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과학의 한귀퉁이]곤충의 날개

한여름이다. 잠자리가 날고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키 높이 웃자란 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약 3억년 전 데본기에 곤충의 날개가 진화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 최초로 지구 상공을 점령한 곤충은 기세등등하게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전체 동물계의 약 70%를 차지하는 곤충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종에 육박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구의 어디에서도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의 한귀퉁이]곤충의 날개

우리에게 친숙한 매미의 옛 이름은 ‘매암’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곧바로 이름이 되었음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소수(素數)를 아는 ‘수학자’ 곤충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미는 홀수년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서식하는 13종의 매미 중에서 참매미와 지지매미는 5년을 주기로 지상에 나온다. 왜 그런 독특한 행동을 매미가 진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 첫 번째는 천적 가설이다. 눈에 보이는 매미를 먹잇감으로 삼는 새나 동물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천적이 소수년, 평년 가릴 것 없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매미의 저런 전략은 하등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먹잇감 경쟁 가설이다. 같은 생태 지위 안에 살아가는 서로 다른 종의 매미들끼리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주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지역에 수명주기가 5년인 매미와 7년인 매미가 산다면 이들 두 매미가 동시에 활동하는 시기는 3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매미 말고도 엄청난 수의 동물과 곤충들이 동일한 공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궁색해진다.

곤충은 어린 시절과 성충일 때 먹잇감이 다르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도 신생아들에게 그들만의 먹잇감을 따로 장만했다. 젖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포유류라고 부르지 않던가? 하지만 식재료만 두고 보았을 때 인간과 매미의 생활사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신생아에게 젖을 먹이는 시기는 길어야 3년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기는 젖이 아닌 다른 음식물을 먹는다. 하지만 매미는 성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기껏해야 한 달인 반면 애벌레로 꽤 오랜 시간을 땅 아래에서 지낸다.

성체로서 매미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짝짓기를 하고 나무 껍질 안쪽에 알을 낳는 일이다. 일 년 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나무에서 내려와 한 자나 되는 땅속에서 살아간다. 매미 애벌레가 주로 먹는 것은 식물의 뿌리가 흡수한 수액이다. 그 수액을 먹고 몇 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뿌리가 땅에서 흡수한 수액에는 애벌레가 살아갈 영양소가 무척 부족하다. 이에 매미 애벌레가 선택한 전략은 공생체 미생물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이 미생물은 애벌레가 필요한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을 제공하는 대신 식재료와 생활공간을 제공받는다. 이런 연합이 맺어지는 순간 애벌레 숙주와 공생체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2018년 일본 쓰쿠바 대학의 다케마 후카쓰 연구진은 일본에 서식하는 24종의 매미 몸 안에 살아가는 공생체를 연구해서 그 결과를 미 과학원 회보에 게재했다. 술시아(Sulcia)라는 미생물은 24종의 매미 모두에서 발견되었고 매미 몸 안에서 몇 종류의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른 한 종의 미생물 공생체는 일부 매미들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저 공생체가 없는 매미 몸에는 효모와 비슷한 곰팡이 기생 생명체가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매미 생활사에 곰팡이 기생체는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무에서 떨어진 애벌레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동안 이 곰팡이가 침입하기 때문이다. 이 곰팡이는 몇 년을 애벌레와 살다가 성체로 변하기 전에 자실체를 싹 틔우고 포자를 땅에 뿌려댄다. 이것이 고가의 한약재로 쓰이는 동충하초(冬蟲夏草)의 실체이다. 애벌레와 기생체 사이의 줄다리기 결과가 매미의 진화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애벌레는 저 곰팡이를 구슬러서 친구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 기생체들은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유전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다. 그러면 숙주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효소 유전자가 고장 나면 숙주도 공생체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숙주 애벌레는 기생체 곰팡이를 공생체로 돌리는 전략을 개발해 낸 것이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원한 기생체도 없고 영원한 공생체도 없는 것이다. 소임을 다한 공생체는 새로운 공생체로 대체되고 저 효모 비슷한 곰팡이는 애벌레 숙주를 위해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생산하고 있었다. 반면 동충하초는 싹트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무껍질에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진 허물인 선퇴(蟬退)를 남기고 탈바꿈에 성공한 매미는 땅속에서 펼쳐진 곰팡이와의 오랜 투쟁에서 승전보를 쟁취한 자들이다. 크게 울 만한 자격이 넘친다. 더위에 매미 울음마저 지쳐갈 무렵에야 가을이 오려는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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