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회찬을 죽였나.. 드루킹의 접근, 핍진한 생활고, 정치자금법

안승진 2018. 7. 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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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스토리]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사연

“(드루킹의)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 어리석은 선택, 책임….”

고(故) 노회찬 원내대표(의원)가 23일 죽음을 선택하기 전 유서에 남긴 단어들이다.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 측으로부터 받은 4000만원에 대한 노 대표의 죄책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노 의원은 왜 드루킹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야만 했고, ‘어리석은 선택’을 해야 했을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사진=이재문 기자
수사기관 및 정치권 등에 따르면 노 의원이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는 드루킹의 정치브로커적 행태,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판단 실수, 현행 정치자금법의 문제와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드루킹 인사청탁 노리고 접근?...특검, 협박 정황 파악 나서

노 의원의 죽음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수사 중 경제적공진화모임과 노 의원간 자금거래 물증을 확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벌어졌다. 즉 노 의원이 2016년 총선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드루킹의 측근인 도모(61) 변호사로부터 5000여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특검 안팎에서는 드루킹은 의도적으로 노 의원에게 접근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 연합뉴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은 지난 대선 전부터 노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 유력자로 예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공모 회원은 CBS와 인터뷰에서 “당초 드루킹은 노회찬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만큼 성장할 거라고 예언을 하곤 했지만 생각보다 당에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봤다”며 “그 즈음부터 노 대표에 대해 비난하고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특검팀도 노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을 가능성을 보고 드루킹이 투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해 5월 드루킹은 트위터에 “정의당과 심상정 패거리가 민주노총을 움직여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려고 하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방에 날려버리겠다”는 경고성 글을 올려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검팀도 드루킹이 금전적 지원을 빌미로 정의당 의원들을 협박한 정황 파악에 나섰다.

◆삼성X파일 폭로로 의원직 상실…당시 빚만 1억

드루킹으로부터 4000만원의 돈을 받은 2016년 3월 당시 노 의원은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해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노 의원은 고등학교 동창 도모 변호사를 통해 드루킹의 불법정치자금에 손을 대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거다.

노 의원은 2005년 진보신당의 대표로 있던 시절 삼성 로비 의혹을 받는 ‘삼성X파일’ 검사 7인의 명단을 인터넷에 폭로했다. 해당 검사들은 노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2013년 대법원은 노 의원에게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해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국회의원 신분을 잃은 노 의원은 20대 총선을 준비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드루킹에게 돈을 받기 6년 전 서울 노원에 전세 1억 1500만원 아파트에 살며 1억여원의 빚이 있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사망 하루 전인 22일 오후 미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차량에 올라타는 모습. 그는 이튿날인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인천공항=뉴시스
당시 삼성X파일을 노 의원에 전달한 이상호 기자는 23일 페이스북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됨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의원은 이후 3년 이상을 정치 낭인으로 떠돌며 물적으로 심적으로 고통의 시절을 겪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것은 바로 그 낭인 시절 생활고와 무관치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로서는 고인에 대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책임과 죄송한 마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노 의원은 드루킹측의 자금을 받은 이후 나중에라도 회계처리를 명확히 했어야 했지만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한 ‘실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그때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는 유서에서 드루킹으로부터 받은 자금에 대해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며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했다.

◆“월 500~3000만원 필요하지만…”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도 족쇄로

노 의원의 죽음은 비현실적인 정치자금법과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은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 5000만원 한도로 후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법인, 단체는 국회의원을 후원할 수 없으며 개인은 최대 500만원까지만 후원할 수 있다.

현역 의원은 1년간 후원금을 채우기 위해 사방으로 뛰며 목표치를 채울 수 있지만 의원 후보의 경우 총선 120일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후에야 부랴부랴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노 의원은 국회의원이 아닌 신분에서 20대 총선을 준비하며 ‘민간 단체’인 경공모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다.

정치자금법의 한도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최병천 전 국회보좌관은 23일 페이스북에 “(정치를 위해서는) 월 단위로 최소 500~3000만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기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생활비가 필요하고 활동비가 필요하고 상근자 급여와 사무실 유지비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걸 막고 있어 결국 범법자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 현 정치자금법 아래에서는 어느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자금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 조짐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의 자리에서 노 의원의 사망과 관련 “모금과 집행의 투명성 제고를 전제로 해서 정치자금 현실화 및 정치신인의 합법적 모금 등의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선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현행 우리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거가 있는 해가 아니면 정치신인은 정치자금을 전혀 모을 수 없다”며 “정치 활동에도 돈이 필요한데 합법적인 방법으로 모금이 불가능하니 많은 원외 정치인들이 은밀한 자금 수수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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