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든 팬들, 아이돌 출근길 찍으러 출근합니다

고희진·이유진 기자 입력 2018. 8. 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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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연예인 ‘공출목’ 사진 아시나요…공항 출국·방송 출근·일상 목격
ㆍ폭염보다 더 뜨거운 아이돌 ‘뮤뱅 출근길’ 현장 가보니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홀 앞에서 수백명의 팬과 기자들이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에 출연하기 위해 출근한 아이돌 그룹을 촬영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새벽 5시50분. 카메라와 사다리를 든 사람들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름 햇빛이 이미 땅을 달구고 있었다. 기온은 이미 30도에 육박했고 습도는 85%에 달했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송글 맺힌다. 6시 정각.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철문을 개방한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뒤처질세라 서로를 밀고 뛴다. 이들은 경호원들이 미리 설치해 놓은 게이트 뒤에 줄지어 선다. 으레 그래왔다는 듯이 자연스레 사다리를 설치하고 위에 올라서 화각을 잰다. 렌즈가 길게 빠져나오는 것이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카메라들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뮤직뱅크> 녹화 현장 모습이다. <뮤직뱅크>에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이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모습인 ‘출근길’ 사진은 이미 팬들에게 유명하다. 기자들 외에도 일명 ‘홈마’ 혹은 ‘찍덕’으로 불리는 일반인들이 거의 매주 이곳을 찾는다. 홈마는 ‘홈페이지+마스터’의 줄임말이다. 연예인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팬을 말한다.

영어·일어·중국어 뒤섞인 현장 BTS·엑소 오는 날엔 1000명 육박 일본 팬 “짧은 순간 불구 큰 기쁨”

■ ‘뮤뱅 출근길’ 찾는 K팝(Pop)팬들

‘공출목’이라는 말도 있다. 연예인의 공항 출국, 방송 출퇴근, 일상생활 목격 사진을 줄인 말이다. 출근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KBS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의 ‘뮤뱅 출근길’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 생방송하는 <뮤직뱅크>에는 다수의 아이돌 가수가 출연하는데, 이들은 리허설 등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방송국을 찾는다. 팬들은 이들을 보기 위해서 방송국 주변을 서성인다. 그저 서성이기만 하던 팬들이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오기 시작한 것은 약 4~5년 전의 일이다.

한 연예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한 인터넷 연예 매체가 가수들의 무대 전후 모습을 몰래 찍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찍힌 사진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라가면서 다른 연예 매체까지 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점점 기자들뿐만 아니라 비싼 카메라를 든 팬들까지 몰리게 되면서 어느 순간엔 ‘출근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방송국과 달리 일반인의 진입이 쉬운 KBS의 특성도 다수의 음악 방송 중 <뮤직뱅크>에 팬들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MBC, SBS 등은 단독 빌딩 건물 구조인 데다 가수들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팬들이 가수를 기다릴 곳이 마땅치 않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안전 문제까지 생기자 KBS는 ‘관리’에 들어갔다. 사진 찍을 기자들에게는 미리 공문을 받고, 팬들은 허락된 장소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게이트를 설치하고 금요일 새벽부터 경비원들이 현장을 관리한다. 그럼에도 관리는 쉽지 않다. 팬들은 방송 전날부터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줄을 서며 밤을 새운다.

이날은 약 350여명(KBS 관계자 추산)의 팬들이 현장을 찾았다. ‘방탄소년단’이나 ‘엑소’ 같은 그룹의 출연이 있는 날엔 사람들이 거의 1000명에 육박한다. 안전을 위해 펜스를 설치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앞으로 몰리면 펜스가 무너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뮤뱅 출근길’이 유명해지면서 최근에는 해외 팬들까지 몰리고 있다. 현장에선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뒤섞여서 들렸다. 일본인 노리코(40)는 방송이 있기 이틀 전 한국에 왔다. 명동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이날을 기다렸다. ‘FT 아일랜드’의 팬이라는 그는 친구 세 명과 ‘뮤뱅 출근길’을 보러 왔다. 가수 이홍기를 눈으로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짧은 순간이지만 (가수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이 현장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대만에서 왔다는 윤조우씨(22) 역시 방송이 있기 5일 전부터 한국을 찾았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친구와 함께 출근길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는 그룹 마마무 팬 페이지까지 운영하는 해외 팬이다. 현장이 K팝 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지자, 이를 관광명소로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팬들이 가수를 보기 위해 며칠 전부터 한국을 찾는 등 이로 인한 소비 증진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여의도 KBS 근처의 카페와 식당에는 휴대용 사다리와 카메라를 든 팬들의 모습이 다수 보였다.

‘출근길’ 사진 행렬이 벌어지는 현장 근처 편의점은 금요일이 대목이다. 직원에 따르면 금요일엔 평일 대비 2~3배 정도 매출이 상승한다. 직원은 “거의 모든 상품이 잘 팔리는데, 주로 삼각김밥이 가장 잘 나간다. 겨울에는 핫팩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아침 6~8시는 카페 매출이 높지 않은 시간이지만, 금요일엔 다르다. 사진을 찍던 팬들이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정리하기도 한다.

사진 찍어 파는 ‘대리찍사’ 늘어 “촬영은 문제없지만 사진 판매는 연예인이 문제 삼으면 소송 가능”

■ 사고파는 사진…‘데이터 시장’ 열리다

지난달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KBS <뮤직뱅크>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아이돌을 촬영한 사진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트위터 캡처

아침 6시30분쯤 첫 번째 가수가 들어왔다. 풀메이크컵에 세팅한 머리, 무대의상까지 갖춰 입은 여자 아이돌 그룹이 기자들과 팬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했다. 멀리서도 들릴 만큼 우렁찬 목소리다. 가수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사진 찍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일부 가수들은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재빨리 포토존을 지나쳤다. 팬들을 피해 몰래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었다. 반면,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신인들은 팬을 향해 열정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쉬지 않고 터졌다. “야, 카메라 바꿨어?” “큰 거 한 장 줬대요.” “한번 찍어 보자.” “멀리서 찍어도 다 나오겠네.” 한 차례 행렬이 지나간 뒤 조용해진 현장에서 사람들이 말한다. ‘출근길’에 팬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대포’라 불리는, 기자들보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오는 팬들 중에는 일명 ‘대리찍사’(사진을 찍어 이를 파는 사람)도 섞여 있다.

아이돌 가수 팬인 박미정씨(21·가명)는 ‘뮤뱅 출근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역시 콘서트, 팬 사인회, 시상식 등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올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뮤뱅 출근길을 더는 찾지 않을 생각이다. 새벽부터 가수를 기다리는 일이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에) 팬들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서 팔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데이터 시장’이라는 게 열린다. 그날 찍은 사진을 데이터째로 팔거나 수백 장씩 한 번에 판다. 트위터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라오는데 인기 있는 가수의 사진은 게시물이 올라오자마자 팔린다”고 말했다. ‘뮤뱅 출근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역시 사진을 산 일이 있다. 그는 “좋아하는 가수의 예전 사진은 구하기 힘들어서 샀다. 100장에 3만원 정도 줬다”고 말했다. 사진을 사는 이유로는 “팬으로서 의무감”과 “그날 입은 옷이나 머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이미 오전 8시가 되기 전부터 트위터 등에는 ‘뮤뱅 출근길’ 사진을 판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가수의 사진은 그룹의 인기, 장소나 시간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문가들은 사진을 매매하는 행위는 불법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조기현 중앙헌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연예인의 초상권은 자신의 얼굴을 찍어서 팔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이 된다. 성적인 목적으로 불법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를 돈을 주고 파는 일은 해당 연예인이 문제를 삼으면 소송이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K팝 인기가 커지며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어 파는 이들의 발길이 늘자 관리도 더 힘들어졌다. KBS 관계자는 “기자와 블로거, 팬과 전문 찍사를 구분할 길도 사실상 없다. 가수를 보려고 오는 팬을 막을 방법도 없고, 강압적으로 통제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차장이 ‘출근길’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금요일마다 해당 장소의 주차를 자제한다.

공항서 얼굴 가린 연예인 논란 “사생활 촬영, 미디어도 편승” “이미 무대·일상 구분 사라져”

■ 사생활 침해 vs 연예계는 거대한 ‘리얼리티쇼’

최근 한 배우가 공항 출국 사진에서 얼굴을 가렸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일이 있다. 공항 출국길이 이미 연예인의 공식 일정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얼굴을 가렸다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 비난의 요지였다. 공항 사진이 가방이나 옷 등 협찬 물품의 미디어 노출과도 연계된 면이 있어 논란이 커졌다. 연예인의 개인사와 같은 공항 출국 모습을 찍는 미디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나왔다. 배우는 이후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옷과 가방도 모두 개인용품이었다며 협찬 논란도 일축했다.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무대 위가 아닌 이동 현장에서 연예인의 사진을 찍는 일에 대한 찬반 의견은 여전히 남는다. 대중문화평론가 미묘는 “방송국 출근길만 해도 일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팬들과 연예인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 같다. 다만, 공항 사진에 관해서는 아직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곧 무대 위에 설 사람이 아니라 비행기에서 쉬어야 할 사람의 사진을 찍는 것은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계와 산업계의 협찬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이를 이유로 모든 연예인의 사진을 허락받은 듯이 찍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묘는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이의 무대 아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미디어가 여기에 편승하면서 지금 같은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분위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연예계는 이미 ‘무대 위와 아래를 나눌 수 없는 거대한 리얼리티쇼’가 된 지 오래라는 의견도 있다. 가수 홍보사의 한 관계자는 “활자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미디어가 변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에 노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는 일상 사진을 이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다”며 “스타일리스트들이 아이돌 가수의 사복 의상까지 챙기기 시작한 지가 이미 수년이 지났다. 의상은 거의 협찬이다. 사진의 유무에 따라서 헤어나 의상을 신경 쓰는 일도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 사진으로 의상이 화제가 되면 당사자의 셀러브리티한 모습이 부각되기도 한다”며 “연예인은 이미 자신의 사생활이 사생활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수들이 노래나 춤이 아니라 예능이나 리얼리티쇼, 혹은 인터넷 채널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는 것도 결국엔 일상 사진 노출과 비슷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은 “연습생들이 오디션쇼를 통해서 얼굴을 알리고, 이를 통해 친근한 모습을 노출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기회의 장일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사진 노출이 연예인들에게는 기회이고 팬들에게는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다만, 연예인이 정말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어 내보내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희진·이유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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