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뚝심' 빛난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김지용 2018. 7. 26. 13: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김지용 기자] 농구 전문잡지 점프볼은 창간 18주년을 맞아 유소년 농구 저변 확대를 위해 ‘점프볼 유소년 농구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농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매체로서 18년간 농구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점프볼은 2018년 1월부터 풀뿌리 농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보탤 계획이다.

# 15년 동안 한 곳만 바라보다
2003년 12월, 유소년 농구 발전을 위해 문을 연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PBC)>은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지원과 의왕시의 협조 속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다. 박혜숙 대표는 의왕시에 유소년 농구교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유소년 농구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아들이 5살이 될 때까지는 육아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다.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다 2002년 즈음 우연히 의왕시에서 체육관을 건립하는 것을 알게 됐다. 알아보니 그 때까진 의왕시에 이렇다 할 유소년 농구교실이 없었다. 바로 옆 도시인 안양에는 꽤 많은 유소년 농구교실이 있었는데 의왕시는 그렇지 못해 내가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한 기회를 만난 박혜숙 대표는 한 번 결심 하자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2003년 유소년 농구 발전을 위해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의 문을 연 박 대표는 시 체육관 뿐 만 아니라 의왕초등학교, 호성초등학교 등을 대관해 질적 향상을 꾀했고, 이런 박 대표의 노력에 학부모들과 학생들도 지지를 보냈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박 대표는 “농구는 나에게 평생의 동반자였다. 내가 터를 잡은 의왕시의 농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거칠 것이 없었다. 원래 한 가지 결정하면 질질 끄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처음에는 한 군데 체육관에서 시작했지만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해 더 많은 체육관을 대관했다. 한 곳에 많은 아이들이 몰리면 아무래도 교육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많은 체육관을 대관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농구를 향한 박 대표의 열정은 거침이 없었다. 유소년 농구교실을 시작한 이후 2006년 의왕시농구연합회(現 의왕시농구협회) 발족에 힘을 보탠 박 대표는 현재까지 의왕시농구협회장과 경기도농구협회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다.


그녀의 이런 열정 덕분이었을까? 박 대표의 유소년 농구교실은 승승장구 했다. 발전을 거듭한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은 2017년 12월 지금의 위치에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전용체육관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도 일사천리였다. 농구교실을 운영하며 전용체육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준비를 시작, 단 6개월 만에 체육관을 건립했다.


“유소년 농구교실을 운영하면 할수록 우리 아이들을 위한 체육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아이들이 몇 명인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믿고 찾아오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체육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부지를 구입해 체육관을 건립하게 됐다. 예상보다 큰 돈이 들어 놀라기도 했지만, 짓고 나니 세상 좋을 수 없었다(웃음).”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전용체육관은 지상 2층 건물이다. 아이들이 농구를 배우는 코트는 2층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주차장이 마련된 1층에도 농구 골대가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원래는 1층에도 야외 농구장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법에 저촉돼 주차장만 설치해놨는데 행정상 절차가 풀리면 1층에도 농구장을 만들어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2003년부터 유소년 농구교실에 헌신한 박혜숙 대표는 거센 경상도 억양의 말투를 갖고 있다. 농구 명문인 삼천포여고 출신인 박 대표는 교육 중에도 경상도 사투리를 앞세워 스파르타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시간이었기에 자칫 아이들이 겁먹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박 대표의 지시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여느 엘리트 농구부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지난 1월부터 많은 유소년 농구교실을 다녀봤어도 이렇게까지 절도 있는 모습으로 훈련하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기자가 있어 연출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정확한 순서에 맞춰 몸을 풀었고, 서로를 독려했다. 자칫, 트레블링이라도 범하면 “그거 트레블링이야”라며 친구의 실수를 바로 잡아줬다.

 
“예전부터 허투루 가르치는 걸 참 싫어했다. 사실, 모두 돈을 내고 농구를 배우러 온 아이들인데 작은 동작 하나라도 잘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코트 밖에선 장난을 쳐도 코트 안에선 무엇이든 진지하게 임하고자 한다. 기본기를 많이 강조하기 때문에 밑바탕이 되는 준비시간부터 아이들에게 진지함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박 대표의 말대로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아이들 중 코트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애들인데’ 하는 생각으로 코트를 주시(?)했지만 수업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더 진지해졌다. 특히, 엘리트 농구부에서나 할 법한 드릴 훈련을 준비하는가 하면, 본인들 스스로 코트에 필요한 물품들을 설치하는 것을 보고 ‘평소에 몸에 벤 연습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자 박 대표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코트에 서자 양보가 없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겁내거나 피하기보다는, 박 대표의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더 듣고자 눈빛이 초롱초롱 했다.
“그래도 아이들인데 너무 엄한 것 아닌가.” 필자가 물었다.


“처음에는 놀라는 아이들도 있다(웃음). 그래도 2~3주 지나면 다 적응한다. 그리고 경상도 억양이라 말투가 거셀 뿐이지, 속내는 안 그런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아이들 모두 열심히 한다. 덕분에 늘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의 교육철학에 동조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그녀의 농구교실에 후원을 할 정도로 박 대표의 교육철학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믿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거나, 나쁜 짓 하는 걸 그냥 넘기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마음으로 나쁜 길로 접어드려는 아이들을 더 따끔히 혼내는 것 같다. 농구를 배우러 왔다고 농구만 가르치지 않는다. 기본 인성이 되어야 농구도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부분은 따끔하게 교육하고 있다."


어느덧 31세가 된 첫 제자는 박 대표를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대성해 대기업 직원이 된 30대 제자는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커서 보니 선생님께서 우리를 참 많이 걱정하셨다는 걸 걸 알게 됐다. 그 때 선생님을 만났기에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에 박 대표는 “부끄럽다(웃음). 아이들에게 잘해준 것도 없는데 감사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고 화답했다.


엄마 같은 자상함으로 포용의 교육을 펼치고 있는 박 대표는 수업 도중 발목 통증을 호소하는 학생에게 직접 무릎을 꿇고 발목 테이핑을 하는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PBC(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는 농구대회에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
한 때 유소년 농구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이 나서는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다른 팀들에서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들을 한 것. 그만큼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은 어느 대회에서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체육관 입구부터 즐비했던 상패와 수상의 흔적들은 그동안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의 발자취를 느끼게 해줬다.


하지만 정작 박 대표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성적이 떨어지긴 했지만 한때는 나서는 대회마다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저런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이 나돌았다(웃음)”라며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다. 다만, 시합에 나가면 무조건 ‘자신감’있게 하라고 주문한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공통점이 있다.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경기에 나가 공을 잡으면 잘하는 아이들에게 패스하기에 급급했다. 그게 싫었다. 같은 시간, 같은 돈을 내고 농구를 배우는 아이들인데 지금 조금 실력이 떨어진다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경기에 지더라도 무조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하라고 교육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은 현재 전용체육관이 위치한 본점과 안양시 평촌동에 위치한 평촌점 두 곳에서 운영 중이다. 박 대표는 7살 어린이부터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농구를 교육하고 있다. 농구가 있고,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지난 2016년 농구로 인해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2016년 봄부터 10개월 정도 고봉교도소에 수감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구를 가르친 적이 있다. 교도소 내에 농구 코트가 생겨 수감된 아이들에게 농구를 알려준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농구가 주는 힘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농구를 알려주고 싶다.”

 


유소년 농구교실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끝나면 떡볶이 사먹는 게 재미있다는 박혜숙 대표. 올해로 53세가 됐지만 앞으로도 15년은 거뜬하다는 박 대표는 “난 아이들이 참 좋다. 어릴 때부터 조카들도 좋아했고, 실업선수 시절에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걸 참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은퇴 후에 적성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내가 81세가 되면 잔치를 할 테니 그 때 꼭 찾아와라. 그 때 너희 모두 와서 한데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자’라고 자주 이야기 한다. 그만큼 마지막까지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그 때까진 쌩쌩하게 날아다닐 생각이다(웃음)”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30대 후반에 시작한 유소년 농구교실을 50대 초반이 된 지금도 열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박혜숙 대표는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농구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바뀌는 걸 확인했다. 나와 함께하며 잘 된 아이들도 있지만 가슴 아픈 손가락도 있다. 모두가 좋은 일을 겪진 않는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강사진은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거고, 지금의 교육철학은 흔들리지 않을 거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될 아이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입상 내역
2016년
경남도지사배 유소년 농구대회 초등, 저학년부 3위, 중등부 3위
하나투어배 유소년 농구대회 초등부 2위

2017년
영월 유소년 농구대회 중등부 3위
전국 유소년 왕중왕 농구대회 중등부 2위

#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문의처
주소 :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422-1 박혜숙 유소년 농구교실 체육관
TEL : 010-9917-4391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진_김지용 기자

  2018-07-26   김지용(mcdash@nate.com)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