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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마지막 국회 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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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회찬의 마지막 국회 등원

국회 영결식 엄수 "많이 사랑했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닷새, 시민들은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아내며 그를 떠나 보냈다.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엄수됐다. 지난 2004년 5월 31일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기념식이 열렸던 바로 그 자리다. 14년 전, "여기까지 오는 데 50년이 걸렸다"며 감격어린 첫 소감을 밝혔던 고인의 마지막 국회 등원을 시민들은 비통한 눈물로 맞이했다.

노 의원을 실은 영구차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할 무렵부터 시민들은 이미 땡볕이 내리쬐는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그를 기다렸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인,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그리고 국회의원도 지위 고하가 없었다. 유족들을 제외한 좌석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9시 50분, 노회찬 의원을 실은 영구차가 들어왔다. 노 의원의 큰 조카 노선덕 씨가 영정사진을 들고 유족들과 함께 영결식장으로 들어섰다. 정의당 심상정, 이정미, 추혜선 의원도 함께 걸어들어왔다. 유시민 작가와 윤소하 의원, 천호선 전 공동대표, 강기갑 전 의원, 단병호 전 의원도 그 뒤를 따랐다.

▲노회찬 의원의 사진을 단 차량이 국회 앞에 세워져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읊었다. 문 의장은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하다"며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냐. 어떻게 하다가 노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인가"라고 했다. 장중에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 의장은 "정치의 본질이 못 가진 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며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됐다"며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히 앞으로 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조사를 통해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노회찬 원내대표를 추모해주셨다. 감사하다"며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 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 많은 분들이 노 원내대표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분들이 나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라고 했다"며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노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성명을 냈다"며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다"라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당원들과 국민에게 너무나 죄송하다"며 "그가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라고 했다.

▲심상정 의원이 조사를 읽던 중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 프레시안(최형락)

심상정 의원은 슬픔을 참지 못했다. 심 의원은 "지금 내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저 뒤로만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순간, 슬픔을 참던 장내에서도 끅끅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회찬 의원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심 의원은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다"며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과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왔다"라고 했다.

금속노동자 김호규 씨도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선배님과 함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었다"며 "새벽 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올려진다"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다"며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한다"라고 했다. 그는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다"고 덧붙였다.

노회찬 의원은 영상 속에서 목소리를 들려줬다. 노 의원은 "변화가 가능하다. 정치인들을 변화시키는 것 이전에 유권자들이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영상 속에서는 '판을 갈아야 한다', '외계인이 쳐들어 오면 연대해야 한다'라는 노 의원의 호쾌한 유머가 나왔지만 시민들의 웃음은 들리지 않았다. 노 의원이 서정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소연가'가 처연히 흘러나왔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꺼나"

노 의원이 육성으로 부른 노래가 울려 퍼지자, 시민들의 울음 소리는 더욱 커졌고 큰 한숨 소리들이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노 의원의 큰 조카 노선덕 씨는 "무더운 날씨에도 큰아버지 가시는 길에 함께해준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내가 7살 네발자전거를 함께 끌어준 추억, 명절에도 서재에서 독서하시는 모습, 큰아버지와 걸을 때 참으로 듬직해서 꽃길이나 가시밭길이나 함께 걷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큰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러 갈 때, 큰아버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으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라고 말씀하셨다"라며 "항상 어려운 선택, 최선을 선택을 하셨을 거라 믿지만, 지금은 그 큰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큰아버지와 배우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시간이 함께 남은 줄 알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많다"며 "국회의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큰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그는 "그립다. 사랑한다. 큰어머니, 할머니 잘 모시겠다"며 "큰아버지 바람대로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마련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노 의원을 떠나보낸 시민들이 많았다. 늦게 온 시민들은 먼발치 잔디밭에 서서 노 의원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1시간에 걸친 영결식 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국회 분수대에 양옆에 놓인 방명록에 시민들이 저마다 고인을 기리는 말을 써 내려갔다.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프리랜서, 학생, 할아버지, 할머니, 반차를 쓰고 달려온 직장인까지.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날씨 속에도 행렬은 말 없이 순서를 기다렸다. 20여 명이 넘는 줄을 말 없이 기다렸다.

'의원님. 너무나 원합니다. 노회찬 없는 노회찬의 세상이 열릴 겁니다. 지금 열립니다. 그대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그대는 영원한 내 편이기에. 김숙영.'

이른 새벽밥을 먹고 전남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김숙영 씨는 "이렇게 노회찬 의원에게 마음 깊이 의지하고 있는 줄 몰랐다"며 "라디오에서 만나는 노 의원 때문에 일주일을 버틴다고 할 정도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영결식에 준비된 자리가 꽉차 자리에 앉지 못한 시민이 먼 발치에서 노회찬 의원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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