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나라’ 아르헨, 낙태 허용법 상원서 7표차 부결

박효재 기자

하원서 ‘4표차 통과’ 후 뒤집혀…가톨릭 영향력 행사 의심

<b>낙태 합법화 지지 여성들 ‘믿을 수 없어…’</b>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9일(현지시간) 새벽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회 앞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이 상원에서 7표차로 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여성을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AFP연합뉴스

낙태 합법화 지지 여성들 ‘믿을 수 없어…’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9일(현지시간) 새벽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회 앞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이 상원에서 7표차로 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는 여성을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에서 9일(현지시간) 임신 14주 이내까지는 임신부가 자유롭게 낙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부결됐다. 상원 재적 의원 72명 중 찬성 31표, 반대 38표로 법안이 부결됐다고 현지언론이 전했다.

이날 새벽 표결에 앞서 의원들은 15시간 이상 토론을 진행했다. 그만큼 찬반 입장이 팽팽했다. 지난 6월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됐을 때도 4표 차에 불과했다. 법안 부결로 낙태는 현행대로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에만 한정된다.

아르헨티나에서 낙태합법화 시도는 지금까지 7차례 있었지만 의회 표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민주적 과정을 통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며 의회에서 논의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날 표결 직전 “결과와 상관없이 오늘은 민주주의가 승리한 날”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2016년에만 50만건의 불법낙태가 이뤄졌다. 보건부는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전문성이 없는 이들에 의한 시술로 연간 임신부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산한다. 낙태 찬성 활동가들은 그 수를 최소 연간 3000명으로 추정한다.

낙태 찬성 측에선 이번 결과에 가톨릭교회가 영향을 미쳤다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낙태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접촉해 동료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설득해달라고 했다는 현지언론 보도도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인구의 90%가 가톨릭교도인 아르헨티나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면 중남미 지역 전체로 임신부 인권 보호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남미에서 임신부의 선택적 낙태를 전면 허용한 나라는 쿠바, 우루과이가 전부다.

의회 주변에는 표결 전날부터 낙태 찬성파·반대파 등 수십만명이 모여 TV로 생중계되는 의회 토론과 표결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찬성파는 녹색, 반대파는 하늘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표결 결과가 발표되자 찬성 진영 여성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한 낙태반대 활동가는 “이번 표결은 아르헨티나가 여전히 가족의 가치를 대변하는 나라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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