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바르는 방식의 수정액 '리퀴드 페이퍼'. |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공로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오버룩드'(overlooked·주목받지 못한) 코너에서 화이트 발명가 벳 그레이엄(Bette Graham)을 소개했다.
1954년, 그레이엄은 상업화가이자 은행비서였다. 이혼 후 그림 일만으로는 혼자 아들을 키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미국 텍사스 은행에 비서로 취직해 월 300달러(약 34만원)을 벌었다. 그의 주 업무는 타자기를 치는 것이었지만 그가 잘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자주 오탈자를 냈고 직장 상사는 한 번만 더 실수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당시 타자기로 찍어낸 오타를 완벽하게 수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우개로 지우면 종이에 온통 번졌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잘못 그린 부분을 물감으로 덮어버린 것처럼 활자를 종이와 같은 하얀색으로 덮어버리자는 것.
그레이엄은 부엌에 있는 믹서기로 하얀색 템페라 물감에 회사 종이 색깔에 염료를 섞어 최초의 수정액을 만들었다. 그는 액체를 작은 매니큐어 병에 옮겨 담아 회사 책상 서랍 속에 숨기고 몰래 사용했다. 하지만 곧 동료 비서들에게 발각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펜 형태의 '리퀴드 페이퍼' 수정액. |
그런데 부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서류에 자신이 앞으로 세우게 될 회사의 임시 회사명인 '미스테이크 아웃'으로 서명한 것. 이 일로 그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오히려 화이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레이엄은 1958년에는 '리퀴드 페이퍼 컴퍼니'(Liquid Paper Company)라는 정식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 특허를 취득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대기업으로부터 납품 요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연간 2500만병을 생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말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1975년 이혼한 두 번째 남편이 회사 이사진과 담합해 그레이엄에게서 경영권과 특허권을 박탈한 것. 그레이엄은 경영권 다툼 끝에 특허권을 회복하는 대가로 1979년 질레트에 기업을 4750만달러(약 540억원)에 매각했으나 6개월 뒤인 1980년 5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은 유언에 따라 여성단체에 기부됐다.
2000년 이 회사는 생활용품 전문기업인 뉴웰 러버메이드에 재매각됐다. 화이트 제품은 '리퀴드 페이퍼' 또는 '페이퍼메이트'(Papermate)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