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미홍 남편 팀 트린카 "아내로서, 엄마로서 금 같았다"

박현택 2018. 7. 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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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미홍 대한애국당 전 사무총장과 3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 팀 트린카에 이데일리에 추모의 글을 전해왔다.

팀 트린카(Timothy E. Trinka) 씨는 25일 이데일리에 A4용지 한 장이 넘는 글을 통해 "그는 그가 대외적으로 비춰진 모습보다 훨씬 많은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대외적 모습도 그녀의 진심이었고 늘 분명했으며 강력했습니다"라며 "그는 늘 자신의 신념과 국가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항상, 항상 옳은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말입니다"라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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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미홍 아나운서(오른쪽)과 팀 트린카 부부의 가족사진 (사진=커뮤니티)
[이데일리 박현택 기자] 고 정미홍 대한애국당 전 사무총장과 3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 팀 트린카에 이데일리에 추모의 글을 전해왔다.

팀 트린카(Timothy E. Trinka) 씨는 25일 이데일리에 A4용지 한 장이 넘는 글을 통해 “그는 그가 대외적으로 비춰진 모습보다 훨씬 많은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대외적 모습도 그녀의 진심이었고 늘 분명했으며 강력했습니다”라며 “그는 늘 자신의 신념과 국가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항상, 항상 옳은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말입니다”라고 기억했다.

팀 트린카는 이어 “정미홍은 가난한자, 장애인, 혜택받지 못한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위대함 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서도 그는 금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라며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의 차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 이렇게 위대한 여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이 국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오늘 큰 별 하나를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트린카씨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여,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당신을 그리워하겠소”라며 말을 맺었다.

팀 트린카는 현재 리인터내셔널의 시니어 외국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25년 이상 외국변호사로서 일했다. 그는 1979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B.A. 학위와 1982년 죤 마샬 로스쿨에서 L.D.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3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고급국제법학을 수료했다.

고 정미홍과는 지난 1987년 한국의 한 행사에서 만나 91년 결혼했다. 슬하에 입양한 딸 혜나양을 두고 있다.

故정미홍 (사진=SNS)
고 정미홍 아나운서는 2015년 1월 폐암 판정을 받았으며 지난 2월 폐암이 뇌로 전이되는 등 병세가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아나운서의 지인은 그를 추모하며 “‘내가 너무 예민했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관대하라’고 말했다”는 고인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고 정미홍 아나운서는 지난 1982년 KBS 아나운서로 데뷔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홍보담당관 등을 역임했으며, 탄핵 정국 이후에는 태극기 집회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엔 대한애국당에 입당했으나 같은 해 12월 탈당했다.

대한애국당은 이날 당 홈페이지에 “정미홍 전 사무총장이 오늘 새벽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셨다”며 “유족의 입장으로 장례식장을 알리지 못 하니 글로써 추모해 달라”라고 밝혔다.

박현택 (ssal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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