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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모델과 나눈 사랑 누드화에 그대로 담아

  • 입력 : 2018.08.06 09:44:28
  • 최종수정 : 2018.08.06 10:02:46
➊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한 누드화 가운데 대표작 ‘누드, 초록 잎과 가슴(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년)’. 2010년 5월 4일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경매에서 약 1억600만달러(약 1200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 2018 Christie`s Images Limited.

➊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한 누드화 가운데 대표작 ‘누드, 초록 잎과 가슴(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년)’. 2010년 5월 4일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경매에서 약 1억600만달러(약 1200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 2018 Christie`s Images Limited.

“내가 침을 뱉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액자에 넣고 예술이라 할 것”이라며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돌아서서는 “나는 단지 시대를 활용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고백한 예술가.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여신 아니면 호구”. 요즘이라면 미투 운동의 표적이 되고도 남을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사랑한 여인들의 초상화를 죽을 때까지 간직했던 남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딱히 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의 난해한 그림들. 다빈치에 이어 역대 최고 천재 예술가로 칭송받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년) 얘기다. 그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됐는가.

피카소 신화 형성의 첫 번째 키워드는 ‘신동’이다. 음악가와 달리 미술가는 연륜과 함께 발전해 중장년기에 전성기를 꽃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게는 말년에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다빈치나 라파엘 같은 르네상스 천재들처럼 10대 시절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뽐냈다. 어려서부터 상당히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린 덕분이다.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에 기가 눌려 그림을 단념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더욱이 신동은 현대미술에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기 때문에 피카소의 커리어에 프리미엄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다음 키워드는 ‘끝없는 변신’이다. 한 예술가가 그렇게나 다양한 작품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타일 변화를 꾀하면서 그는 지속적으로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끝없는 변신은 그가 사랑한 여인들 덕이 크다. 죽을 때까지 들끓은 여성을 향한 욕망이 작품 영감의 원천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연인이 등장할 때마다 작품 스타일이 현저히 변했다. 카사노바 뺨치는 여성 편력이 천부적인 재능과 결합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스치고 지나간 여인은 숱하게 많았으나 잘 알려진 그의 여인은 여섯 명이다. 두 번의 결혼과 네 명의 연인. 그중에서도 그는 특히 세 번째 연인이었던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다른 연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렸다.

그녀의 초상화와 누드화는 유독 생기 넘치고 부드러우면서 에로틱하다. 예를 들어 ‘꿈(Le rêve, 1932년)’을 보라. 팔걸이의자에 앉아 단잠에 빠진 마리 테레즈의 모습을 묘사했다. 화가보다 서른 살가량이나 어린 스물둘 싱그러운 그녀의 모습. 그런데 그녀 얼굴 위쪽에 드리워진 이상한 형체가 하나 있다. 무엇처럼 보이는가. 원색의 강렬함과 함께 이 남근 형태의 윤곽선이 어린 연인을 향한 화가의 성적 욕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위)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한 또 다른 대표작 ‘꿈(Le rêve, 1932년)’. 이 작품은 1997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의 ‘갠즈 컬렉션’ 경매에서 4840만달러(약 548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 작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2013년 헤지펀드 억만장자인 스티브 코헨(Steve Cohen)이 프라이빗 세일을 통해 1억5500만달러(약 1760억원)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래) ‘알제의 여인들, 버전 O(Les femmes d`Alger, 1955년)’.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억7900만달러(약 2000억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영예를 차지

(위)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한 또 다른 대표작 ‘꿈(Le rêve, 1932년)’. 이 작품은 1997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의 ‘갠즈 컬렉션’ 경매에서 4840만달러(약 548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 작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2013년 헤지펀드 억만장자인 스티브 코헨(Steve Cohen)이 프라이빗 세일을 통해 1억5500만달러(약 1760억원)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래) ‘알제의 여인들, 버전 O(Les femmes d`Alger, 1955년)’.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억7900만달러(약 2000억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영예를 차지

이 작품은 1997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4840만달러(약 548억원)에 낙찰돼 당시 피카소 작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이 경매에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현대미술 컬렉션 중 하나로 칭송받았던 갠즈(Victor & Sally Ganz) 부부의 소장품 58점이 출품됐다. 남편 빅터가 1987년 사망한 이후에도 샐리는 컬렉션을 이어나갔지만, 그녀의 사망과 함께 주요 소장품이 경매에 출품된 것. 그 가운데서도 1941년경 1000만원이 안 되는 금액(당시 7000달러)에 구매했던 ‘꿈’이 5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됐다.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한 누드화 가운데 ‘누드, 초록 잎과 가슴(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년)’은 피카소가 얼마나 그녀의 몸에 시각적으로 몰두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좋은 예다. 이 그림이 고전 누드화와 명확히 구분되는 점은 우선 역사상 그 어떤 누드화보다 추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화가가 누드화를 통해 모델과 나눈 육체적 사랑의 경험과 성적 쾌락의 흥분을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현대적 비너스의 탄생! 더할 나위 없이 대담하고 간략한 선이 이토록 감각적이고 섹슈얼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갠즈 컬렉션 경매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역시 피카소의 작품이었다. ‘알제의 여인들, 버전 O(Les femmes d`Alger, 1955년)’라는 그림이 3190만달러(약 361억원)에 낙찰돼 58점 중 ‘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피카소 생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재클린 로크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그녀를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의 말년작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이 경매 이후 약 20년이 지난 2015년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다시 출품돼 1억7900만달러(약 2000억원)에 낙찰되면서 한동안 경매 역사상 가장 비싼 작품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년)의 동명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피카소가 유일하게 인정한 화가이자 라이벌이면서 말년에 진정한 우정을 쌓았던 마티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연인이었던 재클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1953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7세였고 피카소는 72세였다. 영감을 주는 예술 뮤즈이자 충실한 동반자였던 이 어린 부인은 1973년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피카소 사망 4년 후 자살한 마리 테레즈에 이어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 역시 1986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행운은 피카소의 것이고 불운은 그녀들의 몫이었던 것일까.

피카소는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큰 성공을 거둬 부를 일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얻은 명성은 단 한 번의 꺾임도 없이 날로 높아져 노년에는 거의 신적 존재 내지 왕처럼 군림했다. 모두가 그를 칭송했다. 변덕조차 법이 되는 경지라고나 할까. 피카소니까. 게다가 이런 성공이 지속적인 연구와 훈련 같은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타고난 천재성에 의한 것이라면, 너무나 부러운 삶이지 않은가. 이보다 더 행복한 예술가의 삶이 있을까. 그는 명실상부 부와 명예 모든 측면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예술가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죽기 직전에 그린 그의 말년 자화상들을 보라. 결코 행복한 얼굴이 아니다. 하나같이 절망적인 눈과 어둡게 그늘진 표정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천재 예술가가 한평생 견뎌내야 했던 철저한 고립과 처절한 고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답을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하는 고통. 그리고 두 눈에는 회한이 가득하다. 모든 것을 거머쥔 그를 그토록 좌절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천재 예술가의 삶이 아니었을까.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림 자체 또는 그 누군가라고 말하고는 했다. 자신은 꼭두각시일 뿐이라며 한 지인에게 “당신은 시인의 삶을 살지만 나는 죄수의 삶을 산다”고 고통스럽게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9호 (2018.08.01~08.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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