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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민주주의 탈을 쓴 위선의 악한 무리가 몰려온다"

등록 2018.07.30 16: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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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장편소설 '해리' 출간

"어느 악녀에 대한 보고서"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어떤 악녀에 관한 보고서다."

작가 공지영(55)씨가 30일 장편소설 '해리'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리'는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이한 공씨의 12번째 장편이다.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불의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부정의 카르텔을 포착하고 맞서나가는 약한 자들의 투쟁을 담았다.

공씨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주변에서 목격한 악의 모습은 1980년대, 그 이전과는 굉장히 달라졌다"며 "얼마든지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쓸 수 있고 그런 탈을 쓰는 것이 예전과 달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찍 체득한 사기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몇십년 간 싸워야 할 악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위선을 행하는 그런 무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가톨릭 신자이지만, 소설에서 가톨릭의 비리를 정면으로 다뤄서 많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내 작품을 먼저 읽어본 사람들이 의외로 충격을 안 받았다. 그래서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email protected]

주인공 '한이나'는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를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악이 사실은 집단의 악을 구성하거나 대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소설은 그 근원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비리를 덮고 감추기에 급급한 일부 종교단체, 정치활동을 빌미로 개개인의 선의를 갈취하는 사회활동가, 장애인을 돕는다며 모금활동을 하면서도 기부금을 빼돌리고 보호받아야 할 이들을 오히려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람들의 행태 등 선하다고 또는 선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비리와 부패, 욕망을 낱낱이 파헤쳤다.

실화가 바탕이다. 약 5년 간 취재했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은 허구에 의해 씌어졌다. 다만 대구희망원 사건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부분은 거의 실화를 다뤘다."

 제목은 '해리성 인격장애'에서 가져왔다. "악인들의 공통점은 거짓말이었다. 극한으로 몰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책 제명을 '거짓말'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작품에서 썼기 때문에 내려뒀다. '해리성 인격장애'에서 차용했다. 수많은 인격들이 튀어 나오는 정신병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던 중 목을 축이고 있다. 2018.07.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던 중 목을 축이고 있다. 2018.07.30. [email protected]

또 "광주 장애인 학교의 성폭력과 비리를 고발한 장편소설 '도가니'의 배경이 된 안개의 도시 '무진'을 다시 등장시켰다"며 "이중적인 인격의 해리성 인격장애에 비유될 정도로 표리부동한 인간들의 행태를 한눈에 드러내기 위해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페이스북의 이미지를 소설에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그 가을의 모든 새벽마다 안개는 무진(霧津)의 바다로부터 육지로 상륙했다. 모든 아침들은 해가 떠오르기 전에 빛을 은폐하는 안개에 둘러싸였다. 안개는 모든 빛을 빛으로부터, 모든 사물을 사물로부터, 모든 풍경을 풍경으로부터 차단했다. 해가 아주 높이 솟아오르고 안개의 입자들이 하나하나 데워져 수증기로 휘발되기까지는 해조차도 제빛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나는 외롭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많았지만 쓸쓸하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외로움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쓸쓸함이 되는 걸까? 외로움이란 단어 말고 쓸쓸함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오래되고 쿰쿰하고 약간은 궁상맞은 땀내 같은 것이 배어 있는 듯했다. 엄마는 오늘 밤, 쓸쓸하다고 생각할까. 늘 멀리 있던 딸이 이렇게 곁으로 다가와 거실 건너편 방에 누워 있어도?"

전2권, 원고지 1600매 분량이다. 각권 280쪽, 각권 1만4500원, 해냄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email protected]

서울 태생인 공씨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왔다. 1988년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등단했다. 대표작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도가니' 등이다.

 "예전에 '도가니'가 싸움의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 소설은 약자들을 괴롭히는 위선과 거짓말을 탐구했다"며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쓴 게 아니다. 나는 소설가가 직업이었고 지난 30년동안 가장 노릇을 하는데 도움을 줬던 나의 유일한 능력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왕이면 내 소설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지구가 1㎝라도 좀 더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문학적인 평가는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다."

SNS를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작가다. SNS에서 이재명(54) 경기도지사와 영화배우 김부선(57) 스캔들 의혹과 관련, 김씨를 옹호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공지영 작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8.07.30. [email protected]

공씨는 "내가 워낙 생각도 없고 앞뒤도 잘 못 가려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내 성격이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것은 아니다.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내가 작품을 내기 얼마 전이라고 해서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지나가다 맞고 있는 여자를 봤는데 나중에 구하자고 하는 세상에서 책이 잘 팔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행동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와 같다. 자연인으로서 살아갈 때 나의 기질도 그렇고 작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고은(85)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시인 최영미(57)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는 말을 아꼈다.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내가 진짜로 아는 게 없다. 고은 시인이랑 같이 술을 마셔본 적이 거의 없다.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는 게 없다."

공씨는 "앞으로도 쓰고 싶은 소설이 많다. 고려사, 공상과학, 어떤 사랑 이야기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가로서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안의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잘 늙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10년 후 내 모습은 또 다른 식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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