을 클래식한 드레스를 만드는 것이 꿈이지만, 무대의상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찬란하게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
―무대의상을 만드는 국내 디자이너가 많지는 않은데.
▷지금까지는 대부분 외국 디자이너에게 맡기거나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사실 수익을 따지면 못한다. 일반 의상 디자인에 비해 고려해야 할 것은 수십 배 많고 신경 써야 할 건 수백 배 많다. 더구나 우리는 단 하나의 옷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최고의 소재를 쓰고 최고의 장인들이 실력을 발휘해서 정성스럽게 만든다고 자부한다. 한 번 입을 옷에 왜 그렇게 공을 들이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흘리는 땀과 연습량이 엄청난 분들이다. 최고의 옷을 입을 자격이 있다.
▷노래를 못하지는 않았다(웃음). 제가 하나에 꽂히면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드는 스타일이 있고, 자기 실력으로 인물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전자였다.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를 공연할 때는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거식증이 올 정도였다. 실연 때문에 목숨을 끊는 주인공에게 몰입해 밥도 안 넘어가는 것이었다. 남자와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열여덟 살이….(웃음) 무대에 서는 것이 좋았지만, 노래를 포기하고 옷을 택한 것에 아쉬움은 없다.
―스무 살 때 텍스타일 경영으로 전공을 바꿨는데.
▷그때는 제가 디자인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단 개발자가 되면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이나 부모님 회사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고급 원단들을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았다. 좋은 원단을 개발하고 수입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원단을 접해볼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이너 부모님께 심미안과 안목을 물려받았다고 했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드레스를 만드는 걸 보고 자랐다. 제가 색감 감각이 좋다고 원단을 자주 고르게 했다. 엄마가 그린 디자인 도식화를 보여주며 "이런 디자인을 만들 건데 어떤 원단을 쓰면 예쁠까"라고 물어보시면 저와 동생이 같이 고르곤 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는 엄마가 모피나 원단·부자재를 사러 외국에 가시거나 아빠가 프랑스 프리미에르 비죵이라는 원단 쇼에 가실 때 함께 가기도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법한 작품들이 원단으로 구현되고 텍스처까지 가미된 것을 직접 본 경험은 엄청난 자산이 됐다.
―'부모님 덕분에 디자이너로 쉽게 안착했다'는 말도 듣는다(정씨의 아버지는 1980년대부터 클라라 윤을 이끌며 패션협회 부회장까지 지낸 정환상 씨로 2015년 5월 작고했다. 정씨의 어머니는 국내 드레스와 무대의상 역사를 만든 굴지의 디자이너이자 1990년대 말 떠들썩했던 '옷 로비' 사건에 휘말린 정일순 라스포사 대표다).
▷제가 누구 딸인지 말하지 않고 산 지 꽤 오래됐다. 1~2년 전부터인가 갑자기 '내가 엄마 딸이라는 걸 왜 밝히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옷 로비 사건 당시 국가정보원 조사 1년, 세무조사 1년, 언론에 오르내리며 1년, 도합 3년을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렸다. 정말 혐의가 있었다면 그 과정에서 다 밝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직원 100여 명을 두고 한 해 매출 수백억 원을 올리던 회사는 부도가 났고, 부모님은 충격으로 병을 얻으셨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제가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이후 8년을 칩거하다시피 했다. 그때는 누구도 우리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언론도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다 두려웠다.
―동생 정유진 디자이너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겠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자매다. 동생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다. 저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치열하게 작업하는 동료고 정신적 안식처다. 우리 아틀리에는 두 라인으로 운영된다. 유진이는 맞춤정장처럼 평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저는 특별한 날 입는 드레스에 집중한다. 유진이는 2003년 라스포사와 클라라 윤에 입사해 인턴부터 정통 디자이너 교육을 받았다. 미술을 전공해 그림 실력도 뛰어나다. 제가 떠오르는 대로 아이디어를 말하면 금방 알아듣고 그려준다.
―5년 전 동생과 아틀리에를 차릴 때 부모님과 일하던 장인 선생님들을 모셔왔다고 들었다.
▷라스포사는 모든 면에서 '최고'를 고집하기로 유명했다. 1990년대에 레이스 만드는 부서, 패턴 뜨는 부서 등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동생과 작은 오피스텔에서 작업하고 직접 배달해가며 힘겹게 꾸려가고 있었는데, 라스포사 옛 직원 모임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놀랐고 감동했다. 그 사건으로 모든 사람이 우리를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들 실력이 최고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삼고초려해 모셔왔다. 제대로 월급을 드리기도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겨우 안정기에 왔다. 다들 저에게는 은인이고 스승이시다.
―예술가들에게도,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에게도, 본인은 '조력자'라고 말한다.
▷사실이 그렇다. 저는 살고 싶어 옷을 만들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아침에 눈을 뜨고, 일하고, 밥먹고 하는 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잠을 줄이고 먹는 것도 잊어가며 죽도록 일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고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 '최고'인 사람들이 가득하더라.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최고의 작품을 만들자고 매일 다짐한다. 무대의상을 만드는 것도 이렇게 용기 내어 인터뷰하게 된 것도 그런 분들께 보답하고 싶어서다.
―딸 디자인에 대한 어머님 평가는 어떤가. 디자이너로서 어머니는 어떻게 평가하나.
▷'넌 한참 멀었다'가 단골 멘트다(웃음). 디자인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그렇다. 라스포사는 바느질 기법부터 소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정통 기법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무대 장악력과 이목을 끄는 디자인에 탁월하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스코리아 의상을 전담했는데, 지금 보면 너무 거하다는 느낌이 있다. 반면 저는 보이는 듯 안보이는 듯 심플하고 세련된 실루엣을 추구한다. 올림픽 경기장처럼 큰 무대용 드레스를 만들 때는 엄마 드레스를 많이 공부했다. 어떤 폭으로 해야 할지, 어떤 디테일을 살릴지 고민하는데 보다 보면 저는 날고 기어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요즘은 편찮으셔서 소소하게 지인들 옷만 만들어주시는데 '패턴의 한 끗 차이'를 잡아내신다. 이른바 6070세대의 품이 따로 있는데 그걸 기막히게 만들어 내고,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까지 고려해 옷을 만드시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 어머니가 허난설헌과 피가로의 결혼 의상은 극찬하셨다고.
▷'너는 디자인이랑 미술 공부를 안 해서인지 너만의 시각으로 옷을 만드는구나. 전 세계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경험이 시각적으로 녹아나 아름답다'고 하셔서 감동했다. 제가 무대의상에 참여한 공연은 꼭 함께 보신다.
―디자이너로서 롤모델이 있다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금기숙 홍익대 섬유 미술 패션디자인과 교수님이 디자인한 피켓걸 복장이 너무 아름다웠다. 의상의 구슬은 선수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흘렸을 땀방울인 '열정'을 표현한 것이라는데 열정과 땀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하시는지. 완벽한 실루엣으로 우리나라의 드레스 문화를 이끄신 앙드레 김 선생님, '색감의 천재'이신 정구호 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엄마의 드레스 선생님이셨던 김현숙 선생님도 잊지 못할 은인이자 멘토다.
―평생 옷에 파묻혀 살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옷은.
▷10년 전 동생 유진이가 만들어준 블랙 레이스 원피스다. 이번 컬렉션에서 다시 선보였는데 드라마 '미스티' 주인공인 김남주 씨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한지민 씨가 입었다. 고객들 반응도 뜨거워서 '좋은 디자인을 알아보시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20년도 더 전에 엄마가 디자인한 것을 변형한 거라더라. 클래식은 영원하다. 모두에게 그런 클래식한 옷이 한 벌쯤 있었으면 좋겠다.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무대의상 디자이너로는 허난설헌 같은 전막 창작 작품에 다시 도전하고 싶고, 올림픽 주경기장처럼 스케일이 큰 작업도 해보고 싶다. 이번 영국 왕실 결혼식을 보다 보니 여왕이나 공주들 드레스 작업도 흥미로울 것 같더라. 최고의 재료를 아낌없이 쓰면서 우리 장인 선생님들 기술을 다 발휘해서 진짜 '작품'을 만들 자신이 있다. K팝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드레스로 한류를 못하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우리 아틀리에에는 졸업파티를 앞둔 학생들도 오고, 아직은 무명인 예술가들도 온다. 친한 고객들 부탁으로 웨딩드레스와 예복, 혼주복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한 작업도 한다. 세계적인 예술가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여왕이든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든, 최고의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 꿈이다.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제 옷으로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최고를 입을 자격이 있어요"라고.
■ 정윤민 디자이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드레스 디자이너이면서 발레와 오페라·성악 등 클래식 공연의 무대의상을 만든다. 지금까지 작업한 무대의상만 1000벌이 넘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 발레리나 김주원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그녀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작품 전체 의상을 맡아 디자인하기도 하는데 대표작으로 국립발레단과 함께한 창작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가 있다. 배우 문소리가 감독·출연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붉은 드레스, 김남주가 드라마 '미스티' 포스터 촬영 때 입은 블랙 드레스, 드라마 '돈꽃'에서 이미숙 씨가 입은 드레스 등도 정씨 작품이다.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월넛힐스쿨 , 맨해튼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스무 살에 텍스타일 경영으로 전공을 바꿔 뉴욕주립대 패션대학을 졸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동생 정유진 디자이너와 '라 실루엣 드 유제니'를 운영하고 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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