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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리더십 개론 PART.3 ‘상생의 리더십’-다름을 ‘틀림’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여라

입력 : 
2018-08-03 09:00:52
수정 : 
2018-08-03 14: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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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정형이나 정답은 없다. 사풍, 사람, 상황 그리고 리더의 개인 능력에 따라 매우 유기적이고 변화 또한 크다. 하지만 리더십이 처세학과 다른 점은 한 명이 다수를 상대한다는 것이다. 처세학은 특정인을 위한 맞춤이 가능하다. 처세 대상을 정해 집중 공략할 수 있지만 리더십은 많은 부하 직원 중에서 누구를 특정해 그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소통, 배려, 권위 등 그 어떤 것이든 원칙을 정했으면 쉽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부서원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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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틀렸다!’고 단정짓지 마라 리더로서 곤혹스러운 것은 부서원의 개인별 특성이다. 개성이라고 표현하지만 부서에는 이른바 ‘튀는 직원’이 꼭 있다.

어릴 때부터 대학까지 외국 생활을 하고 입사한 반 외국인 직원, 재벌급 집안 덕에 회사는 그야말로 경력 쌓으려 다니는 직원,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왕따형 직원, 일보다는 사내 연애에 골몰하고 19금 농담을 입에 달고 사는 직원. 그런가 하면 실력은 뛰어나지만 이기적인 직원, 일을 맡겨 놓으면 불안해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직원, 고위 임원과 매일 밥 먹고, 술 먹고, 골프 치며 은근히 ‘부장 패싱’을 즐기는 직원,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매번 야근, 특근, 주말 근무를 자처하는 직원. 오너 조카라는 소문의 주인공이라 ‘그 앞에만 서면’ 조심스러워지는 상관형 직원, 일솜씨도 뛰어나고 충성심도 있지만 매일 지각하고 가끔 연락 두절되는 자유방임형 직원,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징이나 개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평범 그 자체인 직원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조직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다.

이 ‘무지개 직원’들에게 각각의 특성에 맞는 개별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최소의 원칙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근태, 협업, 성과 등 평가의 객관적 기준을 정해 부서원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이를 기준으로 부서를 운영해야 한다. 개인적 성향과 호불호에 의해 리더는 괴롭기도 하고 화도 나고 지치기도 하겠지만, 부서원들을 리더의 틀에 맞추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편이 리더나 부서원 모두를 위해 좋은 선택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나와 다름을 ‘틀림’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강력한 제국을 건설해 왔다.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 제국, 당나라, 원나라, 히틀러의 제3제국, 대영 제국 그리고 지금의 미국까지. 이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통치한 제국은 단연 원나라다. 원나라는 로마 제국과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페르시아 제국 모두를 합한 것보다 컸고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국가였다. 이 제국 건설의 시발점은 칭기즈 칸이고, 국가 형태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통치 시스템을 완성한 이는 칭기즈 칸의 손자인 제5대 황제 쿠빌라이다. 그는 몽골족 특성인 정복과 지배의 통치, 즉 힘과 공포 대신 포용과 다스림의 리더십을 보여 준 현군이었다. 360년간 지속된 원 왕조에서 유일한 전성시대이자 안정기는 그의 재위 기간 34년뿐이었다.

쿠빌라이 리더십의 본체는 포용이다. 그는 거대한 제국 안의 모든 인종, 종교, 집단의 특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껴안으면서 비로소 제국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 포용의 밑바탕에는 바로 ‘다름을 이질이나 틀린 것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인’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쿠빌라이는 적은 수의 몽고족으로 한족을 통치하는데 한족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이용했다.

한족의 지식층을 관리, 학자로 등용해 한족의 원나라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또한 색목인, 즉 아랍계나 인도계도 받아들이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보장해 원나라의 경제 운영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 같은 쿠빌라이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원나라는 당시 유럽, 러시아, 동남아, 아랍, 중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받아들여야 한다. 눈높이가 다르면 바라보는 물체의 원형조차 제각기 보이고, 각자의 생활, 교육, 경제 상황이나 세대 차이에 따라 리더가 지닌 생각과 원칙을 부하들은 그저 교과서에서 배운 ‘함무라비 법전’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리더는 부하의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단점보다 장점을 알아보고 이를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리더십으로 변화되는 조직의 예를 가까이서도 찾을 수 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그 좋은 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위 그룹을 맴돌던 팀이 이번 시즌에서는 꾸준한 2위를 달리며 ‘가을 야구’를 예약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 한화는 작년에 비해 선수단 구성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호잉이라는 외인 타자를 잘 발굴해 200% 활용하는 것 외에는 새로운 선수 영입 같은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화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의 리더십이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의 한화를 이끈 감독들도 명장이며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은 분명하다.

한화는 기존 선수의 명망보다 새로운 선수의 투지, 눈앞의 1승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의 재건, 4번 타자도 2군으로 보내고 2군의 유망주를 발굴하는 실력에 기준한 객관적 선수 기용, 엄한 스승보다는 형님 같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현재의 모습을 완성한 것이다. 리더십은 ‘이렇게 하면 될 수 있다’는 리더의 독단이 아니라 현재 구성원의 성향을 분석해 그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 눈에 거슬리는 부하 직원의 행동과 말투, 업무 습관을 실눈을 뜨고 보지 말자. 그의 모든 것을 ‘틀렸다’라고 단정 짓지 말자. 오히려 내가, 우리 팀원이 갖고 있지 않은 ‘그의 그것’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여 ‘어떻게 하면 장점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자. 그것이 바로 진정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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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답을 정해 놓고 질문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 최고의 비극은 단연 영조와 사도세자다. 어찌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일 수 있을까, 현군이던 영조는 왜 그런 결단을 했을까, 등등 의문은 꼬리를 문다. 후세 학자들은 당시의 정세, 정파, 영조의 성격 등을 미루어 여러 이유를 들고 있다. 그중에서 필자는 영조의 태생적인 성격과 사도세자의 교육 그리고 영조의 리더십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영조는 첫 아들을 잃고 나이 마흔에 둘째를 얻었다. 이가 바로 사도세자 즉 장헌 세자다. 영조는 끔찍하게 세자를 아꼈다. 강보에 있던 아기를 세자로 책봉하고 열성으로 제왕 교육을 했다. 자신의 부족한 정치적 기반과 출생 콤플렉스를 세자에게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 단단히 교육한 것이다. 이때 세자는 주로 영조의 선왕인 경종의 왕비 처소에서 양육되었다. 당연히 세자의 스승들은 경종의 지지 세력이던 소론 출신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다.

소론의 정치적, 정신적 구심점이던 경종비의 처소는 ‘경종 독살설의 궁중 진원지’였다. 정사는 아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곳에서의 세자 교육이 훗날 영조와 세자 그리고 노론과 소론의 극렬한 투쟁을 잉태했다고 말한다.

영조는 왕자 시절에는 무수리 출신 서자라고 무시를 당했고, 왕이 되어서도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과 싸워야 했다. 또한 자신의 지지 기반인 노론도 정작 생모인 숙의 최 씨를 왕비로 추존하려는 영조의 뜻에는 격렬하게 반대해 결국 영조도 의지를 접어야 했다. 이런 영조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소문이 돌았다. 바로 ‘왕통이 바뀌었다’는 것. 즉 영조는 숙종의 핏줄이 아닌 당시 노론 영수 김춘택이 숙의 최 씨와 정을 통하고 최 씨가 임신하자 궁궐로 보내 숙종의 눈에 들게 한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나주 괘서 사건’이다.

터무니없었지만 당시 소론과 남인 일부 강경파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영조에게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나주 괘서 사건을 처분하는 을해옥사에 영조는 잔인할 정도로 강하게 대처했다. 136명을 처형했고, 700여 명을 처벌했다. 이후 영조의 타협적인 면모는 사라지고, 각 당파에 대한 강경한 어조와 고집스런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극이 시작되었다. 영조는 세자가 성인으로 커 가면서 이른바 양위와 대리청정을 내세우는 용인술을 자주 썼다. 즉 세자에게 권력을 내준다는 뜻을 슬쩍 비치면서 조정의 여론과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힘의 균형을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세자는 이런 영조의 뜻과는 생각이 달랐다. 학문적 성취에서 아버지의 기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또한 노론과 반대되는 소론의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영조와 반대편에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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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영조는 세자에게 ‘함정성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영조는 “글을 읽는 것이 좋은가, 싫은가” 하고 물었고, 세자는 “싫을 때가 많다”고 대답했다. 영조는 “세자의 답변이 진실하니 내 마음이 기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영조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세자가 말하면 “거짓말 말라”고 꾸짖고, 세자가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꾸짖기도 했다. 세자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 갇힌 심정이었을 것이다. 원래 의심이 많은 영조와 아버지 영조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 세자의 소심한 성격이 충돌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영조와 세자의 소통 부재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엄하게 꾸짖는 영조 앞에서 세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고, 영조는 자신의 기대는커녕 대답조차 잘 하지 못하는 세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1762년 대리청청 중이던 세자는 영조의 뜻과 다르게 소론계를 중용했다가 뒤주에 갇혀 죽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론 영조는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바로 ‘칭찬의 리더십’이다. 특히 영조는 사도세자가 남겨 놓은 일점혈육인 세손, 정조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영조의 칭찬과 긍정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정조는 노론의 반대에도 왕위에 올라 현군이 될 수 있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회의라는 형식을 통해 부서원의 생각을 듣는 것은 불필요하고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리더는 독단적인 생각과 결단으로 조직을 이끌기보다는 모두의 합의된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물론 회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답변도 있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리더는 부서원들의 현안 인식을 체크하는 차원에서도 모두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해결하는 방법론에서 부장급 리더와 부하 직원이 당연히 같은 수준일 수 없다. 리더는 부하 직원보다 많은 경험과 정보를 가졌고 이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판단하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그 부서의 일에 국한되는 경우도 있지만 타 부서와의 협의로 이루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회사의 정보와 결정 방향에 대해 리더는 예습이 되어 있다. 리더는 이를 부서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나 회의를 통해 훈련시킬 의무는 있다. 또한 누구나, 어떤 의견이라도 개진할 수 있는 조직은 회의 자체가 능동적이고 생산적이기 마련이고 회의에 임하는 직원들의 태도 또한 달라진다. 매일 회의를 하지만 부서원들의 의견은 그저 형식적으로 듣고 부장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결론 내리는 회의가 거듭되면 직원들은 당연히 회의에 참석해 그저 귀를 열고 수첩에 받아쓰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천하 영웅 항우는 약관의 나이에 병사를 일으켜 맹주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무용, 탁월한 군사적 전략가였지만 결국 패현 출신 건달 유방에게 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단 두 가지다. 바로 부하를 의심해 그 의심이 배반을 낳았고,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부하의 간언과 충고도 듣지 않았다. 즉 뛰어난 리더도 지혜를 얻는 소통의 리더십을 당할 수 없다는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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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 지장, 덕장형 리더십에서 배운다 여기 세 명의 리더가 있다. 이들은 각자 뛰어난 능력과 독특한 리더십으로 일본 역사를 장식했다. 바로 일본 전국 시대를 통일로 이끈 주역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이 세 사람의 극명한 차이는 바로 ‘두견새 울리기’에서 드러난다. “두견새를 어떻게 하면 울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목을 치겠다”며 용장 기질을 드러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두견새를 울게 하겠다”고 지략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에 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인내와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이 세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이들의 리더십이 우리가 흔히 리더십의 유형을 구분하는 용장, 지장, 덕장의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주변에 리더는 많다. 그 중에서 과연 어떤 리더가 부서원들의 합리적인 복종과 진심 어린 존경을 받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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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 지나친 오만과 독선은 반대를 부른다 김 부장은 동기들 중에서 단연 선두다. 그의 팀은 실적에서 타 부서를 압도한다. 부서 평가가 회사 최고에 다다르자 김 부장에 대한 믿음 또한 단단해졌다. 김 부장은 부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시시콜콜 보고를 받고 회사 일은 물론 조직원의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들여다보는,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부서장인 동시에 참견과 지시가 많은 상사다. 그럼에도 조직원들이 그를 따르고 신임하는 것은 그가 앞장선다는 점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라도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 떠맡기지 않았다. 말하자면 권한과 책임에서 권한만 발휘하려는 상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은 과한 신상필벌이다. 잘한 일에 칭찬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하 직원의 실수를 엄하게 지적하고 인사 고과에도 예외 없이 반영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은 “애정이 있으니까 야단도 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독설과, 장소를 불문하고 버럭 화를 내는 습관에 담담하게 반응할 부하 직원은 없다. 더구나 개인사까지 개입하려 할 때는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얼마 전 부서 내에 사규에도 없는 ‘삼진 아웃제’를 만들어 결정적 실수를 세 번 이상 저지른 직원에게 “무능한 직원은 우리와 같이 일할 수 없다. 나는 부장으로서 전출을 상신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모든 부서원이 들고 일어나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결국 그 문제로 김 부장과 부서원 모두가 인사 조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오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김 부장 역시 능력이 없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엄격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반대 세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울지 않는 새를 조금은 기다려 주는 인내심보다는 그 새를 다른 새로 바꾸어 버리겠다’고 선언을 함으로써 조직원들에게 쓸데없는 공포와 불안을 안겨 준 것이 그의 조직 관리의 패착이 된 셈이다. 사람의 두꺼운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것은 강한 바람도 세찬 비도 아닌 따뜻한 햇빛이라는 이솝 우화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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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 집요함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이 부장은 이른바 SKY 출신이 판치는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지방대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업무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그는 수많은 독서와 공부 그리고 대학원 과정을 통해 남몰래 실력을 쌓았다. 처음에는 지방대 출신이라고 깔보던 부서 직원들도 그의 탁월한 실력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장은 선생님 스타일 상사다. 모든 업무를 교육 개념으로 접근한다. 부서원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하우 공유’라는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전문가급 실력을 보유한 이 부장이 보기에는 부서원들의 업무 처리 능력은 부족하기만 했다.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견 당하는 후배 직원들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얻는 경험의 교육을 무시한 것이다. 오로지 대면 교육을 통한 1:1 과외 선생처럼 기획안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고서 양식은 물론 업무 일지까지 꼼꼼하게 관리했다. 그러자 부서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실력은 있는데 너무 참견하고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한단 말이야”라는 반발의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타 부서 전출을 원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지방대 출신의 한계 아니냐”는 경영진의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부장의 능력은 물론 출중하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부하 직원을 믿어 주는 느긋한 마음이었다. 물론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인 부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회사에서도 이사 등 간부급으로 키우려는 후보자인 동시에 부서원의 업무 능력을 최전선에서 체크하는 부서장이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그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 운영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평사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이 부장이 괴로워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부서를 구원하려는 것보다 위험한 발상이 또 있을까? 어쩌면 그는 자신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스스로는 물론 후배 직원들의 능력까지 바짝 끌어올리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뜻이야 어떻게 되었든 그것은 오만이자 오버일 뿐이었다.

이른바 밑바닥에서 출발해 입지전적으로 승진한 관리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역경과 고난, 인내와 노력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한창 일할 때는 이틀이 뭐야, 일주일 동안 한잠도 못 자고 야근한 적도 있어” 등의 ‘영광의 고난 과시’를 습관처럼 떠벌린다. 그러면서 ‘일도 못하는 놈이 퇴근은 칼이야!’라며 정시 퇴근하는 후배를 다그치기도 한다.

그는 부장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회사 일 못지않게 개인적인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 아직도 의외로 ‘올드한 사고’의 주인공들이 회사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다. ‘내가 쫄따구 때는’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부장은 노력과 지략은 뛰어났지만 부하 직원의 능력을 인정하는 ‘같이 갑시다’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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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 모범을 보이는 소통의 리더십

박 부장의 별명은 ‘황희 정승’이다. 부하 직원들의 팀별 업무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그중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 칭찬하고 독려하는 스타일이다. 즉 자신의 권한과 판단으로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 팀 혹은 두 사람이 서로의 주장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자신의 주장과 대입시켜 결론을 내리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이다.

부서원들은 박 부장을 마음으로 따른다. 그는 설사 부하 직원이 실수를 저질러도 야단부터 치지 않는다. 자신이 나서서 급한 불부터 끈 다음 실수를 저지른 부하 직원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복기할 수 있는 시간과 동기를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단박에 포인트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업무를 또 한 번 부여해 부하 직원으로 하여금 ‘실패한 복습의 성공적인 예습’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깨닫게 해 준다. 이런 과정은 업무 효율성과 스피드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어느덧 회사에서는 “박 부장 출신 부서원들은 실수가 없어. 일을 제대로 배운 것 같아”라고 인정받게 되었다. 그 뒤 박 부장은 주요 부서를 두루 경험한 뒤 회사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젊은 시절 부하 장수들로부터 배신을 겪기도 했다. 당시 창궐한 종교인 ‘잇코종’에 빠진 부하들이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이에야스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이에야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부하들이 종교 문제로 자신에게 창을 들이댔으니 그 분노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부하의 목에 칼을 대지 않고 스스로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기를.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르자 이에야스를 떠났던 부하들이 하나둘 다시 돌아왔고 이들은 훗날 이에야스의 가장 충실한 부하로 마지막 순간까지 도쿠가와 가문과 같이했다.

만약 이에야스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부하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죽였더라면 그는 일개 영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박 부장의 장점은 ‘받아주는 것’이다. 그것은 부하 직원의 말을 들어주는 것, 행동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일을 배워 나가는 과정을 기다려 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소통의 리더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나, 그 열매는 달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39호 (18.08.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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