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판사들의 거짓말·말바꾸기·모르쇠 '3종세트'

2018. 7.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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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회 탄압 보고받은 고영한 "문건 생성 안해"
기획조정실 '합동'으로 "동향 문건 없다"
원세훈 문건 직접 만든 정다주 "본적도 없다"
임종헌 "행정처 백업 파일 폐기했다"
3차례 법원조사와 수사때 사실과 다른 진술
진상규명 방해한 셈..검찰 수사 받을 처지

[한겨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받은 이탄희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확인한 뒤 행정처 근무를 거부하며 촉발됐다.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를 거치며 재판거래, 법관 뒷조사, 법관 징계거래, 민간법조인 사찰 등으로 갈래를 뻗어 나가고 있다.

사법 농단의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면서,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법관들이 그간 내놓은 해명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물타기’, ‘말바꾸기’였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법원 내부 진상규명 작업을 방해한 이들은 결국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가 됐다.

1.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사법행정권 남용 문서 만든 적 없다”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한겨레> 자료사진

“진상조사위원회가 확인하고자 하는 의혹의 문서나 이메일을 생성하고 관리한 사실이 없다.”

지난해 4월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견제 의혹’, ‘판사 동향 보고 의혹’ 관련 자료를 달라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1차 조사단)의 요청에 이같이 답했다. 이 답변은 이후 2·3차 추가조사를 통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015년 7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인사모를 잘 챙겨보라”는 지시를 받은 뒤 인권법연구회 와해 방안을 마련해 박 처장 등에게 보고했다. 2016년 2월 법원행정처장으로 부임한 고 대법관 역시 처장 주례회의 등에서 이같은 문건을 보고받았다. 고 대법관이 보고받은 문건 중에는 “인사모가 연구회 내에 잔존하는 경우 커뮤니티 관리 차원에서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더군다나 고 대법관은 인권법연구회 와해 목적으로 실행된 것으로 대법원 자체조사에서 확인된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보고받고 승인한 사법행정 책임자이기도 하다.

고 대법관은 1차 조사 당시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작성자의 동의가 없고, 행정처에는 보안유지가 필요한 문건이 많다”는 이유도 댔다. 이 때문에 사법농단 진상이 드러나는 데는 1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2. “판사 동향파악 파일 없다”… 이민걸·김민수·임효량의 ‘합동’ 거짓말

대법원 1차 조사 당시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사법부 블랙리스트’)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다.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그러더라도 놀라지 말고,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는 이탄희 판사의 진술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김민수 전 기획제1심의관, 임효량 전 기획제2심의관 등은 1차 조사 당시 입모아 이같이 말했다.

“기획조정실 내에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파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획조정실의 업무 성격상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하지만 2·3차 조사를 거치며 이런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2015년 8~9월, 김민수 당시 기획제1심의관은 차성안 판사가 다른 판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가정사에 대한 고민 등을 나열한 문건을 만들었다. 이들 문건에서 김 심의관은 차 판사의 지인이나 선후배를 통해 그를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2016년 2월에는 인사모 소속 판사들을 ‘핵심 그룹’, ‘주변 그룹’으로 구분하고 이들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담은 문건을 만들었다. 그가 2016년 3월 만든 문건에는 판사들을 특정 연구회 소속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적색’ ‘청색’ ‘흑색’으로 구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민수 전 심의관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방안’ 문건(2016년 2월24일자)

임효량 전 기획제1심의관은 1차 조사 당시 “판사들의 동향을 조사해 기록한 문건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바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도 “평소 행정처의 역할과 업무처리 방식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당시 기획제2심의관도 이렇게 진술한다”며 임 심의관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임 전 심의관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건(2016년 10월27일 작성 추정)에는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등장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 문건은 국회 개헌특위 구성 시 김선수(현 대법관 임명제청자)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반드시 배제돼야 할 법조계 인사로 지목하고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3. “행정처 문건 양식 아니다”…4개월 만에 들통난 정다주 심의관의 ‘모르쇠’

재판거래 의혹은 대법원 2차 조사 때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인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한 동향파악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이름의 문건이 발견됐고, 2·3차 조사를 거치며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걸려 있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부적절한 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걸린 폴더에 보관돼 있던 문건(‘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에 대해 정다주 전 기획제1심의관은 2차 조사에서 “문건을 작성한 바 없고, 본 적도 없으며, 문건 양식은 행정처가 사용하는 양식이 아니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불과 넉 달 뒤, 3차 조사에서는 “내가 썼다”고 실토했다.

2·3차 조사를 거치며 법원행정처 주요 부서에서 작성한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발견된 문건 목록은 다음과 같다.

(20140823)국정원선거개입(원세훈)사건요약보고

(140915)원세훈사건1심판결및비판에한분석및설명자료

(140918)원세훈사건1심판결분석및항소심전망(설명자료)

(150208)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150209)(종합)국정원_선거개입(원세훈)_사건_항소심_선고_보고

(150209) (요약) 원세훈 사건 항소심 판결 분석보고

(150210)원세훈전국정원장판결선고관련각계동향

(151006)원세훈사건환송후당심심리방향

(160719)원세훈파기후환송사건보고

원세훈재판현장 스케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원세훈) 공판진행상황[1]

(150723)원세훈전국정원장대법원판결관련

(150725)425지논파일및시큐리티파일(수석연구관)

4. 행정처 근무 마치고도 동료 법관 뒷조사한 정다주 판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다주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다방면으로 연루됐다. 그는 2015년 2월 법원행정처 근무를 마치고 재판 업무에 복귀한 뒤에도 법관 뒷조사, 재판거래 관련 문건을 여러 차례 생산했다. 2016년 3월에는 자신이 속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관련 보고서도 만들었다. 이 보고서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사법행정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이는 박아무개 부장판사(의장 선출)를 견제하기 위해 “불필요한 힘을 실어주지 않”고, “각종 행사에서 단독판사 의장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는 등 이미지 제고의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대책 등이 담겼다.

하지만 그는 2차 조사 과정에서 “의장 경선 관련해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 등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3차 조사에선 정 판사가 해당 문건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로 작성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5. ‘책임 떠안고 함구’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밖에 대법원 자체조사 결과로는 서로 모순되거나 ‘빈 공간’이 채워지지 않는 의혹들이 상당수 있다.

1차 조사 당시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인사모 관련 대응문건을 2건만 제출했다. 하지만 2·3차 조사를 거치면서 법원행정처가 공동학술대회 축소, 중복가입 해소조치 등 인권법연구회 압박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한 사실이 드러났다. 추가조사위원회(2차 조사단)는 이에 대해 “이규진 상임위원은 진상조사위원회(1차) 조사 당시 법원행정처 실장들과 조사에 관한 대책을 논의한 결과, 자신이 최종적으로 수정하여 보고한 ‘대책문건 (1), (2)’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제출하고 기획조정실에서 작성된 나머지 추가 대책문건들의 존재 및 논의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함으로써, 결국 ‘위 대책문건 (1), (2)’가 작성·논의된 이후에도 법원행정처가 여러 차례 공동학술대회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한 사실 및 논의 내용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상임위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지는 ‘전략’을 당시 법원행정처 실장들이 세웠다는 것이다. 추가조사위원회는 그 배경을 이렇게 풀이했다.

“이는 이규진 상임위원이 이탄희 판사에게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취지의 실언을 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가 야기된 것에 따른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행정처 내부 분위기가 강했고, 이규진 상임위원은 그러한 법원행정처 내부의 분위기와 요청 때문에 위와 같이 대처한 것으로 보임.”

--> 3차 조사에서 이 상임위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손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자체조사단이 그의 하드디스크에서 검색어 추출을 통해 확보해 검찰에 넘긴 문건은 3건에 그친다. 실제 법원행정처 실장들이 책임 떠넘기기 전략을 짰는지, 이 상임위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왜 손상됐는지 등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6. 특조단 ‘방패막이’ 삼았다가… 몇 시간 만에 들통난 임종헌의 ‘거짓말’

“법원행정처 문건을 갖고 나왔지만, 특별조사단 발표 뒤 폐기했다.”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21일 검찰 압수수색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5월25일 특별조사단이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고, 그 밖의 사항은 죄가 성립하기 어렵거나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 내린 뒤 백업 파일을 폐기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이 몇시간 뒤 그의 사무실 직원 가방에서 백업 파일이 담긴 유에스비(USB)를 발견하면서, 임 전 차장의 주장도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유에스비에는 이제까지 공개되지 않은 각종 ‘재판거래’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은 압수수색 당시 “업무 수첩도 같은 시기 찢어 버렸고, 휴대전화는 한두 달 전 교체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법 농단’ 관련자들이 잇달아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 ‘텔레그램’에 가입하는 등 관련자들의 입맞추기 및 증거 인멸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은 24일 “문건 내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행정처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컴퓨터 등에 대한 열람이 필요한데, 대법원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법관회의도 지난 23일 법원이 존재 사실을 인정한 410개의 파일 중 미공개된 228개를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디가우싱’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처장 하드디스크는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의혹을 규명할 많은 증거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부장판사는 압수수색 영장은 임 전 차장에 대해서만, 통신 영장은 임 전 차장 등 2명에 대해서만 발부했다. 그는 “혐의 및 공모 관계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영장 대거 기각 이유로 들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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