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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신화의 무대 넘어 가족을 이야기 하는 게임 `갓 오브 워`

이경혁 기자
입력 : 
2018-08-08 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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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6] ◆신화를 무대로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

북유럽 신화가 그려내는 광활한 배경이 하나의 호수와 주변의 신전으로 응축된 무대 안에 표현되고,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는 기존 관점의 반대편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이 2018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갓 오브 워'의 중심이다.

신화의 원전에서 주인공 편 혹은 선한 무리로 분류되던 오딘과 토르를 중심으로 한 에시르 신족은 게임 안에서 포악하고 음흉한 존재들로 묘사되며, 에시르 신의 시대를 끝장낼 것으로 예언된 괴물 같은 무리들, 거인, 거대한 뱀, 거대한 늑대들은 오히려 우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게임 '갓 오브 워' 이야기는 고전적 신화에 대한 되받아쓰기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데, 게임은 단지 입장을 바꿔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은 양편을 갈라 싸우는 입장의 한 손을 들어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닌, 그 둘의 대립 사이에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를 택한다. '갓 오브 워'의 실질적인 플레이 동선을 담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자족의 여정이다.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크레토스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어 입장에서 함께 싸우는 캐릭터는 둘이다. 실제 컨트롤할 수 있는 주인공인 크레토스와 그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아들 아트레우스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둘은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나무를 모아 온다. 화장이 끝난 유골을 유언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뿌리기 위한 여정을 준비한다. 아들을 잠시 집에 두고 혼자 다녀오려던 크레토스는 갑자기 집에 찾아온 낯선 남성의 위협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 아들을 데리고 함께 떠나기로 하고, 단지 간단한 등산일 것 같았던 유골 운반의 여정은 사실상 '갓 오브 워'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모두 담당하는 퀘스트가 된다. 게임의 배경과 주제는 북유럽 신화지만, 중심 소재는 신화가 아닌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활도 제대로 못 쏘고, 칼도 제대로 못 다루는 아직 어린이에 가까운 아들을 보호해야 하는 아버지 크레토스의 입장은 내내 쓴소리로만 나타난다. 아직 험한 세상에서 혼자 생존하기 어려운 아들은 자신이 할 줄 안다며 자꾸 나서다가 실수를 연발하게 되고, 이 때문에 간단한 여행일 것 같았던 여정은 점점 험난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중간중간에 보이는 반항끼 때문에 울화통 터지는 아버지의 시선까지 나오는 장면에 이르면 적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하여간 자식놈이란…'이란 한숨 어린 탄식을 뱉게도 만드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은 이렇게 삐걱이는 부자관계가 단지 미숙하고 경험 없는 아들로부터 비롯되는 문제가 아님을 계속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레토스가 아들을 부르는 호칭인 'Boy'다. 한국어로 뉘앙스를 살려 번역한다면 '꼬마' 정도일 것 같은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아들을 부를 때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대략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아들 아트레우스의 성장기를 돌본 이는 게임 시작 전에 이미 사망한 어머니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크레토스는 육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갑작스러운 아내의 사망으로 아들을 떠맡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 괴팍한 사내의 문제는 한편으로 슬픈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아버지와 화목한 관계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갓 오브 워' 시리즈의 주인공인 크레토스는 전작 3부작에서 그리스신화 속을 누비며 자신의 아버지가 그리스신화의 주신 제우스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라는 제우스는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들었을 뿐이며, 그 결과로 크레토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올림포스 신전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그런 배경을 가진 크레토스에게 아들이란 존재는 사실 싫어하거나 꺼린다기보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존재로서 의미가 강했다.

크레토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기로 했다. 토끼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과한 데다 어리석었고, 거북이는 꾸준하고 절제가 있었다. 거북이가 이겼다.

아트레우스: 저…, 옛날이야기 해본 적 별로 없으시죠?

* '갓 오브 워' 플레이 중 크레토스가 아들에게 해주는 옛날이야기 사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라도 들려달라는 아들의 말에 저런 식으로밖에 대처하지 못하는 크레토스에게 아트레우스는 'Boy' 말고는 부르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자신 또한 어린 시절에 그런 관계를 경험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여정에서 아들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관계는 단지 보호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크레토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마치 군대식 훈련과 같은 수준의 지식 전달과 가르침에 머무르곤 한다.

◆성장하는 아들, 완성되는 유대

많은 게임들은 진행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적들과 어려운 과제들을 부여한다. 게임의 흥미를 끝까지 가져가기 위해서 도전과 극복은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는 경향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갓 오브 워' 또한 마찬가지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는 모두 경험치를 얻어가면서 서서히 새 기술을 개방하고 장비를 강화한다.

무려 '전쟁의 신'인 크레토스는 사실 성장은 하지만 이미 애초부터 강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트레우스만큼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 편이다. 크레토스의 성장은 경험치 쪽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재료와 제작기법을 얻은 뒤 강화하는 무기와 장비로부터 기인한다. 사실 전쟁의 신이 처음에는 나약했다가 점점 성장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장비 강화라는 방식을 통해 게임은 전쟁의 신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게임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캐릭터는 아트레우스다. 초반에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의 데미지를 입히는 활 공격이지만, 아트레우스는 점점 더 강력해진다. 아버지와 합을 맞춰 싸우기도 하고 활에 마법의 힘이 깃들며 갈 수 없는 곳에 길을 열면서 적들을 기절시킨다. 나중에는 마법의 힘을 개방하기까지 하는 아트레우스의 성장은 장비 강화보다 훨씬 두껍게 설계돼 있다. 두 캐릭터는 각각 장비 강화와 기술 성장을 통해 점차 강력해지는 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성장엔 적지 않은 고통도 함께한다. 평범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아트레우스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신의 성질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갑자기 오만해지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여정은 점점 더 험난해지고 고달파지기도 한다. 아버지 지시에 잘 따르던 초반부를 지나 자신의 성장을 과신하며 일을 그르치고, 그로 인한 결과에 고통받는 아트레우스의 모습은 게임 내내 아버지인 크레토스 시점에서 비춰지며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크레토스 스스로도 아버지로서 내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경험하게 된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입장에 당황하던 크레토스는 아들의 반항으로 벌어진 사태들을 수습하고, 그 과정에서 단지 자신의 병사나 부하가 아닌 아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아들 또한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면서 동시에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다시 말해 옛날이야기는 재미있게 못하더라도 자신의 성장을 묵묵하게 뒷받침해주고자 하는 의지만은 명확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인 이 둘의 교감이 성공적으로 완성됐을 때 비로소 게임이 엔딩에 이르른다는 점은 이 게임의 중심이 신화가 아니라 가족에 있음을 알려주는 요소다.

사진설명
'갓 오브 워' 는 신화를 배경이자 주요 서사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중심은 불완전한 아버지와 아직 덜 성장한 아들의 이야기로부터 이루어진다.


◆가족은 그렇게 안락한 단어만은 아니다

불완전했던 가족의 관계가 자책과 안심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유의미해지는 장면이 '갓 오브 워'에서는 빛기둥 안으로 크레토스가 들어가는 이벤트를 통해 표현된다. 어둠의 엘프들에게 점령당한 지역에서 빛기둥 안으로 들어가려는 크레토스는 아들을 밖에 혼자 두는 것이 걱정돼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리바이어던 도끼를 처음으로 아들 손에 쥐여준다.

혼자 빛기둥 안의 환영을 쫓던 크레토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영상들을 마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빛기둥 밖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만나기 직전이었던 크레토스가 아들에게 화를 내지만, 자신에게 잠깐이었던 빛기둥 안의 시간은 바깥에선 엄청난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 아트레우스는 혼자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위기의 시간을 보냈음을 아들 뒤에 산처럼 쌓인 적의 시체를 보면서 알게 된다.

언제나 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아들을 위험한 공간에 두고 도끼를 쥐여주는 장면에는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못 미더운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학교를 가게 되거나 처음 부모 품을 떠나 여행을 가게 될 때 부모들이 겪게 되는 심정이 담긴다. 그리고 잠시 자신의 일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들이 겪은 시련을 보면서 자책하면서도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자 그 역경들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아들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이벤트가 중심점이 되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는 좀 더 돈독해지며, 가족이 서로에게 갖는 불안과 안도의 교차가 무엇인지를 게임은 '성장과 시련'을 통해 꾸준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족의 관계라는 것은 오로지 안락하고 평안한 뉘앙스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끊임없이 한 사건에 대해 불안과 안도가 교차하는 것이라는 점은 '갓 오브 워'가 게임 시작부터 엔딩 이전까지 꾸준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중심 주제다.

신화 속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이 가족관계라는, '기쁨과 슬픔이 구별되지 않는 덩어리'를 겪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지 서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과 결합하면서 좀 더 두꺼운 임팩트를 선사한다. 전작에서 보여줬던 파괴신 같은 캐릭터가 새롭게 만나는 전장의 상황 구성을 통해 이 이야기는 스스로를 완성하고 다음 이야기를 예고한다. 다음 편에 그 자세한 이야기를 더 정리해보도록 하자.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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