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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찜통에도 전기료 무서워 에어컨 못켜…두달은 누진제 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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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많은 어린이집·유치원…10시간 가까운 실내생활에도 냉방 마음대로 못해 속앓이
열대야로 서울 곳곳에 정전…엘리베이터 멈춰 노인 불편
車 에어컨 틀고 잠들기도
펄펄끓는 더위에 인내심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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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10시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한 민간 어린이집. 초 단위로 움직이는 6~7명의 아이들(방별)과 이들을 관리하는 보육교사들의 쉴 새 없는 움직임에 방에 들어서자 단번에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과 달리 보육교사들은 걱정이 앞선다. 이날 서울의 낮 기온은 34.1도까지 올라갔고 습도는 베트남 수준인 76%까지 치솟았다. 에어컨이 설치된 곳조차 온도가 27도로,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열악한 재정 상황에 누진제 공포가 남다른 어린이집 입장에서 에어컨을 제대로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설치된 사무실은 정부가 설정한 공공기관 실내온도 수준을 가까스로 맞췄지만, 거실과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방 안 온도는 이조차 맞추지 못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은 어떤 곳보다 냉방시설이 잘돼 있어야 하는 장소인데 누진제 공포에 마음 놓고 에어컨을 틀어 놓기도 부담스럽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국가 지원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민간 쪽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고 말했다.

자연재해급 폭염에 전기요금에 대한 공포가 눈앞에 닥치면서 이른바 '누진제 포비아'가 들끓고 있다. 가정용 전기 누진제가 본격 적용될 오는 8월 전기요금에 대한 공포에 유일한 생존 전략인 에어컨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혹서 지역과 어린이 십수 명이 모여 있는 가정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시적 누진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 지원과 학부모들의 어린이집 등원비 등으로 한 달 예산을 맞춰 운영하는 민간 어린이집 입장에선 전기요금이 과중될 경우 다른 쪽에서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보육교사 김 모씨(29)는 "어린이집 주요 일정인 아이들과의 야외활동을 아예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라 아이에 따라 길게는 10시간 가까이 실내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며 "일반 가정집은 자의적으로라도 외출 등을 통해 냉방을 쉴 수 있지만 저녁까지 사람들로 붐비는 어린이집은 완전히 처지가 다르다"고 하소연했다.

수은주가 높게는 40도까지 올라간 대구·경북 지역의 사정은 남다르다. 25일 낮 기온이 36.5도까지 올라간 경북 안동에 사는 이 모씨(68)는 "0시 온도가 30도까지 올라가 에어컨을 켜지 않고선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라 안방 침대 대신 딱딱한 거실 마루를 택했다"며 "그마저도 전기요금 걱정에 새벽에도 껐다 켰다를 반복하느라 선잠을 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가정용 전기 누진제 완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대구에서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한 여성은 "대구만이라도 당분간 누진제를 폐지해 달라"고 글을 올렸다. 경북에 거주한다는 이 모씨는 "폭염은 하늘이 하는 것이니 따로 대책을 강구할 게 아니라 누진제를 한시적으로라도 폐지하면 된다"고 했다.

가마솥더위로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전국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정전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장미6단지 아파트에서는 지난 24일 오후 9시께부터 아파트 15개 동 중 5개 동에 전기 공급이 차단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복구도 지연됐다. 단지에서 사용하는 변압기가 110V용으로 수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민 김 모씨는 "밤에 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결국 집에서 나와 (단지 내) 평상에 누웠는데 모기가 많아서 차에 들어가 에어컨을 틀고 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서도 이날 오전 11시 15분께부터 변압기 과부하로 정전이 발생해 1034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복구는 정전 약 3시간 만인 오후 2시 30분께 이뤄졌다. 이 아파트 주민 윤 모씨(72)는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걸어서 내려오는 것도 일이었다"며 "너무 더워서 손자를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는데 가게에서도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동네 주민들이 몰려 왔다"고 털어놨다.

김 모씨(88)는 "오래된 아파트라 가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요즘 같은 더위에 잠깐이라도 전기가 끊기면 음식물이 상할까 걱정"이라며 "물도 안 나오니 집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밖으로 나왔다"고 호소했다. 단지 내 유치원에선 원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시원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유치원 바깥쪽 그늘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도 했다.

[이용건 기자 / 박대의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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