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살아있고 감성이 흐르는 곳…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생겼다

안희경

카멜협곡 밑바닥에 있는 타사하라 선원에는 어둠이 일찍 차올랐다. 달은 더 높이 있었다.

센터를 에두른 산이 더 검은 실루엣으로 도량을 품게 하려는 듯 마당 가운데로 달빛을 쪼였다. 다소곳이 줄 서 있는 대중 속 금빛 머리칼 위로 연노랗게 맺혔다

여름 사막의 마른공기는 스무 평 남짓한 법당에서 맥을 추스르지 못했다. 문지방을 넘자 바투 서 있던 100여명의 숨결에 눅진해졌고, 그만큼의 나머지 사람들이 틈을 메워 불경을 합송하자 맨살 위로 방울졌다. 서까래도 땀을 흘렸다.

[안희경의 일상과의 대화]이성이 살아있고 감성이 흐르는 곳…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생겼다

미국식 단기 출가, 템플 스테이, 선원 관광…. 뭐라 이름 붙일 재간은 없지만, 캘리포니아 카멜밸리에 있는 수행처로 떠났던 2014년 휴가의 마지막 밤을 잊지 못한다. 달이 뜨고 올려진 보름 법회(full moon ceremony), 영어로 이어지는 염불 속에서 돌아가신 이들을 기리는 내용이 들리고 나서야 음력 7월 보름, 백중(百中)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름휴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비늘 촘촘한 물고기처럼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떠났다. 그까짓 이유라면 뒷방에라도 들어가 문 걸어 잠그면 될 일인데 차를 몰고 다섯 시간 반을 달려 계곡 속 수행처에 몸을 묶었다. 몸을 가둬 마음을 붙들려 했던 바캉스다.

2014년이 오기 넉 달 전부터 나는 그해를 준비하며 살았고, 벽두에 시작한 연재는 여섯 달째 이어졌으며, 이를 책으로 정리하느라 말 뭉치 속에 파묻혀 다시 여덟 달을 보냈다. 해가 바뀌어도 놓아주지 못했던 길고 긴 2014년이었다. 그때의 글들은 <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지성과의 대화>라는 연재와 책으로 묶어 나왔다. 섭외가 성사되면 팽팽히 당겨진 새총 고무줄에 감긴 돌멩이처럼 튀어나갔다. 20만리 길을 들락거리며 11명의 지성과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는 대담을 했다.

여름 태양이 절절 끓을쯤에야 짐 가방을 털어 말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생각을 맞았다. ‘떠나자. 딱 사흘만 내가 내 몸 안에 온전히 있는 시간을 만들자.’ 남편에게 또 어딘가를 가겠다 말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미숫가루 물처럼 뒤범벅되어 부유하는 내 안을 정돈해야 했다. 큰 스승들을 만나며 광산 갱도의 벽처럼 곡괭이질 당한 통념 가루들이 침전될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은 별일 아닌 듯 내 휴가에 동의했고, 가고 싶던 젠 센터에는 침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카멜협곡 중턱에 있는 마지막 마을에 하루 한 번만 들르는 선원의 셔틀 SUV차량이 오전 10시30분에 떠난다 했다. 그 차를 놓치면 4륜구동 오프로드 차를 빌리든지 22㎞ 산악 행군을 해야 한다 했다. 몬트레이만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산을 넘자 군락을 이룬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향기가 퍼져왔다. 사나운 코알라를 진정시킨다는 유칼립투스가 차보다 빨리 달려가는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흙먼지 더께가 내려앉은 전차 같은 SUV가 들어왔다. 어디 있었는지 일곱 사람이 나무 벤치로 몰려들었다. 다들 먼 길 찾아온 고생담을 늘어 놓았다. 운전사는 이제부터가 진짜 타사하라 가는 길이라며 중심 잘 잡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시속 25㎞로 한 시간을 달리는 흙길에는 쉼 없이 돌들이 박혀 있고, 이리저리 쏠리며 돌아가는 굽이 길 옆은 낭떠러지였다. 마치 설악산을 차 타고 오르듯 아득히 멀리까지 이어진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실제 설악산 높이의 봉우리들이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아찔했는데, 선원에 자주 온다는 이가 1918년에 마찻길로 뚫린 길이라고 설명해줬다. 타사하라에 있는 핫 스프링(온천)이 백인들에게 유명해지면서 중국인들을 데려다 길을 닦았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서 우울한 이민의 역사가 떠돌 때, 차 안에서는 서로를 소개하는 환영의 인사들이 오갔다. 내 뒤에 앉은 중년 여성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왔다 하고, 3월 말이면 선원의 방이 다 차기에 연초부터 벼르고 별러 접수했다 했다. 뉴욕에서 날아온 젊은이도 있었고, 센터에서 청년시절 10년을 보내고 다시 찾는다며 그윽이 감회에 젖는 초로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다들 백인이었다.

지친 심신 쉬러 떠난 여름휴가
캘리포니아 협곡 속 온천 근처
타사하라 선원으로 ‘단기 출가’
전기 안 들어와 등유램프 지급
홀로코스트·킬링필드의 아픔
유방암 생존자의 따뜻한 인사…
낯선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서로 등불로 ‘발밑 어둠’ 밝혀줘

타사하라 젠 센터는 1967년에 선 수행을 하는 절로 탈바꿈됐다. 일본 조동종의 스즈키 스님이 첫 해외 사찰로 개원한 것으로 유럽계 지주로부터 온천 옆에 지어진 리조트 건물과 대지를 사들여 일군 도량이다. 봄가을, 겨울에는 산문을 닫고 장기 체류자들과 거주자들만 수행 정진한다. 여름 한 철에만 단기 수행자들에게 개방한다. 아마도 들고 나기 어려운 험준한 산길 때문에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속적으로 가늠해 보았다.

타사하라로 닿는 마지막 15㎞는 차가 물구나무서서 내려갈 정도로 가팔랐다. 길은 또 어찌나 좁던지 세상과 단절하겠다 마음만 먹으면 피아노 한 대로도 막을 수 있는 요새 같았다.

선원 자리는 덕수궁만큼 넓었다. 처음 그곳에 온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모든 음식물은 부엌 옆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 수시로 드나드는 야생 동물들 때문이다. 태양광 에너지로 자가발전하는 시설이라 전기기구도 쓸 수 없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안된다. 단, 사무실 인터넷이 가능하지만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해달라 부탁했다.

그다음 중요한 지침은 등불이었다. 모두에게 등유램프를 나눠줬다. 목 긴 호리병 같은 유리 덮개가 백 년은 되돌아간 느낌을 주었다.

나는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연결된 여성 기숙사에 묵었다. 캐나다에서 온 중년 여성은 벼랑 꼭대기에 있는 꽤 넓은 독채로 올라갔다. 그곳에 1주일 머무는 비용이면 알래스카 크루즈도 갈 텐데 왜 여기로 왔을까 궁금해졌다. 도량에는 가족이나 단체를 위한 독채가 여러 채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서니 나보다 연배가 높은 중년 백인 여성 둘이 휴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한 명은 청년시절 이곳에서 지냈다며, 다음 날부터 올드 멤버들의 모임이 있다고 알려줬다. 꽤 오래 수행한 태가 배어 나왔다. 다른 한 명은 시카고 외곽에서 왔고 나흘 동안 이어지는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고 했다. 나는 명상 수업도, 붓글씨도, 다도도, 기공도, 요가도, 관계 맺기 심리 탐구도… 아무것도 신청하지 않았다. 산사의 일과 따라 부지런하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자 마음먹었고, 참선 시간에 생각만이라도 끊어보자, 아니 졸지만 말자, 아니 오전 5시 기상이라도 지키자 다짐하고 왔을 뿐이다.

첫 점심은 환상적이었다. 아니 모든 식사가 고결했다. 하여 나마저도 우아해지는 체험을 했다. 채식으로 차려진 홈스타일 코스 요리는 호박, 가지, 오이 등등의 푸성귀를 주인공으로 변신시키는 정찬이었다. 한 입 물면 ‘참 건강해지는 음식이다’라는 신호가 뇌로 바로 왔다. 그런데 맛조차 혀에 감겼다.

말은 적게, 들떠 스스로를 부풀리는 짓은 그만하자 해놓고는 선한 눈빛의 사람들이 “어디서 왔니? 뭐하니?”를 묻자마자, 지난 6개월 동안 매달리던 연재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단한 사람들 이름을 말하면, 나도 실제보다 과하게 부풀려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물지 못했다. 옆에 앉은 뉴욕에서 온 디자이너 청년을 의식하며,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인터뷰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래서, 마리나는 뭐라 했어?” 하고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마리나가 강조했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멈춰야 한다. 오직 우리가 용서를 배울 때만 살육을 멈출 수 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거릿이 매우 논란이 많은 이슈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UC 산타크루즈 대학의 심리연구소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마거릿은 ‘용서’라는 메시지는 상대의 고통을 외면한 무책임한 소리일 수 있다고 거부했다. 만약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면 용서라는 메시지에 감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폴란드에서 자란 유대인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부모도, 친척도, 친구의 부모들도 다들 홀로코스트 생존자라고 했다. 그 당시 얘기를 절대 꺼내지 않던 자기 부모를 이해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었다.

마거릿이 킬링필드에서 탈출한 캄보디아 난민을 인터뷰할 때였다. 폴 포트 정권에서 겪은 일을 묻자 한결같이 침묵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앞에 놓인 물컵을 들며 그 속에 모래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한참을 있다가 다시 말을 잇기를, 이제 모래가 바닥에 가라앉았을 거라며, 자신은 다시 그 모래를 휘저어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마거릿도, 그의 부모도 절대 녹지 않는 앙금을 그저 가만히 가라앉히고 사는 물컵이었던 것이다.

마거릿과의 대화는 그 이후 선원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내 입을 좀 무겁게 했으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대화를 다시 정리하여 책 원고를 쓰던 겨울까지 화두처럼 내 안에 똬리 틀었고, 나의 생각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오후 시간, 냇가 근처에 있는 온천 별채로 향했다. 여닫이문이 활짝 열려 실내 온천탕까지 하늘이 들어왔고, 노천탕은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물도 좋았지만 바람도 좋았다. 벼랑 끝 별채로 올라갔던 여성도 계곡물에서 몸을 식히고 걸어오며, 바람이 따뜻하여 좋다고 인사를 건넸다. 나도 미소 지었지만 그녀의 젖가슴이 마음에 얹혀 왔다. 그녀는 유방암 생존자였다. 앙 다문 입술처럼 젖꼭지가 절제되어 있었다. 내 아이들은 이미 다 자라서 수유할 일이 없기에 나는 이제 덜 무서워해도 된다 다독였지만, 나의 이모도, 옆집 수지 아주머니도 힘들었겠다 생각하니 편치 않았다. 훈풍은 계속 불어왔다.

트레킹에 나섰다가 200m도 못 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걷다 목욕하다 자다 보내던 시간이었고, 참선 방석 위에서도 번잡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고요 속에서 하나의 생각, 하나의 깨우침은 찾아왔다. 벅차오름을 맛볼 수 있었다.

타사하라에서 낯선 이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나는 선계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서로의 약점을 공유해도 안전한 곳이었다. 이성이 살아있고 감성이 물처럼 흐르는 그곳에서는 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저절로 일었다.

마지막 밤, 법회를 마치고 온천으로 향했다. 법당의 불빛 잔영이 사라지자 내가 내딛는 발걸음으로 한줄기 빛이 비췄다. 신비롭다 느낄 뻔하다 고개를 돌리고서야 알아챘다. 뒤에서 오던, 아주머니가 내 발길을 살피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내 발밑을 보게 되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비추라. 불가에서 ‘진리를 밖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뜻).



[안희경의 일상과의 대화]이성이 살아있고 감성이 흐르는 곳…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생겼다

필자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 출신으로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2014),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을 엮은 <문명, 그 길을 묻다>(2015) 등을 냈다. 지난해에는 경향신문에 마사 누스바움, 레베카 솔닛 등과의 대담을 기록한 <세계여성지성과의 대화>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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