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새까맣게 타들어가요” 전남 단감마을 농민들 ‘허탈’

글·사진 배명재 기자
9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마을 들녘에서 만난 한 농민이 검게 변해가는 단감을 보여주고 있다.

9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마을 들녘에서 만난 한 농민이 검게 변해가는 단감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지역 대표적인 단감 생산지인 담양군 고서면 산덕마을엔 감이 햇빛에 타들어가는 ‘일소(日燒)’ 피해로 비상이 걸렸다.

이 마을은 20여가구가 80여㏊ 규모의 농경지에서 감농사를 하며 살고 있다. 주민들은 “감나무 밭 절반이 이런 피해를 입었는데, 앞으로 더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9일 오전 이 마을 산비탈과 들녘에 펼쳐진 드넓은 감나무밭. 주렁주렁 달린 감은 아직 익을 때가 아닌데도 노란색 감이 수두룩했다. 상처받지 않은 초록색 감과 확연히 비교됐다. 이미 껍질이 썩으면서 검게 변해가는 감도 많았다. 감나무 밑엔 따내버린 감, 햇빛에 말라 떨어진 잎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을 뒤편에서 2만여㎡ 감나무밭을 일구는 오병철씨(46)는 “노란빛을 띤 감은 3~4일 지나면 시커멓게 되고, 일주일이면 모두 썩어 떨어진다”면서 “10여년 단감 농사에 이런 황당한 피해는 처음 경험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감나무 밭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ㄱ씨(67)는 “상품성을 잃은 감을 이미 3분의 1 이상 따내서 버렸다”면서 “피해를 입지 않은 감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감을 솎아내고 있으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 농부’ ㄴ씨(68)는 “감나무에 잎이 많이 떨어지면서 남아있는 감도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업친 데 덥친 격으로 갈색매치충이 대거 나타나 나무를 갉아먹는 피해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농민은 감나무밭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산비탈 밭 9만여㎡에서 감농사를 짓는 오영춘씨(65)는 “물에 칼슘을 넣어 뿌려주면 감 껍질이 두꺼워진다고 해서 사흘 전부터 물을 뿌리고 있다”면서 “그냥 하늘만 바라볼 수 없어 이렇게 하고 있지만 뙤약볕이 너무 강해 효과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이번 폭염 피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천재지변’인 만큼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해보험에 들었다는 ㄷ씨(57)는 “태풍이나 폭우 등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재해보험엔 가입했지만 이번 피해는 폭염 때문이라 보상받을 길도 없다”면서 “엄연히 천재지변인 만큼 정부나 지자체가 농민 피해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문제인데도 아직 아무런 대책 마련이 없어 더욱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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