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최수현 매니저, “주희정 형과 훈련, 즐거웠다”①

이재범 / 기사승인 : 2018-07-28 1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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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5시즌 활약한 뒤 2017~2018시즌부터 매니저를 맡고 있는 삼성 최수현 매니저


[바스켓코리아 = 이재범 기자] “(주희정 형과) 항상 같이 훈련하니까 정말 즐거웠고, 이런 훈련 방법도 있고, 이렇게 훈련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삼성 최수현 매니저는 2012~2013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고 5시즌 동안 활약한 뒤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5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44경기에서 나섰다. 데뷔 시즌이 가장 화려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코트에서 보기 힘들었지만, 조선대 출신 선수 중 프로 무대에서 가장 많은 시간 코트를 누볐다.


최수현 매니저는 대학시절 2012년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서 평균 10.3어시스트, 2012 대학농구리그에서 평균 6.4어시스트로 1위를 차지한, 남다른 패스 능력을 뽐냈다. 프로 무대에선 수비와 실책 등 약점을 극복 못해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며 출전기회를 잡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노력만큼은 최고였던 최수현 매니저의 선수시절을 돌아봤다.


선수 시절을 되돌아봐주세요.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대경정보산업고) 시절 특출하거나 이름을 알린 선수가 아니었다. 팀도 약체였다. 고등학교 때 잘 했던 선수들은 2학년 겨울, 3학년 초에 진학할 대학 윤곽이 드러난다. 전 그 시점이 지났을 때도 어느 대학을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 때 조선대 이민현 감독님께서 손을 내미셨다. 처음에는 조선대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광주까지 가서 농구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이왕 농구를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고 하셔서 조선대에 입학했다.


조선대 입학 초기에는 적응도 못 해서 경기도 못 뛰었다. 2,3학년 때 인터뷰를 했을 때 프로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었다(최수현이 4학년이었던 2012년 7월 MBC배에서 만났을 때 “(프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팀 성적이 하위권이다 보니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중요하다.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이제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마음으로 4학년까지 했는데 정말 운 좋게 동료들이 도와줘서 (어시스트)상도 받고, 또 운 좋게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지명되었다. 또 운 좋게 데뷔전(2012년 10월 18일 SK와 경기서 15분 42초 출전해 6어시스트를 기록함)도 뛰었다. 그러다 다친 뒤 이렇게 은퇴했다. 하하하.


삼성에서 활약한 5시즌 중 최근 2시즌 동안 D리그에서 뛰었을 뿐 정규리그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쉬울 거 같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제가 비시즌 중요한 순간 매번 다쳤다. 전지훈련도 못 갔다. 많이 아쉬운데 운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프로 입단할 때 운을 다 썼나 봐요.


프로 데뷔시즌까지 운을 다 썼나 보다. 첫 수술 후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2012~2013시즌이 끝난 뒤 시즌 준비를 하며 훈련하다 동료와 부딪혀 발목 골절과 인대가 끊어져 첫 수술을 했다. 그 해 통째로 쉬었다. 이상민 감독 부임하신 뒤 팀이 최하위로 처질 때 시즌 막판 조금 뛰고, 그 이후 정규리그에 나서지 못했다.


부상 이외 경기에 나서지 못한 다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이상민 감독님과 (코치 시절 포함해) 5시즌을 같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저를 가장 많이 보셨다. 감독님께서 느끼시기에 키가 작고, 힘에서도 밀린다. 또 제가 실책이 많은 편이다. 그런 걸 고치지 못한 게 가장 큰 거 같다.


예전에 수비 로테이션을 쫓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신장이 작으니까 더 로테이션을 잘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미스매치가 되면 힘이 약했던 게 약점이었다. 가드로서 더 책임감 있는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제 나름대로 짧은 시간에 뭐라도 보여주고 싶어서 시도를 해봤는데 정확한 플레이를 못했다(웃음).


대학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하면 2012년 경북 영주에서 열린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가 최수현이란 이름을 확실히 알린 대회였습니다.


그 대회가 (이름을 알린) 제일 큰 계기다. 운 좋게 어시스트상도 받고, 팀도 예선 통과했다. 그 때는 농구가 잘 되었다. 동료들이 워낙 많이 도와줬다. 잘 뛰어주고, 잘 넣어줘서 어시스트 숫자가 올라가 결국 프로까지 데뷔했다.


그 때 당시 중위권 이상 대학에 갔다면 더 잘했을 선수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좋은 선수들과 뛰면서 주전 경쟁과 살아남는 법을 경험했다면 프로에서 조금 더 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 때는 주전 경쟁이 없었다. 경기를 하면 당연히 뛰는 거였다. 그렇다고 조선대 진학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이민현 감독님께서 워낙 잘 해주셨고, 조선대 동료들 덕분에 프로까지 올 수 있었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 드리고, (조선대 입학한 게) 후회는 되지 않는다.


대학농구리그 때도 박재현(오리온)과 어시스트 1,2위를 다투다 결국 뒤집어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MBC배 단기 대회 어시스트 1위와 달리 2012 대학농구리그 어시스트 1위에 최수현이란 이름을 새긴 게 의미 있습니다.


어쨌든 기록으로 받은 상이라서 의미가 있고, 제 개인에게도 의미있는 상이다. 전 항상 ‘패스를 잘 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조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든 상이고, 또 프로에 올 수 있었던 상이다.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던 선수시절 최수현 매니저

그 때 어시스트 능력은 좋지만, 전체적인 경기를 아우르는 리딩 능력, 3점슛, 여기에 왜소한 몸을 프로에서 어떻게 메우고, 보완하느냐에 따라 프로에서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잖아요.


매년 후회없이 노력했다. 부족하다는 걸 알고 정말 연습을 많이 하고, 또 주희정(고려대 코치)이란 선수를 만나서 ‘진짜 노력이라는 게 돌아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더 했어야 했나 보다(웃음). 제가 워낙 부족한 선수라서 더 하고, 더 했어야 했다. 그래도 의미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서 야간에 훈련하고, 경기 끝나고 훈련하고, 주말에 훈련한 게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더 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웃음), 후회되지 않는다. 언급하신 약점 때문에 은퇴했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에 후회가 없다.


데뷔 시즌 김승현 선수와 같은 방을 썼습니다. 김승현 선수에게 경기 운영 관련 여러 조언 속에 ‘칼을 열심히 갈고 있으면 언젠가 그 칼을 쓸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더 노력을 했다. 그 전까진 의미없는 야간훈련을 했다면 김승현 형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뒤 ‘아, 진짜 변해야겠구나’ ‘더 노력해야겠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의미 없는 야간훈련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말씀인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개인훈련을 한다면 지금은 스킬 트레이닝이 발달하고, 접할 수 있는 영상이 많아서 훈련 방법이 다양하다. 그 때까진 두 명이 나가서 돌아가며 슛 쏘고, 볼 잡아주는 게 전부였다. 그 때 이후 개인기와 패스 연습, 드리블 치고 나가는 연습, 상황을 설정해서 슛 쏘는 걸 훈련했다. 당시 김상식 코치님께서 상황을 설정해 슛 던지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셨다. 그런 걸 생각하며 훈련을 하니까 플레이 스타일도 바뀌고, 연습한 것도 조금씩 나왔다. 물론 정규리그에서 써먹지 못했지만 D리그에서 바뀐 플레이를 적용해봤다. 그런 점이 달라졌다. 의미없는 개인훈련, 야간훈련은 필요없는 거 같다.


간혹 야간훈련을 보면 하라고 하니까 나와서 슛 던지는 정도에 그치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훈련한 효과를 못 봤네요.


맞다. 더 훈련했어야 했다(웃음).


그렇게 훈련하다 주희정 선수를 만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훈련을 함께 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기분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


희정이 형과 야간훈련 할 때 너무 좋았다. 희정이 형이 오기 전까지 야간훈련을 하면 혼자 하거나 임동섭(상무)과 했다. 승현이 형 이야기를 듣고 바뀐 와중에 의욕이 조금 떨어질 때 희정이 형이 (SK에서 트레이드 되어 삼성으로) 왔다. 계속 노력하며 훈련해도 경기에 못 나가서 ‘이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 희정이 형이 와서 의미없는 노력을 없다는 걸 알려줬다. 희정이 형이 MVP까지 선정되며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대단한 선수인데도 그렇게 노력하며 더 발전하려고 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던 제가 조금 해봤다고 ‘이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걸 바꿔줬다. 항상 같이 훈련하니까 정말 즐거웠고, 이런 훈련 방법도 있고, 이렇게 훈련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훈련한 게 삶의 중요한 자신이 될 겁니다. 농구계에 있으면 활용을 할 수 있을 거고, 농구계를 떠나도 그 당시 정말 최선을 다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좋은 장점을 얻었다.


주희정 선수 은퇴식 때 참석하기 참 애매한 자리(삼성과 FA 협상이 결렬된 뒤 타 구단 영입의향서 접수 기간이었음. 그 이후 은퇴하고 매니저가 됨)였는데 참석했어요.


그 전에 팀과 어떤 결정(은퇴)이 났어도 무조건 갔을 거다. 희정이 형에게 빚진 것도 많고, 저를 도와준 것도 많다. 어쩌다 보니 희정이 형의 선수 시절 마지막 룸메이트였다. SK에 있을 때 룸메이트가 없었다고 들었다. 몇 년 만에 만난 룸메이트였고, 마지막 룸메이트였다. 희정이 형이 방에서 워낙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고, 너무 재미있게 잘 지냈다. (주희정 은퇴식에) 안 갈 수도 없었다(웃음).
(최수현 매니저는 주희정 은퇴식에서 “다른 팀에 있을 때 까칠해 보였는데,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제가 어떤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든 희정이 형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줄 거다"며 “방에 있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다 들어주시면서 걱정해주시고, 해결해주려고, 도와주려고 하셨다. 인생 살면서 희정이 형과 같이 보낸 시간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희정이 형이 세상이 그냥 쉽게 이뤄지는 건 없다고 하셨다. 항상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게 기억에 가장 남는다”고 했다.)


②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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