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간다고 하자 북한이 궁금해졌다

더오래 2018. 8.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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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36) 아들을 위해 시작한 통일 공부, 오용섭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퇴직 후 청년광개토 프로젝트 기획을 위한 사전답사길에서(광개토대왕릉비문내 '서녕기업 국부민은' 글귀가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사진 오용섭]

1980년 가정형편으로 실업계 공업고등학교 입학했지만 1983년 졸업정원제 덕분에 부산대 물리학과에 커트라인에 걸려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축제가 데모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최루탄과 함께 4년을 보냈다. 졸업하면 취직 걱정이 없던 시절이라 어렵지 않게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정말로 재수가 좋은 학창시절이었지만 입사 이후 회사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입사 동기 상당수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나이 50을 넘긴 선배들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가 터졌다. 46명의 꽃다운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한반도에서도 전쟁 중이었다. 이번 사태가 남북분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8월 TPS(도요타생산방식) 일본 4주 연수 동기생들과 함께(한가운데 하늘색 테크 셔츠가 나다). [사진 오용섭]

국가문제가 아니라 가족 문제로, 아들 문제로 부모 가슴에 들어온 것이다.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북한을 제대로 알리자는 것이었다. 2011년 남북경협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관련 세미나·학술대회에 틈틈이 참여하면서 북한대학원대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4년 북한학과 통일교육전공으로 입학해 지난해 청년세대의 통일 공감대를 높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청년광개토’를 설립했다. 우리 역사 속 통합의 인물을 찾아서 현지답사를 통해 분단의 아픔, 통일의 편익을 알아가자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 새겨진 글귀를 청년광개토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취지이기도 하다. 올해 8월 드디어 졸업한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통일, 평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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