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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며 나선 신일그룹이 지난 7월17일 언론 등을 통해 내세운 홍보 문구다. 돈스코이호는 제정러시아 발트함대 소속으로 1905년 상당한 양의 금괴와 금화 등을 싣고 출항했다 일본군과의 전투 중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군함이다. 하지만 돈스코이호를 둘러싼 논란이 투자 사기 의혹으로 번지면서 지난달 30일 최용석 신일그룹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출국금지를 당했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유지범(43) 전 싱가포르 신일그룹 대표도 2일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수배가 요청된 상태다.
◆보물선 검증 없이 주가 널뛰고 가상화폐 투자 몰려
돈스코이호가 싣고 있다고 알려진 보물은 200여t에 달하는 금화와 금괴 5500상자다. 이것을 현재 가치로 추산한 게 150조원이다. 하지만 돈스코이호가 정말 이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한 번도 검증된 바 없다. 최초 보물의 가치를 150조원으로 주장하던 신일그룹도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보물의 양을 파악할 수 없다며 가치를 10조원으로 낮춰 잡았다. 이 그룹이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발굴허가 신청서는 더 황당하다. 돈스코이호의 추정가치를 12억원으로 매겨놨기 때문이다. 최초 해양과학기술원과 함께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동아건설은 1999년 발굴 승인 신청을 할 때 50억원을 적어냈다.
실체는 없지만 보물선 발굴 소문은 주식시장을 동요시켰다.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 추진사업이 보도된 이후 류상미 전 신일그룹 대표가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제일제강이 보물선 테마주로 떠올랐다. 제일제강은 지난달 17일 주당 1000원 내외던 주가가 장중 최고 5400원까지 치솟았다. 다음날 제일제강측이 보물선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밝힌 후 하락세를 타다 금융감독원이 주가조작을 의심하고 조사에 착수한 뒤 전날 대비 21.92% 급락한 1745원으로 떨어졌다. 3일에는 주당 1365원으로 장을 마쳤다. 금감원은 신일그룹이 보물선 관련 발표를 하기 전인 5월부터 거래량이 늘어난 것을 토대로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정황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경북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한 신일그룹의 최용석 대표이사 회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보물선 소문으로 신일골드코인(SGC)에도 투자자가 몰렸다. SGC는 신일그룹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 받는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올해 초 발행한 가상화폐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일그룹이 SGC를 발행해 모은 투자금만 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그룹은 사전 판매 당시 200원의 SGC가 9월 거래소에 상장되면 1만원으로 뛸 것이라고 광고했다. 신일그룹은 또 구매 액수에 따라 본부장, 팀장 등의 직책을 주거나 투자 유치를 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투자금을 대표 개인 계좌로 받은 정황도 있다. 신일돈스코이호국제거래소는 지금도 원하는 투자자에 한해서 SGC 환불 처리해준다고 공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환불을 받은 투자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일그룹의 잇단 말 바꾸기와 거짓말
신일그룹은 지난달 17일 돈스코이호와 관련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실 일부를 18~19일간 국내외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9일이 지나도록 특별한 보도는 없었다. 지난달 25~26일로 예고했던 기자회견은 26일 개최됐다. 기자회견에서 놀랄 만한 사진과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보물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늘어놨다. 신일돈스코이호국제거래소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돈스코이호 탐사 추정 사진도 논란이 됐다. 홈페이지에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은 영화 타이타닉의 몇 장면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과기원이 2007년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도 있었다. 의혹이 제기된 후 신일그룹은 이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최 대표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신일그룹과 SGC와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최 대표는 “신일골드코인은 류상미씨와 그의 인척이 출원해 발행한 것으로 안다”며 “싱가포르 신일그룹과 신일그룹의 이름은 비슷하지만 연관이 없고 가상화폐에 관여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류 전 대표는 기자회견이 있기 전날만 해도 신일그룹 대표로 등재됐던 인물이다. ‘신일골드코인’이란 상표도 류 전 대표 이름으로 출원됐다. 해당 상표는 돈스코이호가 이슈화되기 전인 5월에 출원됐기 때문에 사실상 신일그룹과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연관된 기업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게 관련 업계의 평가다.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는 의혹도 있다. 해양과기원 관계자는 “돈스코이호는 2003년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해양과기원 유해수 박사팀이 돈스코이호를 찾았고 인양을 추진한다는 보도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 박사팀은 이듬해 돈스코이호 유물 발굴 방법론에 관한 논문을 한국지구물리탐사학회에 투고하기도 했다. 신일그룹은 해양과기원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지만, 경찰은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를 처음 발견했다며 투자자를 속였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꼬리 무는 경영진 사기 전력 의혹
신일그룹 관련 경영진의 각종 사기 전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최 대표는 2005년 상장 폐지된 한 기업의 대표였다. 이때 최 대표가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2004년 회사자금을 횡령한 후 사실 은폐를 위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후 106억원을 회사 자산으로 계상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대표이사를 맡은 지 9일 만인 지난 2일 신일그룹 대표직 사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유병기(64) 전 신일그룹 대표도 6월1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유 전 대표는 2014년 한국 중소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주선하고 그로 인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나눠주겠다고 속여 1억5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대표는 또 동거녀의 아버지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1억5000만원을 가로챘다. 인천지법은 이 사건으로 유 전 대표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보물선 소동을 일으키고 SGC 발행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유지범 전 싱가포르 신일그룹 대표다. 유 전 대표는 본명이 류승진으로 신일돈스코이호국제거래소 류 전 대표의 친인척이다. 유 전 대표는 2000년대 중반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중국 쇼핑몰에 투자한다며 카페 회원들을 상대로 돈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유 전 대표 측근 등은 “유 전 대표가 현재 친인척과 함께 베트남에서 도피생활을 한다”며 “여러 사기 사건을 일으킨 후 투자자들을 피해 달아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전 대표는 2014년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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