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너, 감염됐지?”…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이기심

입력 2018-08-0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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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이 장악한 부산행 KTX에서 펀드매니저 석우(공유·가운데)는 끝내 자신의 어린 딸과 임신부를 살려낸다.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작은 이타의 힘은 생겨나는 것인지 모른다. 사진제공|NEW

■ 영화 ‘부산행’

정체불명 바이러스가 불러온 나비효과
극한상황서 이기적으로 변화하는 우리
재난의 상처보다 ‘인간의 공포’에 소름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우기(원문 표기)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 “상처의 자리”에서 깨닫는 “따뜻한 가슴”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그 유명한 ‘여름 징역살이’ 가운데 한 부분이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던 도중이었던 1985년 8월 대전교도소에서 동생의 아내인 계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냉방장치는커녕 조각난 하늘만 보이게 하는 작은 사각형의 창만이 바깥의 바람을 존재감도 없이 불러들이는 교도소의 뜨거운 여름, 비좁은 감방 안에서 수인들은 그렇게 서로의 몸을 부딪쳐가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37도의 열덩어리”가 되어 서로를 원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겨울에 이르러 맹혹한 추위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보듬어 안거나 몸끼리 닿아내며 체온을 나누지만, 여름은 오히려 서로의 몸과 몸을 적대시하게 할 뿐이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그래서 사람은 또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스스로 드러내기도 한다. 무릇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반드시 타인(들)과 얽히고설키는 관계로 온전한 일상을 이룰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늘 이타성과 배려로써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사람은 시시때때로, 이타성과 배려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순간순간, 이기적 태도로 자신을 지켜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고 신 교수는 되돌아본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 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읍니다(원문 표기)”고.

그의 말이 실체 없는 낙관주의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임을 우리도 알고 있다. 각자의 일상을 옥죄어오는 상황 아래서도 사람은 그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음을 말이다.


● 힘 없는 이들의 연대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안에서 벌어진 재난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바로 자신들의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옆자리 사람을 위급한 상황으로 내모는 위험 앞에서도 또 다른 자리의 사람들은 그 내몰린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들과 함께 열차 안의 사람들, 아니 온 세상 사람들을 재난으로 몰고 간 건 당초 사람의 이기심이었다. 저 혼자 살아남겠다며 잠시 눈 질끈 감고 비껴 지나온 길 위에서 재난은 발생했다. 사람은 그러나 무지해서, 재난의 발생 원인에서 멀어져 자신이 저지른 이기적 비행의 흔적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재난이 늘 사람의 “고의적인 소행”과는 거리가 먼, 천재지변의 것으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은 사람의 이기적이고 “고의적인 소행”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위험의 고통스런 결과로 알고 있는가. 훨씬 더 큰 안타까움은 재난이 일어나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잃은 뒤에서야 그것을 깨닫곤 한다는 점이지만, 사람의 무지함은 비로소 잠시 부끄러움의 각성을 안겨줄 뿐 더 이상 개선의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그런 각성 위에서나마 타인의 손을 가까스로 잡아주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왜, 늘,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일까. 임신부이거나,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10대이거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숙자와 같은 약자들인 걸까.

아니다. 이들은 그렇게 힘이 없어서, 버림 받아서, 비로소 연대의 의미를 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힘이 없기에 서로 손을 잡아 더 큰 힘을 만들어내고, 버림 받았기에 더욱 더 서로를 보듬어 닥쳐오는 재난의 위험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알게 됐을 것이다. 이기주의의 제 살 길만 찾아가려는 이들의 최후를 바로 옆자리에서 확인했으니, 이들로서는 연대의 힘만이 자신들을 지켜내 줄 것임을 확신했을 거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새로운 생명을 안은 임신부는 그래서 이기적인 타성에 젖은 세상이 장차 태어날 아이의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채로 위험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10대들은 자신들의 미약한 힘을 잇고 또 이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게다. 버림받아서 몸으로 감당해낼 수밖에 없는 노숙인의 설움은, 비록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지만 바로 그 몸으로써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토대를, 스스로를 내던지는 희생으로써 마련하고자 했을 터이다. ‘개미핥기’라는 비난을 애써 무시하고 펀드매니저로서 중산층의 이기적인 안온함을 버릴 수 없었던 아빠가 어린 딸로부터 “자기 밖에 모른다”는 원망 가득한 비난을 받고서야 이타적 본성을 되찾아갈 때, 임산부와 10대와 노숙인이 내민 연대의 손으로 위험 가득한 세상은 비로소 온전하게 개선되어갈 것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부터 2005년 뉴올리언스 홍수까지 다양한 대재난 속에서 피어난 연대의 힘을 실증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은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의 위험 앞에서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말했다. “이타주의와 상호부조를 향해 나아가는 다수와 냉담함과 이기심으로 2차적 재난을 부르는 소수”이다. “다수는 흔히 이기심과 경쟁에 대한 자신의 막연한 믿음에 반하여 행동하며, 소수는 자신의 이념을 고수”한다. 결국 소수의 이기심이 몰고 온 재난의 위험을 끝내는 것은 “이타주의와 상호부조를 향해 나아가는 다수”의 연대라고 그는 말했다.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서 어느 아파트 주민들은 재개발을 추진 중이라는 이유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방송 뉴스를 접했다. 곳곳에서 이기심을 목격하는 일은 수없다.

재난은 늘 그렇게 이기적인 일상에서부터 몰려올지 모른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 영화 ‘부산행’은?

상업영화로 좀비 이야기를 본격 소재로 삼았다. 부산행 KTX 승객들이 좀비의 공격에 맞닥뜨려 드러내는 이기심,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타적 희생으로써 이에 맞서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고조되는 긴장감 속에서 관객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공포스런 좀비의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해낸, 애니메이션 연출자 출신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다. 2016년 7월 개봉해 1150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공유, 마동석, 김의성, 최우식, 정유미 등이 출연했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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