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호족 포용정책, 協治 거울 될 수도"

엄주엽 기자 2018. 7. 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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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왕씨 족보에 실린 태조 왕건의 초상 모사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조 왕건상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충남 천안시 목천읍 출토 ‘청동인물두상’.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

-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동아시아 속 고려왕조’ 공동학술회의

여진·거란·발해 등 투화인 17만

당시 인구 210만~300만 추정

태조때부터 他종족 분류 안해

황제국 표방하며 다원외교 펼쳐

송·요·금나라 망해도 독자생존

전근대 조공·책봉외교와는 차이

주요유적 北밀집… 연구에 한계

DMZ 궁예도성 발굴 가능성 등

남북공동 고려사연구 활기띨듯

“고려는 내부적으로 다원적이고 포용적인 사회였고, 밖으로도 정교한 다원외교로 독자적 생존을 이루며 문화를 꽃피운 나라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고려사를 재조명하는 학술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주요 박물관에서 고려 유물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의 허리에 위치한 고려왕조(918∼1392)는 이전 삼국시대와 뒤이은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 왔다. 고려의 수도가 개경(개성)이었던 만큼 주요 유적이 북한지역에 집중돼 있어 남한 학자들의 연구도 문헌자료에 의존해온 한계가 있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활용 방안으로 이른바 ‘궁예 도성’ 공동발굴 가능성도 높아져 고려사 연구가 건국 1100주년을 맞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한국중세사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25일 고려대에서 ‘동아시아 속의 고려왕조, 국가 인식의 토대 천하관’을 주제로 공동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중세사학회장인 김기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고려사 연구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대내외적 상황에서 현재적 의미가 크다”며 “대내적으로 정파적 관계에 따라 상대를 적대시하는 대립을 지양했던 태조 왕건의 대(對)호족 포용정책을 거울로 삼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 다원적 국제질서 속에서 독자적 생존을 위한 고려의 다원외교 정책은 오늘날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주목해볼 국가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사회가 된 우리가 여전히 지역 갈등은 물론 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 등으로 논란을 벌이고 있고, 북핵 해결을 둘러싼 주변 열강의 숨 막히는 헤게모니 쟁탈전은 고려시대 안팎의 환경과 비슷하다.

학술회의에서 고려사연구자 추명엽 전 세종과학고 교사가 발표한 ‘고려의 다원적 종족 구성과 아국(我國)·아동방(我東方) 의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한족계(漢族系), 여진계, 거란계, 발해 유민 등의 투화인(投化人·귀화인) 수만 17만 명에 가까웠다. 당시 고려 인구가 210만∼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것에 견주면 고려는 ‘다민족(종족) 국가’로 볼 수 있다. 고려는 이종족·이국인을 종족 단위로 파악해 관리하지 않았고, 태조 왕건 때부터 ‘우리나라’(아국) 또는 아동방으로 포용해 해동천하(海東天下)로서의 집단 귀속의식을 갖고 동화하게 했다. 추 전 교사는 “우리는 현재 일상적으로 ‘한민족’이란 말을 쓰고 과거 여진인, 거란인, 몽골인 등을 ‘여진족’ ‘거란족’ ‘몽골족’이라고 부르지만, 고려 시기에는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런 단어는 민족국가 단위의 현재 우리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는 대외적으로도 당당했다. 허인욱 한남대 교수는 ‘군주 호칭으로 본 고려 전기 대외인식’ 발표에서 “고려 군주는 중원 황제, 유목세계 가한(可汗·카간)과 더불어 요동 동쪽 세계에 군림하는 대왕으로 불렸고, 별도 천하관(天下觀)을 가졌다”며 당시 국제질서를 중국 황제 혹은 중원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려는 황제국을 표방하며 송나라, 금나라, 요나라, 일본 등 주변 국가와 다원적 외교를 펼쳤다. 허 교수는 “고려는 거란이나 금의 군주를 외부적으로는 황제로 호칭하면서도 내부적으론 격하된 국주(國主) 호칭을 쓰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면서 “전근대 동북아시아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주요 틀인 조공과 책봉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도 “다양한 외세가 고려를 침략했지만, 남송, 북송, 거란(요나라), 여진(금나라)이 다 망했어도 고려는 다원적 외교를 통해 살아남았다. 미·중·러·일 강대국에 북한까지 얽힌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처할 실마리를 고려시대를 살았던 선조의 지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국사편찬위원회도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길로’를 주제로 고려사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회의를 진행한다. 27일까지 ‘고려건국 1100주년 기념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올 연말 예정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을 위해 북한에 소유 유물 전시를 제안해 놓은 상태다. 청주박물관은 11월 11일까지 ‘중원의 고려 사찰’ 특별전을, 39년간 ‘대몽 항쟁 수도’였던 인천 강화군은 28∼29일 ‘고려문화축전’을, 울산대곡박물관은 8월 26일까지 ‘고려시대 헌양, 언양’ 특별전을 연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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