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전자음과 섞인 원시음, 기묘한 순수

2018. 8.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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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맑음.

소나기.

노랗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2018년 서울에 사는 어른아이들은 빌딩 현관 밑에 제비처럼 모여 뭔가 잡담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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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8년 8월 7일 맑음. 소나기. #291 Enigma ‘Return to Innocence’(1993년)

어제 오후 2시쯤. 카페의 에어컨 바람이 지긋지긋해졌다. 야외와 통한 건물 계단참으로 햇볕을 쐬러 나갔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건 그때다. 가끔 세상은 어떤 뮤직비디오를 일생에 딱 한 번, 나에게만 보여준다.

이번엔 이렇게 시작했다. 노랗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풍경 속 어른들은 그대로 아이들이 됐다. “꺄악!” 왠지 즐겁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빌딩 현관으로 뛰어드는 어른아이들. 바로 그 순간. 이어폰에서 독일 그룹 이니그마의 노래가 시작됐다. “허∼이야이∼ 하∼이요 아이아이야∼.” 고달픈 유목민족의 목축 노동요 같은 소리. ‘Return to Innocence(사진)’다.

‘약하다고 두려워 마/강하다고 잘난 체 마/맘속을 들여다 봐, 친구/자신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순수로 돌아가게….’

루마니아계 독일인인 이니그마의 리더, 미하엘 크레투는 우연히 듣게 된 대만 소수민족, 아미족의 노래를 채집하듯 샘플링했다. 거기에 웅장한 전자 비트와 신시사이저를 결합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만이 가진 기묘한 느낌이 있다. 마치 정적인 명상을 하며 이국의 초원을 질주하는 것 같달까.

뮤직비디오는 과수를 따다 숨을 거두는 촌로의 일생을 역재생해 보여준다. 농부들은 접지 가위로 나무에 포도를 도로 붙이고, 씨는 뿌린 이의 손으로 되돌아가며, 닭털은 닭의 몸통에 다시 가 붙는다. 촌로는 어느새 청년이 돼 마을 여성과 수줍게 혼례를 올리며 그들은 다시 소년소녀가 돼 일기장에 꿈을 적는다.

이제 2018년 서울에 사는 어른아이들은 빌딩 현관 밑에 제비처럼 모여 뭔가 잡담을 나누고 있다. 인공의 회색 빌딩 사이에 낀 어색한 초록에 불과했던 나무들은 빗물을 맞자 흙과 잎 냄새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기에 늘 있었다고, 당신도 어서 이리로 돌아오라고. 노래하듯. 그들의 푸른색 합창이 중력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하늘로 올라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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