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집권 2년차 '청와대·부처 갈등설' 표면 위로
[경향신문] ㆍ여권 내부 소통 이상기류
여권 내부 소통에 이상 기류가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 정책을 둘러싼 시각차가 여과 없이 외부로 표출되는가 하면 사실관계를 놓고 ‘진실 공방’이 빚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청와대에 끌려가던 관료사회가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부 내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러 징후와 소문으로 번졌던 갈등설은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됐다. 박 전 의원은 “최근 청와대와 정부 내 갈등설이 있다”며 “그 한 당사자를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짧게 조우할 기회가 있었는데, ‘많이 바쁘시겠다’ ‘수고가 많으시다’라는 인사말에 예상외의 답이 돌아와 조금은 놀랐다”고 했다.
이 청와대 인사는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 “말을 할 수 없는 위치라 답답하다” “밖에 나가 인터넷 언론사라도 만들어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했다고 박 전 의원은 전했다.
박 전 의원은 “더러 행간이 보였던 그 갈등설이 꽤 심각한 상태까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요 며칠 사이 드러난 바로 보면 균형추가 이미 기운 것이 아닌가 싶다. 문자 그대로 심각하다”고 썼다.
박 전 의원이 언급한 인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추정된다. 박 전 의원과 장 실장은 참여연대 출신으로, 가까운 사이다. 박 전 의원은 2주 전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장 실장으로 추정되는 해당 인물과 잠시 동석했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 해당 인물이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고 지목한 인물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추측된다.
경제정책을 놓고 진보적 경제학자 출신인 장 실장과 김 부총리 사이에 시각차가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김 부총리는 ‘규제혁신→투자촉진→혁신성장’에 무게를 싣는 쪽이다. 최근 불거진 ‘김 부총리의 삼성 투자 구걸’ 논란도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장 실장과 ‘기업 투자’를 중시하는 김 부총리 간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박 전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소문으로 듣던 것, 언뜻언뜻 행간이 드러났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페이스북 글에서 인용한 워딩은 한 마디도 덧붙인 게 없다. 말한 그대로”라고 했다. 또 “이 양반이 외롭다고 느꼈다. 한탄하듯이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장 실장 교체설’과 관련, “대통령도 알고 계시다, 대통령은 꼿꼿하시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하는 만큼 장 실장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장 실장이 그런 말을 한 적 없고, 박원석 전 의원을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다른 갈등 사례도 나왔다. 최근 일부 언론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의 직급 문제를 놓고, 통일부가 청와대의 지침을 어기고 ‘항명’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통일부는 ‘사실무근’이라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흔드는 세력이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 주변 원로들과 청와대 일부 참모 그룹들이 조 장관의 조심스러운 일처리 방식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게 배경이라는 말이 통일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와 국방부가 얼굴을 붉혔다는 말도 있다. 국방부가 송 장관이 기무사 개혁안 발표 전날 문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사실과 다른 얘기를 언론에 흘려 ‘유임설’을 기정사실화하려 하자 청와대가 불쾌해했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 관계자들은 “송 장관 거취와 관련돼 결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인사문제 등으로 불편해졌다는 소문도 잇따른다. 임 실장의 독주에 대한 여권 내부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국정을 주도하다 보니 부처들의 불만이 팽배한 게 사실”이라며 “문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지난 1년간 숨죽였던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정부 정책 혼선을 막고 여권 내 소모적 갈등을 줄이려면 청와대·부처의 역할과 위상, 소통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관료사회와 여권 내부를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제혁·이효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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