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美대사에 계엄인정 협조 얻어야".. 1980년 5·17과 유사

입력 2018. 7.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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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기무사 문건 67쪽 전체 공개

[동아일보]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해 2, 3월 촛불집회 당시 작성한 계엄 선포 검토 문건의 세부자료 전문(67쪽)이 23일 오후 늦게 전격 공개됐다. 청와대가 20일 부분 공개한 문건 전체가 공개된 것. 기무사가 계엄령 검토 문건(8쪽)과 세부자료를 작성하면서 참고한 자료 중 하나로 알려진 ‘합참 계엄실무편람’(2016년판)도 이날 공개됐다. 이 편람은 계엄의 개념과 시행 절차 및 계엄법 등 계엄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평문(平文)으로 작성된 군내 책자(200여 쪽)다.

○ ‘실행계획’ 의심케 하는 대목 상당수 담겨

이날 오후 늦게 전격 공개된 기무사 세부자료 문건을 보면 계엄사령부가 설치될 장소 후보 및 후보지의 장단점을 분석한 내용과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이를 무산시킬 구체적인 방안 등이 담겼다. 해당 문건이 계엄 선포 실행계획이었음을 의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회 통제 대책과 문건에 거론된 구체적인 언론사 명칭은 합참 편람 등 계엄 관련 기존 자료에는 없어 기무사 문건이 ‘계엄실행계획’이라는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세부자료엔 국방부 장관은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 본국에 계엄 시행을 인정토록 협조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1980년 5·17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이를 인정받으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구체적 언론 검열시행 방안까지 명시

청와대는 20일 기무사 세부자료가 ‘계엄실행계획’으로 의심되는 근거 중 하나로 자료에 적시된 ‘보도검열단’ 운영 계획을 거론했다. 언론사별로 보도검열단을 보내 신문 가판 등을 사전 검열할 계획이 담겼다는 것. 실제로 23일 공개된 세부자료에는 매체별 검열 시간과 검열 장소는 물론 계엄사령부 보도지침을 위반한 매체에 대해 최악의 경우 보도 매체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언론 통제 방안이 제시돼 있다.

기무사 문건에는 이 외에 KBS, 조선일보, 동아닷컴 등 특정 언론사 이름을 거론하는 등 계엄 관련 기존 군사자료에는 없는 구체적인 검열 시행 방안까지 명시돼 있다. 또한 보도검열 지침 위반 매체에 1차 경고조치, 2차 현장취재 금지 및 출국 조치(외신), 3차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을 하게 돼 있다. 검열 지침을 계속 위반할 때엔 신문 발행 정지(최장 6개월 내) 등도 할 수 있도록 했다.

○ ‘계엄사령관 장성 중 임명’…병력 동원 근거도

이날 공개된 세부자료엔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맡는 것이 ‘건의’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육사 출신 지휘관들이 주축이 된 쿠데타 모의 증거”라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편람엔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 중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계엄법 조항 등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포함돼 있다.

청와대는 문건 속에 명시된 구체적 병력 동원 계획도 실행계획의 근거로 지목했다. 하지만 편람의 ‘계엄임무수행군 운용’ 부분에는 ‘계엄 선포 시 선포 관할 지역 군부대는 별도 지정 절차 없이 계엄임무 수행 부대로 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계엄 검토 세부자료엔 ‘30사단 1개 여단’ 등의 세부 병력 투입안이 적시돼 있는데 이는 서울지역 계엄 선포를 가정해 편람 내용을 근거로 수도권의 30사단 등 ‘관할 지역 군부대’를 임의 편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 ‘국회의 계엄 해제’ 막는 방안 없어 논란

문제는 67쪽의 세부자료 내용 중 계엄군이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본회의 표결을 원천 봉쇄하는 방법을 제시한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 부분이다. 세부자료에는 의원들을 현행범으로 사법 처리해 의결 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거나 전체 국회의원을 보수 및 진보 성향으로 나눈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은 편람엔 없는 내용이다. ‘국회의원은 계엄 시행 중에도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곤 체포·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는 계엄법 조항을 피하기 위한 대안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부 소식통은 “전시(戰時) 계엄도 아닌 과격시위 등 평시 위기 상황을 가정한 계엄 상황에서 (의원 사법 처리 방안은) 터무니없다”고 했다. 기무사 측도 “불필요한 대응 내용까지 담았다”고 문제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전시를 상정한 합참 계엄시행계획을 기무사가 문건 작성에 참고한 것은 탄핵 기각으로 초래될 과격 시위 사태를 전쟁과 동일하게 봤다는 뜻이어서 상황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국방부와 법무부는 기무사 문건 의혹 수사를 위해 군검(軍檢)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군검 합동수사는 1999년 병무비리 합동수사, 2014년 방산비리 합동수사에 이어 세 번째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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