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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면서기에서 은행장까지…흙수저 영업맨의 신화
포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NH농협은행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이대훈 행장. 농협 입사이후 30년간 현장을 지킨 ‘영업의 달인’이기도 한 그는 오늘도 직원들에게 ‘영업 마인드’를 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농협서 바닥 다지고 최고자리 오른 이대훈 NH농협은행장
 “항상 고객이 궁금해하는 것 공감하고 소통, 고객이 고객 모셔와”


경기도 포천의 43번 국도 근처.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때였지만 아직 하루 내내 다니는 버스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동네였다.

‘대훈이’는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키 큰 소년이었다. 변변한 참고서 한권 살 돈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마을 뒷산 성묘를 온 부잣집 소녀에게서 받은 참고서 더미에서 ‘수학의 정석’을 처음 알게 됐다. 대학의 꿈을 키웠다. 시골에서는 대학보다는 ‘면서기’가 더 나아보였던 때다.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느니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농사까지 돌볼 수 있는 면사무소는 어른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지금도 그리 어렵다는 9급 공무원이다. ‘대훈이’는 고등학교 졸업 전 면사무소에 들어갔다. 어느 날 그를 눈여겨본 담임 선생님이 면사무소를 찾았다.

“농협대학교에 가면 등록금도 필요 없고, 취직도 100% 보장된단다”

고민하던 그는 집 주소를 면사무소로 바꿔 일단 시험을 치렀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면사무소 다니는 아들을 보며 한시름 놓은 어머니의 허락이 문제였다. 작은 누나가 어려운 설득에 성공했다.

고졸 면사무소 공무원에서 자산 270조원의 NH농협은행 최고경영자에 오른 이대훈 행장을 최근 서울 서대문 본점 집무실에서 만났다.

농협, ‘인재’를 얻다= “전 흙수저예요. 아니었다면 농협대를 가지 않았죠. 당시 받은 예비고사 점수면 서울 명문대에 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학을 꼭 가야 되냐’고 하셔서 이후로는 대학에 가겠다는 말도 못 꺼냈어요. 등록금을 대줄 수 없었거든요”

사실 중학교 때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는 정규학력은 국졸이지만 한학을 공부한 ‘인텔리’였다. 동네 친목계 회장을 도맡아 하던 해결사였다. 어머니도 홀로 다섯 명의 자녀를 키워낼 정도의 ‘여장부’였다. 명석함에다 리더십까지 물려받은 이 행장의 경쟁력은 대학 진학 후에 더욱 빛이 난다.

학창시절에도 내리 반장을 했지만 농협대에서는 사상 첫 선출 학생회장에 올랐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10시 반까지 구보, 청소, 수업이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 군대처럼 센 규율에도 고생이란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부모님 가르침을 되새겼다. 선생님의 약속대로 졸업 후 농협에 입사했다.

농협에서도 바닥부터 ‘차근차근’이었다. 영업점에서 본점 기획, 조사 업무를 거치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3년 농협은행 프로젝트금융부장으로 발탁되기까지 영업점만 돌았다. 권위의식 없이 직원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팀워크’를 발휘하는 게 몸에 배었다.

눈을 맞추면 마음도 통한다=프로젝트금융부장 시절에는 부장실에서 나와 틈틈이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결재, 보고를 받았다. 관례를 깨고 차장, 과장 대신 타부서의 합의를 받아 주기도 했다. 매달 한 번씩은 영업점처럼 직원들의 업무 현황을 듣고 칭찬을 해주는 회의 시간을 가졌다. 소통의 비효율은 사라졌고 스스로 주ㆍ반월ㆍ월 단위로 실적 목표를 채우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지역영업본부장과 농협상호금융 대표에 오른 뒤에도 수평적 리더십은 계속됐다.

그가 거쳐간 자리에서는 ‘이대훈식’ 조직운영법을 따라하는 후배들이 생겨났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노하우를 책으로 써보라”고 종용했을 정도다.

농협은행장이 된 지금도 현장경영차 지역본부,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경영분석회의 등을 주재할 때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그대로다. 순시하는 CEO(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직원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선배’를 지향한다. 직원과 처음 인사할 때도 한 명당 3분을 할애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보면 이름과 신상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

그를 겪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멀리 있는 행장이 아니라 영업점에서 함께 일하는 지점장, 팀장 같다는 말이 나온다.


공감…영업의 신화를 쓰다=안에서 이 정도인데, 밖에서 평범할 리 없다. 1985년 농협중앙회 입사이후 30년간 현장을 시키며 ‘영업의 달인’이 됐다.

“고객 분들께는 섬세하게, 다정다감한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고객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할 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궁금해 하실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죠.”

이 행장은 거래하는 고객마다 ‘저 사람은 나에게만 신경 쓴다’는 인상을 주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고객 생일이나 명절마다 은행들이 보내는 화분이나 소고기 선물도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 직접 화원에 가서 화분에 들어가는 돌 크기와 종류, 스티로폼 비율을 눈으로 확인했다. 명절 전에는 축산물프라자에서 소갈비 부위를 일일이 골라 포장하고 고객 집까지 배달을 갔다. 몇 달 정도 지나면 고객 입에서 “농협은행 것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공감도 중요하다. 사별한 할머니 고객을 대할 때는 눈ㆍ비가 와서 외롭고 적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날을 잘 활용했다. 예정에 없던 전화를 걸어 눈 내리는 왕릉 풍경은 어떨지, 백운호수 인근 라이브 카페를 가보셨는지 등을 물었다. ‘괜찮을 것 같다’는 한 마디면 곧바로 차를 끌고 갔다.

“그 분들이 가고 싶은 곳은 경로당이 아니거든요. 혹시라도 궁금해 하시면 사전에 계획이 없더라도 모셨어요”

호칭도 다르다. 누구나 ‘고객님’으로 부르는 건 서로의 심리적 거리를 멀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제일 편하고 좋아할 만한 것으로 호칭을 정했다. 성당에 오래 다니는 고객은 나이와 상관 없이 ‘자매님’이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이 행장에게 영업 현장은 물리적 경계가 없었다. 동네 미용실부터 세탁소, 빵집까지 모두 ‘전초기지’다. 과거 단골 미용실에 한 달에 한 번씩 파마를 하러 갈 때마다 카드 신규가입신청서가 10∼15장씩 쌓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고객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영업실적을 좌우합니다. 근무시간에 찾아오는 고객들에 대한 영업은 당연한 것이고, 그 관계의 폭을 넓혀가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나 혼자 영업하는 게 아니라 내 고객이 영업을 해주고 새 고객을 데려옵니다. 이런 ‘소개 마케팅’이 영업에는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에게 ‘영업 마인드’를 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엔 현장 마케팅교육 프로그램인 ‘램프(LAMP)’를 도입했다. 전국 영업점에서 100명 넘는 마케팅 달인들을 선발해 이들의 실제 접객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등 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했다. 교육 내용도 상품분석, 역할극에서 벗어나 토론, 토의 위주로 강화시켰다.

“직원들은 자신의 약점을 모르기 쉬워요. 동료 직원들과 토의를 해서 무엇이 부족한지, 고객의 시선에서 무엇이 필요할 것 같은지 서로 알려주게 합니다. 그렇게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죠. 대출, 예적금, 카드 상품 판매하는 법을 알려주면 한 두 번은 잘 할 수 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밑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은행, 금융 관련 일이 있으면 그 직원에게 가서 부탁하고 싶도록 고객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죠”

새 도전 디지털...2020년 리딩뱅크로=“2012년 농협은행이 출범한 이후 선배 행장들께서 조직을 잘 다져놓으셨습니다. 전 제가 잘 할 수 있는 ‘영업 마인드’를 접목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농협은행이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은행의 영업력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취임 후 반년을 보낸 이 행장은 이제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영업력을 끌어올리는 데 우선 집중하면서 향후 먹거리를 디지털 사업에서 모색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금융IT 부문에서 리딩뱅크가 되겠다는 비전도 선포했다.

“그동안 현장경영회의를 거치면서 직원들의 분위기가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어요. 영업ㆍ마케팅은 램프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고 농협은행의 핵심 경쟁력을 ‘디지털’로 이끌고 가겠다는 것도 내부적으로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담=홍성원 금융재테크섹션 금융팀장

정리=강승연 기자/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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