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경비원 모두 거부하는 '경비실 에어컨 설치'.. 갑질 때문?

신혜지 2018. 7.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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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서 설치 지원하는 임대아파트서 문제.. "전기요금 부담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이유"
무더운 여름 날 1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근무 중인 한 경비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경비실에 에어컨 달지 말아 주세요”

40도 가까이 타는 듯한 더위로 폭염경보와 첫 열대야까지 발생했던 지난 1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시공업체가 나서서 부산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주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에어컨은 설치되지 못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로 에어컨을 설치하려던 업체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민들이 에어컨 설치를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경비실 에어컨의 전기 사용료를 저소득층 입주민들이 부담해야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 LH “전기요금 지원은 지자체 소관… 우리가 지원하면 ‘특혜’ 얘기 나올 수도”

경비원들의 열약한 근로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것은 작년부터였다. 이에 LH는 지난해부터 냉낭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전국 LH 임대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 에어컨을 무료로 설치하고 있다. LH는 “에어컨이 없는 경비실에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임대아파트 경비 근로자의 건강과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다”며 “특히 경비원 다수가 고령자인 데다 최근 폭염경보가 발효되고 있어 다음과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LH 측에서는 에어컨을 설치만 해줄 뿐 전기 요금을 지원해주진 않는다. 이에 LH 한 관계자는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기 요금 지원은 해당 지자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라며 “만일 우리가 전기 요금을 지원하려면 내부 규정이 필요하고 지자체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수도권의 경우에는 지원이 많은 반면, 부산 같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만약 LH 자체에서 지자체와의 협의 없이 무상으로 전기 요금을 지원하게 된다면 특혜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최대전력수요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그는 “무엇보다 LH가 에어컨을 지원하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며 “최초에 에어컨을 무상으로 기증하려고 했던 이유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부터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특히 경비원으로 근무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가 열사병으로 쓰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지한 뒤, 에어컨 설치라는 방법으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10억원 정도를 투입했다”며 “실제로 전기 요금이 얼마나 드는지까지 검토했다. 그 결과 세대당 부담금은 55원 정도였고 그 정도면 입주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LH는 통상 1000세대 규모의 단지에 소비전력이 1.2KW 용량의 벽걸이 에어컨을 하루 8시간 가동하면, 한 달에 2만7000원 정도의 전기 요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경비실 2곳에 설치해도 단지 당 5만5000원 수준으로 세대당 부담금은 55원에 불과하다. 또 에어컨 설치 대상 단지의 43%가 공동전기료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거나 LH가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해 입주민 부담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관리사무소에서도 주민들에게 얼마 정도의 전기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지 안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전기 요금이 아무리 작아도 입주민들은 에어컨 설치 그 자체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무상으로 전기 요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없어지냐.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결국 경비원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더운데…” 자발적으로 에어컨 설치 거부하는 아파트 경비원들

이런 복잡한 문제로 인해 부산의 또 다른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 경비원들은 자발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이곳에 근무하는 8명의 경비원은 LH의 지원으로 경비초소 4곳에 설치하기로 한 에어컨을 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들 역시 경비실에 설치될 에어컨 전기 사용료를 떠안아야 하는 저소득층 입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사진=국민일보DB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경비원들이 ‘꼭대기 층 입주민보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경비실이 덜 덥다’면서 ‘아파트 입주민 대부분이 에어컨이 없는데 경비실에 떡하니 설치하면 마음이 어떻겠냐’며 자발적으로 설치를 거부하셨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아파트의 설치 비율은 1/5 수준이다.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역시 “하루걸러 하루 씩 경비원들은 쉴 수라도 있지만, 실내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아파트에서 허덕이는 입주민들이 한평 남짓한 경비실에 에어컨이 틀어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씁쓸하겠느냐.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노컷뉴스에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무리 경비원들이 자발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거부했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그들을 열악한 근무환경에 방치할 수 없다며 근로 약자와 생활 약자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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