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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우리곁을 떠난] 죽어서 별을 된 반 고흐, 흙수저 성공신화 조오련

입력 : 2018-07-29 07:52:00 수정 : 2018-07-27 1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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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우리곁을 떠난 별 또는] 죽어서 별을 된 반 고흐, 흙수저 성공신화 조오련 

▲ 7월 29일 1890년 반 고흐, 살아서 단 한점의 그림만 팔았지만 죽어선 부르는게 값

빈센트 반 고흐(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는 죽어서 별이 된 대표적 인물이다.

반 고흐는 1000여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알아보는 이가 없어 죽기 4달전 단 한점의 그림(1888년작 붉은 포도밭·아래 사진)만 팔았을 뿐이다. 


그 것도 미술상을 운영하던 동생 테오가 사력을 다해 형의 그림 판매에 나섰기에 가능했다. 사실상 그림을 그려 단 한푼도 손에 쥐지 못한 셈이다.

광기어린 천재 반 고흐는 그가 죽은 지 10여년 뒤부터 세계 미술계 스타로 떠 올랐다.

동생 테오의 유족들이 1903년 '반 고흐 유작전'을 열면서 반 고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지금 그의 그림은 부르는 것이 값이다.

1990년 '가셰 박사의 초상'은 8250만 달러(당시 가격 880억원)에 거래된 바 있으며 '별이 빛나는 밤'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등의 경우 경매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나왔을 경우 가격은 짐작하기 힘들 정도다.

1960년대 이후 반 고흐 평가가 팍 팍 뛰어 오르자 유족(동생 테오의 유족들)들은 197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을 만들어 유화 200여졈, 소표 500여점, 편지 등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반 고흐 미술관(사진)은 밀려드는 관람객을 감당하지 못해 1999년 신관을 증축했다.

예약을 하지 않을 경우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만큼 전세계에서 가장 있기 있는 미술관 중 한 곳이다. 화가 1명만을 위한 미술관으로는 단연 세계 최고이며 암스테르담 최고 인기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 8월 4일 2009년 조오련, 2회 연속 아시안게임 2관왕을 차지한 시대의 영웅

조오련(1952년 10월 5일~ 2009년 8월 4일)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수영에서 2회연속 2관왕에 올라 '아시아의 물개'라는 찬사를 받았던 스포츠 스타이다.


조오련은 섬마을 출신으로 가난을 딛고 성공한 1960년대식 성공신화의 정석으로 여겨졌다.

흙수저였지만 사다리를 타고 신분 상승에 성공한 그를 통해 '하면 된다'라는 당시 명제가 재각광받았다. 많은 이들은 '가난을 딛고~'라는 수식어에 눈물을 흘렸고 조오련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인양 기뻐했다. 

이런 당시 정서적 토양은 2001년 개봉돼 최다관객 신기록을 세웠던 영화 '친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1960년대 중반 세대인 영화 친구속 주인공들은 '조오련과 거북이가 수영을 하면 누가 이길까'를 놓고 내기를 했다. 그만큼 조오련은 당대의 영웅이었고 모든 이들이 본받아야할 표상이었다. 

한국신기록 50회 작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조오련은 대한해협, 도버해협, 독도횡단 등 세상을 주목을 끈 프로젝트를 수행, 수영 알리기에 애썼다.

실제 1950년생인 그는 환갑을 맞이하는 2010년 다시한번 대한해협 횡단을 계획하던 중 2009년 8월 4일 고향 전남 해남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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